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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아파요[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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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어떤 철학자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기억을 잃는 것’이라고 했다.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말년에 알츠하이머병을 앓았다. 그는 어머니가 생존해 있을 때 틈만 나면 옆으로 달려갔다. 옆에서 글도 쓰고 교정도 보고 책도 읽고 명상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어느 날 그가 어머니에게 아프냐고 묻자 “응” 하고 대답했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가 싶어서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가 “제 말 아 마 메르”라고 대답했다. 직역하면 ‘나는 어머니가 아파요’라는 뜻이었다. 불완전하고 어색한 문장일 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아니라 아들의 입에서나 나올 만한 말이었다. 어머니가 아들의 입장이 되어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럴 리 없었다. 어쩌면 자기 어머니를 떠올리고 그렇게 말했는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 됐든 아들은 어머니의 말에 목이 메었다.

어머니에게 아들은 이름이 없는 타인, 낯선 타인이었다. 아들의 말을 들어도 듣는 게 아니었고 아들의 얼굴을 보아도 보는 게 아니었다. 슬픈 일이었다. 그는 그런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그 슬픔을 언어로 새기기 시작했다. 기억을 잃어버린 어머니를 자기만이라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이것은 후에 그의 감동적인 저서 ‘할례/고백’의 일부가 되었다.

팔십대 후반의 어머니는 마지막 3년을 그렇게 살다가 아들을 끝내 알아보지 못하고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 어머니의 아들이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였다. 알제리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이주해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야 했던 데리다는 그렇게 어머니를 알츠하이머병으로 잃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3년은 그에게 ‘3년 동안 지속된 길고 긴 죽음’이었다. 어머니의 길고 긴 죽음을 지켜보면서 그는 기억을 잃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되면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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