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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규제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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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화재 사건으로 리콜 문제가 불거지자 발의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만 31개나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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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는 지난 3년 반의 임기 동안, 하루 3건의 규제 법안을 발의했고 이 중 1건을 통과시켰다. 하루 1건의 규제를 만들어낸 셈이다. 사진은 여의도 국회 야경. /전기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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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자동차산업연합회가 주도한 '규제포럼'에서는 최근 국회가 쏟아낸 입법 규제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김주홍 자동차산업협회 실장은 "이렇게 의원들이 중복 법안을 발의하면 업계는 이에 대응하느라 1년 내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실장에 따르면, 20대 국회의원들은 하루 3개꼴로 규제 법안을 발의했고 이 중 1개는 통과됐다(3년 반 동안 3776건 발의, 1698건 가결). 규제를 하루에 1개씩 만들어낸 셈이다. 정당 내 의원 평가를 앞두고 의원들이 실적을 쌓을 마지막 기회였던 20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는 약 9일간(지난달 22~31일까지) 440건이 발의됐다.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장은 "선진국은 규제 비용 총량제를 도입하는 등 규제를 없애기 위해 경쟁하는데, 우리는 옥상옥 규제를 만드는 경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 참여한 단체는 자동차산업연합회 외에 철강·석유·반도체·섬유·전자정보통신·디스플레이·조선해양 관련 협회 등 19개에 이른다.

◇졸속·중복·과잉 입법 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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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제는 졸속 입법입니다. 지금 와서 후회하지 말고, 법을 만들기 전에 살폈어야 합니다."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은 "각종 노동 규제와 화평법(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 등 환경 규제까지 최근 졸속 입법으로 중소·중견기업들이 고통받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주 52시간제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나도 찬성했지만 반성한다"고 말하고, 노동부가 중소기업 처벌을 유예하는 등 정부조차 멈칫하고 있는 제도다. 국회가 사전에 업계 영향이나 부작용을 충분히 심사하지 않은 결과다.

이주연 아주대 교수는 "전체 발의 법안 중 의원 발의가 95%를 차지한다"며 "의원들은 기업들이 원하는 '개망신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등은 손도 안 대면서, 지역구 관심사나 지지층 이해관계에 따라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문성 한양여대 교수는 "규제는 좋은 의도로 누군가를 보호하려 도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시장에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며 "시간강사법은 시간강사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지만, 시간강사들은 오히려 자리를 잃고 있다"고 말했다. 김주홍 실장은 "산업재해, 성희롱 등 직장 내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만드는 직장인 교육 강제, 실업자·해고자도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노조법 개정안, 자동차 배출가스 인증 위반에 대한 과징금 반복 인상 등 각종 졸속 입법과 과잉 입법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경쟁력 갉아먹는 규제

이날 전문가들은 규제가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날 김진국 배재대 교수는 "최근 1년간 가장 많은 투자금을 유치한 글로벌 벤처기업 상위 100개 기업 중 한국 기업은 전무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56개, 중국이 24개로 가장 많았고, 영국(6개)·독일(3개)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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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열린 산업발전포럼에서 이창범(마이크 든 사람) 동국대 교수 등 참석자들이 우리 산업의 규제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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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이 100개 기업이 만약 한국에서 사업을 했다면, 우버·에어비앤비 등 13개 업체는 아예 불가하고, 44개 업체는 조건부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금액으로 따지면 투자받은 1160억달러 중 40%에 해당하는 기업이 한국에선 불가하고, 30% 기업이 조건부만 가능했다.

◇의원 발의 책임제로 견제 장치를

전문가들은 이날 해외 사례를 소개하며 다양한 대책도 내놨다. 김주홍 실장은 "신규 규제 1건당 기존 규제 2~3건을 폐지하는 미국과 영국의 규제비용총량제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의원발의 책임제'를 도입해 입법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하고, 산업 경쟁력과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규제 법안을 발의하면 감점하는 국회의원 평가 시스템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도 "미국은 의원입법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품질 관리를 한다"며 "우리도 의원입법을 어떻게 감시하고 통제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를 완화하는 공무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자는 주장도 나왔다. 이창범 동국대 교수는 "규제를 생산하는 공무원들은 새로운 법을 만들면 포상을 받지만, 이해 관계자들을 잘 조율하면서 규제를 완화하는 공무원들은 혜택이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네거티브 규제(안 된다고 명시한 것 외에는 모두 할 수 있는 방식)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기업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광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네거티브 규제가 작동하려면 시장 감시 기능이 발달해야 한다"며 "규제 혁파를 요구하려면 기업 역시 일벌백계를 하는, 잘못에 상응하는 페널티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정 기자(well@chosun.com);석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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