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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방독면 쓰고 스모그 버틴 LA, 공기 지키려 트럼프와도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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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오염과의 전쟁 - 도시 이야기 ⑥미국 LA

오염 역사 딛고 ‘환경 리더십’ 지켜

캘리포니아는 자동차와 전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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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하트 조형물. 토니 베넷의 히트곡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를 콘셉트로 한다.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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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항구도시 샌프란시스코와 헐리우드, 나파밸리 와인과 실리콘밸리….

미국 캘리포니아와 대기오염을 함께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캘리포니아는 실상 미국에서 가장 공기가 좋지 않은 편이다.

미국 폐 협회가 2015~2017년 미국 200개 대도시권을 조사한 결과, 캘리포니아주에 속한 ‘샌프란시스코-오클랜드-새너제이(산호세)’ 지역은 미세먼지 오염 4위에 랭크됐다. ‘로스엔젤레스(LA)와 롱비치’ 지역도 7위에 올랐다.

환경은 캘리포니아의 제1 관심사다. 특히 ‘깨끗한 공기’를 얻기 위해 70년 넘게 고군분투한 노력과 성과에 대해선 자부심이 대단하다.

‘기후변화는 거짓말’이라며 파리 기후협정을 탈퇴해 버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는 환경 정책을 두고 극한 대립 중이다.

“트럼프 정부는 캘리포니아의 대기환경 규제들을 뒤집어엎으려 하죠.”

지난 7월 말 캘리포니아에서 만난 남부해안 대기질관리국(SCAQMD) 필립 파인 대표는 말한다. “우린 아주 ‘큰 싸움(big fight)’을 계속하고 있어요.”



태양과 자동차가 만든 ‘죽음의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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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연 스모그로 가득한 1960년 로스 엔젤레스 거리 모습. [사진 UCLA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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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의 대기오염 원인은 지형에 있다. 수백 년 전 인디언들도 이곳을 ‘연기 골짜기(Valley of Smokes)’라고 불렀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가 커다란 대야처럼 공기를 가두는데, 고도가 높아질수록 온도가 올라가는 역전층이 생겨 가둔 공기를 덥히는 압력솥 역할을 한다. 건조한 기후 탓에 산불이라도 나면 일대가 연기에 갇혀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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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사람들이 눈과 호흡기에 통증을 호소하며 방독면과 선글라스를 쓰고 거리를 걷고 있다. [사진 LA중앙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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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앙은 1943년 7월 시작됐다. LA 등 대도시는 거리가 뿌옇고 누르스름한 연기로 가득 차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과 노약자들은 눈과 머리에 통증을 호소했다. 신문들은 이를 ‘연기 괴물(fume beast)’, ‘죽음의 구름(hellish cloud)’이라고 표현하며 시민들이 방독면을 쓰고 출근하는 사진을 실었다.

오염의 원인이 자동차 배기가스란 것이 밝혀진 건 1952년이었다. 오존과 배기가스가 뒤섞여 햇빛을 받으면 광화학 반응이 일어나 이른바 ‘LA형 스모그’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늘을 지킨다’ 오염일 수 68일→ 9일



LA 스모그에 충격을 받은 캘리포니아주는 196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공기 질 관리’에 나섰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오로지 공기 질만 살피는 양대 기관, 즉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RB)’와 ‘대기질관리국(AQMD)’을 세웠다. CARB는 자동차같이 움직이는 ‘이동 오염원’을 다루고, AQMD는 공장 같은 ‘고정 오염원’을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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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크라멘토에 위치한 캘리포니아대기자원위원회(CARB) 모습.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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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RB)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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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인 메리 니콜 CARB 회장.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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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니콜 CARB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환경 맞수’로 꼽힌다. 캘리포니아의 수도 새크라멘토에 위치한 그의 집무실에는 친환경 정책을 추진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진이 놓여있었다.

“오늘날 차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은 70년대 차의 1% 미만이고, 대기 질은 두 배 가까이 좋아졌어요.” 니콜 회장의 목소리엔 자부심이 느껴졌다.

실제 LA가 속한 LA 카운티에서 하루 평균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35㎍/㎥를 넘는 일수는 1999년 68일에서 지난해 9일로 줄었다.

니콜 회장은 “70년이 넘는 노력 끝에 우리는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고 강조했다.



제도+혜택+기술…2040년부터 친환경 차만 판매



캘리포니아의 대기오염 개선 비결은 3가지로 압축된다. 규제와 인센티브, 그리고 과학기술이다. 이 3가지가 어우러져 ‘대기관리 시스템’을 이룬다.

이 메커니즘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상이 대기오염의 주범인 자동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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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전기차 충전소.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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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는 미국 50개 주 가운데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자체적으로 정할 수 있는 유일한 주다.

1963년 연방정부가 ‘대기관리법(Clean Air Act)’를 만들기 전에 이미 자동차 오염방지법(1960년)을 제정해 자체적인 배출 기준을 정하고 지켜왔기 때문이다.

1990년부터는 ‘무공해 자동차(Zero Emission Vehicle)’제도를 시행해 매년 전기차·수소연료전지차(수소차) 등 친환경 자동차 판매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2030년까지 무공해 차량을 500만대로 늘리고 충전소 역시 25만개로 확대하기로 했다. 2040년부터는 아예 무공해차만 판매할 수 있다.

전기차 충전소 요금은 1kWh당 6센트(약 72원) 정도다. LA의 경우 지난해 4월 전기차 공유 서비스인 ‘블루 LA’를 도입해 공유 전기차 100여대를 운행 중이다.



연비 소송 ‘뜨거운 감자’…현대차도 영향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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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현대자동차 수출선적부두.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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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주는 ‘깨끗한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흔들림 없이 규제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대립이 심상치 않다. 트럼프 정부가 연방 정부보다 엄격한 연비 기준을 정한 캘리포니아주의 권한을 취소하면서 양측이 소송에 돌입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연비 기준은 갤런당 50마일(약 21.2㎞/L)로, 트럼프 정부의 37.5마일(약 15.9㎞/L)보다 높다. 연비가 높다는 건 자동차가 연료를 덜 태우고 온실가스를 덜 배출한다는 의미다. 현재 13개 주, 미국 인구의 약 40%가 캘리포니아주 배출 기준을 따르고 있다.

차 업계도 쪼개졌다. 포드·폴크스바겐·BMW·혼다 등이 캘리포니아 연비를 따르겠다고 밝혔지만, 현대차와 제너럴모터스(GM)·토요타·피아트크라이슬러 등은 연방 정부 편에 섰다.

캘리포니아는 세계 최대 친환경 차 시장이다. 2018년 주의 전체 차량 가운데 전기차 판매 비중이 8%에 달한다. 글로벌 차 업계 전체가 소송 결과에 주목하는 이유다.

채찍과 함께 당근도 많다. 일례로 친환경 차를 사면 연방정부 보조금과 별개로 전기차에 2500달러(약 300만 원), 수소차에 5000달러(약 600만 원)의 보조금을 준다. 캘리포니아는 자체 인센티브를 대당 최대 7500달러로 올리는 법안도 발의했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가 이런 차량 인센티브에 들인 돈만 지난 20년간 약 30억 달러(약 3조6000억원)다. 이 밖에 친환경 차는 고속도로 다인승 전용차선 이용 등 다양한 혜택이 있다.



“오염의 대가, 기술 비용보다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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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인 필립 파인 남부해안대기질관리국(SCAQMD) 대표.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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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관리는 과학자·엔지니어들과 긴밀한 협업 속에 이뤄지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중요한 건 규제의 근거이자 오염을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실제 캘리포니아는 1975년 모든 차에 배기가스 속 유해물질을 걸러주는 촉매변환기를 장착하게 하면서 공기 질이 획기적으로 좋아졌다.

지금은 공장이나 발전소 시설에 필터와 집진기(스크러버) 등 정화 설비를 설치해 오염물질을 90~99%까지 걸러낸다. 대형트럭과 중장비에도 최근 15년 사이 미세먼지 필터, 차량용 선택적 촉매환원(SCR) 장치 등이 의무 도입됐다. ‘아동건강 장기추적연구’, ‘항만 분야 기술개발 및 사업화 지원 프로그램’, ‘대기오염의 인체영향 연구’ 등은 모두 과학자·엔지니어들과 함께 이룬 성과다.

필립 파인 남부해안 대기질관리국 대표는 “세상 모든 문제가 그렇듯 대기오염 해결도 시간이 걸린다”며 “첫째, 미세먼지가 배출되는 원인을 정확히 밝히고, 둘째 기술을 사용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기술 도입에) 돈이 얼마나 들지, 얼마나 빨리 도입할지”라며 “이 과정에서 규제에 힘을 줄지, 인센티브를 강조할지, 둘을 적절히 섞을지 고민하는 것이 한국 정부의 몫”이라고 충고했다.

이어 “오랜 세월 경험한 결과 기술 도입이나 규제에 따른 비용은 오염으로 인해 치러야 하는 비용보다 훨씬 적다”고 힘주어 말했다.



77%가 ‘나홀로 운전’…자동차 왕국 LA, 대중교통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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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엔젤레스 도로를 가득 채운 자동차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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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를 대표하는 LA는 자동차의 도시다. 세계에서 도로가 차지하는 면적비율이 가장 높고, 사람들은 드넓은 땅을 자동차로 이동한다.

실제 캘리포니아 주민 중 77%가 ‘나홀로 운전’이고 지하철과 버스 같은 대중교통 이용은 3%에 불과하다.

1940년대 초 100만대를 돌파한 LA 자동차 수는 현재 700만대를 훌쩍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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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남부캘리포니아도시연합(SCAG)' 건물 17층에서 내려다 본 LA 시내 모습.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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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윌셔가에 위치한 ‘남부 캘리포니아 도시연합(SCAG)’은 캘리포니아 남부 6개 카운티(임페리얼·LA·오렌지·리버사이드·샌버나디노·벤투라)의 교통계획을 세우는 기관이다.

미국은 주 정부가 교통계획을 만드는데, SCAG이 미국 전체에서 가장 크다. 관할 면적은 남한의 3분의 2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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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인 SCAG 이철호 수석 연구원(왼쪽)과 마나 상카차이 박사(오른쪽).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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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유리창에는 다양한 슬로건과 목표, 핵심 조사 결과들이 붙어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나쁜 공기 질’, ‘전체 온실가스의 33% 이상이 자동차에서 나옵니다’, ‘대기오염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천식 발병률’ 등이다.

SCAG에서 지역 개발 모델링을 담당하는 이철호 수석연구원은 "지금 2045년까지의 교통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흥미로운 건 향후 25년을 좌우할 교통 계획이 ‘대기환경 개선’이란 최상위 목표 아래 수립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20년 만에 ‘혐오시설 →역세권’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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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프리웨이를 가득 매운 자동차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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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는 법으로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수준으로 낮추고, 2030년엔 거기에서 다시 40%를 낮추기로 했다. 교통 계획도 이 목표에 맞춰 세워지고 있다.

SCAG의 마나 상카차이 박사는 “지역별, 도로별 총주행 거리를 통해 어느 정도 온실가스가 나올지 모델을 만들고 예측치를 낸다”며 “사람들이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더 많이 이용하지 않는 한 공기는 더 좋아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LA는 1990년 지하철 개통을 계기로 20년 넘게 천문학적 돈을 들여 지하철과 버스 망을 늘리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지하철은 혐오시설이었지만 이제 역세권 개념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인구가 너무 드문드문 퍼져있어 노선을 깔아도 수지가 맞지 않는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는 지방정부(카운티) 고유의 권한이었던 토지이용 계획에 SCAG이 관여할 수 있게 법을 바꿨다. 뉴욕처럼 도심·주거지·상권 등 토지이용을 인구 밀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유도해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려는 것이다.

이철호 연구원은 “교통을 비롯한 모든 정책 분야에서 LA와 캘리포니아의 핵심 기준은 대기 환경”이라며 “체계적인 연구와 계획 수립, 과감한 실천이 쌓여 자동차 왕국을 조금씩 친환경 도시로 바꿔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새크라멘토, LA=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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