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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다고 좋은 작품 아냐” 파리서 뭇매 맞는 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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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 바타클랑극장 테러 추모 조각상 ‘튤립 꽃다발’ 둘러싸고

“11색 포르노” “기회주의적” 비난

제작비 파리市 부담에 특히 시끌… 결국 기업인들 모금으로 충당

논란 이력에 각계 곱지않은 시선… “자유와 우정 상징” 소수 옹호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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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 프랑스 파리 프티팔레 미술관 옆에 공개된 제프 쿤스의 작품 ‘튤립 꽃다발’(Bouquet of Tulips). 2015년 파리 테러 희생자를 기리는 의미를 담았지만 프랑스문화계로부터 ‘진지하지 못하다’, ‘포르노 같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파리=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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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Trous du c…(11개의 똥구멍…)’

프랑스 파리 프티팔레 미술관 옆에 설치한 한 조각 작품이 현지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예술가 제프 쿤스(64·사진)가 파리시에 기증해 지난달 4일 공개한 ‘튤립 꽃다발’(Bouquet of Tulips). 높이 12m인 이 대형 조각은 튤립 풍선 11개를 쥔 손을 컬러풀하게 표현했다. 그런데 공개 직후 저명한 철학자 이브 미쇼로부터 “11색 똥구멍처럼 보이는 포르노 조각”이라는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이달 7일 조각상 하부에 작품을 조롱하는 낯 뜨거운 그라피티(낙서)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까지 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이 작가, 왜 파리에서 ‘밉상’이 되고 만 걸까.

○ “기회주의적 간접 광고”

‘튤립…’은 2015년 파리 바타클랑극장 테러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작품이다. 당시 주프랑스 미국 대사였던 제인 하틀리가 쿤스에게 의뢰했다. 하지만 기증을 발표한 순간부터 논란이 터져 나왔다. 지난해 1월엔 프랑스 문화계 인사 24명이 반대 서한을 일간지인 ‘리베라시옹’에 발표했다. 이들 가운데는 프레데리크 미테랑 전 문화부 장관, 니콜라 부리오 몽펠리에 현대미술관장도 있다. 이들은 “기회주의적인 간접광고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컸던 대목은 쿤스가 ‘아이디어’만을 기부하고, 제작 및 설치비용(약 47억 원)은 파리시가 부담한다는 점이었다. 로버트 루빈 전 퐁피두재단 이사장은 “독이 든 성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제작비용은 모금으로 충당됐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케네스 그리핀 등 쿤스의 컬렉터와 기업인들이 참여했다.

모든 파리 시민이 작품을 반대한 건 아니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이 작품은 자유와 우정의 상징”이라 했다. 또 다른 문화계 인사들은 찬성 서한을 통해 “에펠 타워, 퐁피두센터까지 파리지앵은 역사적인 랜드마크를 나중에야 인정했다”고 꼬집었다.

○ 논란 먹고 자란 ‘속 빈 강정’인가

쿤스를 향한 분노는 ‘파리지앵’ 특유의 까탈이라 봐야 할까. 그러나 그는 유명세만큼이나 자주 논란의 중심에 서왔다. ‘튤립…’에 대한 비판도 그 연장선으로 읽히는 이유다.

일상품을 그대로 전시한 레디메이드, 거대한 풍선 조형물 등 쿤스의 대표작들은 마르셀 뒤샹의 개념미술과 앤디 워홀의 팝 아트가 혼합돼 있다. 돋보이는 것은 작품의 재질과 보존성. 쿤스는 1988년 유럽의 최고 장인들에게 의뢰해 만든 조각을 전시한 ‘Banality’ 전을 통해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이후에도 직접 만들진 않지만, 산업적 공정을 통해 매끄럽고 반짝이는 작품을 만들어 내기로 유명했다.

일각에선 쿤스의 ‘세일즈맨십’에 주목한다. 그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입장권을 판매하며 미술계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증권가에서 활약하며 미술계와도 인맥을 쌓은 뒤, 자신의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쿤스는 영업적 재능을 활용해 컬렉터들의 ‘과시적 소비’를 부추겨 왔다는 평도 나온다. 반짝이는 한정판 작품들이 “비싸기로 유명해 더 비싸졌다”는 뜻이다.

논란이 극에 달한 것은 1991년 ‘Made in Heaven’을 발표했을 때다. 당시 부인이었던 포르노 배우 치치올리나와의 정사 장면을 표현한 조각이었다. 쿤스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미 뉴욕타임스의 평론가 마이클 키멀먼은 “80년대 말 최악의 센세이셔널리즘”이라고 혹평했다. 논란을 즐기는 작가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전적 탓에 ‘튤립…’ 또한 외설적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쿤스의 작품 ‘토끼’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1082억 원에 팔리며 최고가를 경신했다. 현재의 비평이 미래에도 유효하리란 보장은 없다. 다만 파리의 갤러리스트 스테파니 코레아르는 이렇게 일갈했다.

“가장 비싼 작품이 가장 좋은 작품은 아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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