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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왜냐면] 콜센터 노동자들의 서사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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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최재혁 ㅣ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정책부장



올해 9월 이후 두 차례 만난 서울의 한 콜센터 하청업체 노동자 김진영씨(가명)는 근속기간 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업무 환경이 경직되니 일손이 안 잡혀서요. 맘이 너무 불안합니다.” 김씨가 최근 보내온 카카오톡 메시지다. 김씨는 콜센터에 오기 전 쇼핑센터에서 일했다. 그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콜센터에서 제조사(원청) 및 택배 노동자 간에 업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배워볼 생각이었다. 입사 이후에는 또 다른 자신도 발견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줄 몰랐어요. 진상 고객이 가끔 있지만, 좋은 말 해주고 위로해주는 분들이 많아요.”

하청업체에서 김씨는 세금을 제외하고 월 159만원을 받았다. 최저임금이다. 수당은 없으며 기본급은 오르지 않는다. 1년을 일하든, 10년을 일하든 현재의 조건이 바뀌지 않으면 연봉은 최저임금에 따라 변한다. 그는 콜센터 입사 후 설·추석·현충일 등 공휴일에 쉬어본 적은 없다.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는 회사가 공휴일에 대한 유급휴일은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임금이 낮고 노동시간이 길다는 점은 참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것은 자신의 서사가 무너질 때였다. 월경 때 자리를 10분 비웠다고 관리자가 화장실로 찾아와 문을 두들기고, 실수에 대해 윽박지르며 발길질을 했을 때(다행히 피했다고 한다)는 참기 어려웠다. “집에서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으면 너무 불안해요. 그래서 쉬는 날이지만 회사에 갔어요. 오히려 회사에 가니 불안감이 없어졌어요.”

사무금융노조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함께 사무금융권 비정규직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설문과 면담을 진행하고 있으며 20여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났다. 이들 중 대부분이 전화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콜센터는 낮은 임금 수준과 불안정한 고용 여건이 많았는데, 주로 여성을 채용하고 실적 압박도 강했다. 또 휴게시간과 휴일이 보장되지 않고 직장 내 괴롭힘이 근절되지 않고 있었다. 관리자들이 회식 때 비정규직 여성 콜센터 노동자를 남성 사이사이에 앉히는 사례도 있었다.

여기에다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것 중 하나는 콜센터 업무의 다양성이다. 영업(상품판매), 민원처리, 신용관리, 채권회수, 금융심사, 보험가입, 분실접수, 계약변경, 상품상담, 사고접수, 배달배정, 주문처리 등 많은 노동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런 다양성을 무시하고 이 모든 업무를 ‘콜’로 정의했다. 각자의 서사를 보기보다는 사무직 중 주로 여성이 해온 가장 낮은 수준의 업무로 단순화했다.

콜센터 노동자 규모는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고 있다. 40만명에 이른다는 분석이 있지만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산업이 커지면서 원·하청 간의 관계는 거미줄처럼 촘촘해졌다. 1개의 대기업은 하청업체 4~8곳에 콜센터 업무를 위탁한다. 하청업체는 기업 20여곳의 전화 관련 업무를 수탁한다. 자본이 상이한 업무를 콜로 단순화해 외주 규모를 확대한 것이 지금의 구조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실태조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위해 시작됐다. 민간 기업에서 콜센터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나 외주화나 자회사를 설립한 곳은 이미 10~15년 전에 콜센터 업무를 분절했다. 민간 영역에서 이들을 한순간에 원청의 직접고용으로 전환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있다. 이들이 근로기준법 준수, 화장실 갈 시간 보장 등 공동의 요구안을 만들어 원청인 사측에 콜센터 노동 기준을 제시하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나아가 콜센터 노동자들이 당사자성을 갖출 수 있는 조직화를 지원하고 연대하는 것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 열사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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