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왜냐면] 대기업의 유통채널 겸영특혜 폐지해야 / 안진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안진걸ㅣ상지대 초빙교수·경제민주화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달가운 기업들도 있겠지만, 재벌 대기업들의 탐욕과 온라인 시장 성장 사이에서 생존에 몸부림치는 중소기업·중소상공인들한텐 많은 두려움이 느껴질 것이다. 그럼에도 역대 정부들은 왜 공공성에 기반한 방송 유통채널까지 재벌 대기업에 사업권을 주었을까.

중소생산자-유통자들은 좋은 아이템이라도 판매에 나서자마자 많은 좌절을 겪는다. 홈쇼핑·온라인몰·대형마트 같은 유통채널의 담당 엠디(MD)를 만나는 것부터 쉽지 않다. 어렵게 엠디를 만나더라도 과도한 비용이나 불공정한 조건, 또 무리한 요구 등을 듣다가 외려 손해를 보고 물러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방송이라는 공공적 수단을 이용하는, 홈쇼핑과 티(T)커머스(데이터홈쇼핑) 채널로 구성되는 티브이 유통채널은 중소생산자들에게는 최고의 홍보 마케팅과 판매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처음부터 그것을 대기업에 빼앗기고 말았다.

사업권뿐만 아니라 거기서 홍보되고 판매되는 제품도 대기업의 것이 많으니 지금 우리나라는 유력한 경제민주화와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 수단을 잃어버린 것이다. 홈쇼핑과 티커머스 방송을 통한 유통과 판매에 특별한 기술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 처음부터 방송을 통한 유통채널은 중소기업에 맡겼어야 했다. 모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충분히 그렇게 할 수도 있었지만 역대 정부들은 대기업에 경제력을 더 집중시키는 선택을 했고, 그래서 현 티브이 유통채널 17개 중 무려 14개를 대기업 계열이 차지하게 됐다. 심지어 씨제이, 지에스, 현대, 롯데, 엔에스 등 대기업 홈쇼핑 5곳은 티커머스까지 겸영하는 특혜를 입어 채널 10개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4개도 케이티, 신세계, 에스케이, 티브로드(태광그룹) 같은 대기업 계열이다. 대기업 계열 홈쇼핑들은 그나마 공공성이 가미된 홈앤쇼핑·공영홈쇼핑에 비해 더 많은 이윤 추구를 강조하고 있고, 그것은 고스란히 중소기업·중소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의 손해나 피해로도 이어지고 있다.

경제민주화·공정경제가 주요 국정목표인 현 정부에서, 방송·통신을 기반으로 한 유통채널까지 대기업이 장악하는 모순을 방치하고 있다는 것은 몹시 서글픈 일이다. 대기업 계열 홈쇼핑 5곳에 대한 겸영 특혜는 즉각 폐지해야 한다. 홈쇼핑이든 티커머스든 둘 중 하나는 중소기업에 사업권을 넘기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티브이와 인터넷의 경계가 무너진 지금은 오히려 홈쇼핑과 티커머스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선의의 혁신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공공성이 가미된 2개 채널(홈앤쇼핑·공영홈쇼핑)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기업의 독과점 구조를 개선하여 중소사업자와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하며, 어떤 사업자든 승인 항목에 규정한 대로 방송의 사회적 책임, 공공성, 공익성을 실현하도록 철저하게 관리·감독받아야 한다. 과도한 수수료, 재고 부담의 전가, 불공정 행위를 하는 사업자는 재승인에서 반드시 탈락시켜야 한다. 그래야 중소기업, 중소상공인,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농어민 같은 중소생산자들이 더불어 잘사는 공정경제가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제발 헌법대로만 하자. 헌법 119조는 경제민주화를, 헌법 123조는 중소기업의 보호·육성을 명시하고 국가의 의무와 역할로 규정하고 있다.

▶페북에서 한겨레와 만나요~
▶신문 보는 당신은 핵인싸!▶7분이면 뉴스 끝! 7분컷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