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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단독] ‘무리한 목표’ 일방 추진…달 궤도선 기본 설계도 못 끝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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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달 탐사 사업’ 4년만에 좌초 위기]



박, 기획연구 수준 사업 급히 앞당겨

기술수준 평가·현장 의견 수렴 없이

‘비현실적 목표’ 일방적 설정·추진

한계 부딪치며 기본 설계도 못 끝내

연구원들 “설계 재검토 기회도 놓쳐”

‘550㎏’ 궤도선 중량 번번이 초과

연료량 문제에도 이미 탱크 제작

‘궤적변경 대안’ 나사 협력 필수지만

정부·항우연 미봉책이 위기 키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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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본격화 뒤 4년째 아직 기본 설계조차 마무리되지 않은 달 궤도선 사업이 이번엔 핵심 사업 파트너인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의 반대에 부닥쳐 표류하게 된 데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보인 정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일방적 태도가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내 기술 수준에 대한 객관적 평가나 연구 현장의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주요 목표를 설정하고, 문제가 불거지면 계획 전반을 재검토하는 대신 땜질식 처방으로만 대응하는 바람에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는 비판이다.

달 궤도선 사업은 애초 참여정부(발사 시기 2020년) 때 시작해 이명박 정부(2023년)를 거치는 동안까지는 먼 미래를 내다본 기획연구 수준이었다. 그러다 2012년 12월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2020년 달에 태극기가 펄럭이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취임 석달 뒤인 2013년 5월 달 궤도선 사업이 국정과제로 선정되고 개발 기간은 3년(2015∼2017년)으로 대폭 당겨지는 등 비현실적인 사업 목표들이 설정됐다. 사업 추진 과정을 잘 아는 항우연 고위 관계자 ㄱ씨는 <한겨레> 기자와 한 통화에서 “지구를 도는 인공위성도 개발 기간이 4∼5년쯤인데, 달 주변을 도는 위성을 3년 만에 개발하겠다는 것은 황당한 발상이었다”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고 짚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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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주요 사업 내용은 현장에서 사업을 실행하는 연구원들의 판단이나 국내 기술 수준과 무관하게 결정되고 바뀌었다. 2014년 9월엔 ①4개의 탑재체(카메라 등 여러 달 탐사 장비)를 실은 ②총중량 550㎏의 궤도선을 ③달 고도 100㎞에서 ④원형으로 ⑤1년간 운용하는 것을 내용으로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2016년 1월엔 탑재체 수를 4개에서 6개로 늘린 ‘달 탐사 기본계획’이 국가우주위원회를 통과한 데 이어 12월엔 ‘1년 원형 궤도’를 전제로 항우연과 나사가 협력 약정을 체결했다. 나사는 심우주통신 등을 제공하고 한국은 나사의 카메라(섀도캠)를 궤도선에 추가로 탑재하는 내용이다.

현장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사업 내용 변경에 항우연 달탐사사업단 소속 연구진은 초기부터 ‘비현실적’이라는 의견을 냈다. ㄴ연구원은 “애초 각종 부품이나 장비, 탑재체 수, 필요 연료량 등을 따져 궤도선 목표 중량 등을 도출한 것이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달 궤도선 사업 마무리 뒤) 2단계 달 착륙선에 쓸 한국형 발사체는 최대 550㎏까지만 달로 보낼 수 있으니, 1단계인 궤도선 중량도 (미국 발사체로 쓰는데도) 550㎏에 맞추란 게 전부였다”는 것이다. 궤도선의 설계 중량은 2018년 9월 610㎏, 2019년 3월 638∼662㎏, 최근엔 678㎏으로 한번도 550㎏을 맞춘 적 없이 계속 늘기만 했다. 늘어난 중량으로 1년간 임무를 마치려면 궤도선의 달 주위 궤도를 원형에서 타원형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지난 9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내용이다.

항우연 내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업관리위원회’는 지난 3월 낸 자체 검토 보고서에서 중량 제한 해제는 불가피하다고 짚으며, 중량 증가에 따른 연료 부족 문제를 해결할 8가지 이론적 대안(연료탱크 확대, 궤도 변경, 임무 기간 단축, 달까지 가는 경로(궤적) 변경 등)을 추려 각각의 장단점을 분석했다. 여기서 관리위는 궤도 변경과 임무 기간 단축은 ‘나사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와 항우연은 지난 9월 나사와 합의하지 않은 궤도 변경(고도 100㎞×300㎞ 타원형 궤도)안을 발표했다 결국 나사의 반대에 부닥쳤다. 이철희 의원은 “항우연과 과기정통부가 매번 눈앞의 책임을 회피하는 데만 급급하다가 문제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ㄴ연구원은 “(새 정부 들어) 각종 문제가 충분히 노출됐는데도 2017년 8월 국가우주위원회가 발사 시점(2018년→2020년)만 미루고 다른 조건은 유지하도록 해 설계 전반을 재검토할 기회를 놓친 게 가장 뼈아프다”며 “과기정통부가 지난 9월 중량 제한 해제(최대 678㎏)도 발표했지만, 이미 연료탱크가 제작돼 연료가 부족하기는 매한가지다. 이를 해결할 궤적 변경 방안은 국내 독자 기술로는 어렵고, 기존 나사와 협약 범위를 넘어서 지원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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