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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여적]지구촌의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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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미국 뉴욕 맨해튼의 42번가와 43번가 사이 건물 벽에 가로 7.9m, 세로 3.4m의 전광판이 세워졌다.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인 시모어 더스트가 아이디어와 자금을 댔다. 숫자 전광판은 위에 미국의 국가 부채, 아래는 가구당 부채를 표시했다. 숫자는 끊임없이 변한다. 그래서 부채 증가를 육안으로 느낄 수 있다. 부채의 실시간 추이를 반영하자는 아이디어는 1980년대 초에 나왔다. 그러나 이를 구현할 정도로 기술이 따라오지 못해 건립이 지연됐다. 더스트는 “다음 세대가 빚의 수렁에서 허덕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건립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소망은 헛된 꿈일 가능성이 높다.

지구촌의 부채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부채의 증가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전광판이 세워졌을 당시 미국의 국가 채무는 2조7000억달러였다. 그러나 2019년에는 22조9000억달러로 증가했다. 늘어나는 부채가 미국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기업 부채가 뇌관이다. 2008년 국내총생산 대비 기업부채비율이 96%였으나 2018년에는 164%까지 올랐다. 중국 정부가 재정 지원을 통해 부실기업들을 살려왔으나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상황이다. 선진국은 국가 부채, 신흥국은 기업 부채·가계 부채가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글로벌 부채는 올해 상반기 250조달러(29경6500조원)를 돌파했다. 1분기 말과 비교하면 7조5000억달러 늘었다. 국가들이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 확대와 금리 인하에 나서면서 급증한 것이다. 올해 말에는 255조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채 증가는 폭주열차와 같다.

한국의 국가 부채는 양호하다고 평가받는다. 국가 부채는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총생산 대비 38%다. 100%를 넘는 국가가 많은 현실을 감안할 때 안정적인 수준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다. 국가 부채는 적지만 가계 부채가 많다. 가계 부채는 국내총생산의 약 95%(2017년 말 기준)로 세계 주요국 중 7번째로 높다. 여기에 재정 확대와 세수 감소가 겹치면서 국가 채무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부채 문제는 국가 부채·기업 부채·가계 부채를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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