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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토종 카페베네 발묶은 정부, 2년 뒤 한국은 '스벅 세상'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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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의 뿌리, 국회]

중앙일보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근처의 한 스타벅스. 평일 점심시간 이 근처 카페는 주변 상권의 고객들로 앉을 자리를 찾기 어렵다. 임성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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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4번 고객님,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지난 15일 낮 1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의 한 스타벅스 매장. 점심을 마치고 커피를 사러 들른 직장인들로 매장 내부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이 매장만 이렇게 장사가 잘되는 걸까. 길 건너 100m 인근에 있는 또 다른 스타벅스 매장도 마찬가지였다. 대형 사무빌딩이 밀집한 광화문광장 일대의 스타벅스 6곳 모두 ‘식후 스벅’을 찾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이들 매장은 30분 남짓 만에 6곳을 모두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광화문 일대에 촘촘히 몰려 있었다.

1999년 한국에 상륙한 스타벅스코리아는 현재 전국 1336개 매장을 두고 있다. 모두 직영 매장이다. 스타벅스는 2013년 처음으로 국내에서 연간 신규 출점 매장 100개를 돌파하며 전체 매장 수를 599개로 늘린 이후 전국 대도시 주요 핵심 상권과 백화점 등 목 좋은 상권에 간판을 걸었다. 2016년엔 매출 1조원도 돌파했다.



그 많은 스타벅스 매장,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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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광장 주변 반경 500m의 주요 카페 매장 분포.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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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는 어떻게 주요 상권을 장악한 것일까. 프랜차이즈 업계는 국내 유통산업에서 반복된 ‘규제의 실패’가 스타벅스 같은 외국계 직영 브랜드의 성공 밑거름이 됐다고 평가한다. 2012년 당시 공정거래위원회가 카페 가맹업에 적용한 신규점포 출점 거리제한 기준이 시작이다. 당시 공정위는 카페 가맹본부에 대해 기존 매장 반경 500m 이내에 신규 출점을 제한했다. 영세한 골목 카페를 가맹 커피전문점의 공세로부터 보호하고, 출점 경쟁에 불이 붙은 가맹 커피전문점의 수익도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규제의 효과는 ‘100% 직영’ 원칙인 스타벅스에 돌아갔다. 가맹사업 전문가인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장은 “당시 질주하던 카페베네가 출점 거리 제한 규제 대상에 든 뒤 휘청이기 시작한 반면, 스타벅스는 규제를 적용받지 않고 매장을 빠르게 늘렸다”며 “‘브랜드 싸움’인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출점 제한 규제가 결과적으로 토종 브랜드의 성장을 가로막은 셈”이라고 말했다. 규제의 역효과 문제가 제기되자 공정위는 2년 만에 카페 출점제한 규제를 없앴지만, 이미 커피 시장은 직영점 중심 대형 자본으로 넘어간 뒤였다.

유통 규제의 실패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보호 취지로 정부와 국회가 만든 규제 법령이 목적 달성에 실패하자, 다시 이를 수습하기 위해 또 다른 규제를 만들어내는 식이다. 대표적인 게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다. 1997년 탄생한 유통산업발전법은 이후 62차례 개정을 거치며 ‘누더기법’이 됐다. 특히 2010년대 들어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가 지역 상권을 장악한 이후 전통시장 매출이 급락하자 규제가 강화됐다. 대형마트에만 적용하던 등록제를 기업형 슈퍼마켓(SSM)으로 확대하고 이런 점포의 출점을 제한하는 전통상업보존구역을 도입했다.

20대 국회에서도 유통산업발전법은 42건의 개정안이 발의됐다. 중앙일보와 한국경제연구원이 분석한 결과, 이들 개정안의 상당수가 지역 상권의 울타리를 높여 대기업의 대규모 점포의 출점을 더욱 어렵게 제한하는 법안이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대기업의 복합쇼핑몰 입지를 철저히 검증하도록 해 출점을 어렵게 했다. 김성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6월 대표발의한 ‘대기업 등의 영업활동 공정화 및 소상공인 보호에 관한 법률안’은 영세 상인을 위한 생계형 적합업종 중 공정위와 중소벤처기업부가 협의해 ‘공정영업 대상 업종’을 따로 지정하고, 해당 업종에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기존에 진출한 대기업에 대해서는 의무휴업일 지정을 명하는 등 영업시간을 제한할 수 있게 했다.



대기업 유통 장악은 옛말…‘온라인 vs 오프라인’ 경쟁 맞는 규제 나와야



이처럼 대규모 점포의 출점을 막거나 의무휴업일을 지정하는 게 전통시장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고, 소비자의 선택권도 제한한다는 의견이 점차 힘을 받고 있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온라인 시장 때문에 대기업 유통업체는 이미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을 한다고 해서 소비자가 전통시장으로 가지도 않으니 전체적인 소비 위축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 온라인 유통 시장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쿠팡은 2014년 매출 3485억원에서 2018년 4조4227억원으로 10배 이상 성장했다. 반면 이마트는 지난 2분기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299억원)를 기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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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물류센터.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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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78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등은 이런 성장 추세라면 2022년 온라인쇼핑 시장 규모는 최대 19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쿠팡뿐만 아니라 심지어 아마존 같은 해외 온라인 전자상거래와 경쟁해야 하는 마당에 한 달에 2번 문을 닫으면 오프라인 유통은 죽으라는 것”이라며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온라인 유통사도 한 달에 이틀 정도는 주문을 받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재계도 달라진 유통환경에 따라 규제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상의는 지난 9월 “대규모 점포 규제는 과거 대기업의 공격적인 점포 확장으로 전통시장 상인이 생존권을 걱정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규제”라며 “대형마트가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이는 지금 시점에 적합한지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조사(2017년)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소비자 행동을 조사해보니 ‘쇼핑을 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27.9%로 가장 많았다. ‘전통시장을 이용한다’는 소비자는 12.4%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상당수 발의안은 유통을 산업적 관점보다 ‘대·중소기업 상생’과 ‘약자 보호’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한계에 갇혀 있다. 김정호 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내놓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법의 주무 부처를 산업부에서 중기부로 변경하고 관련 사무를 이관하자는 내용이다.

전문가는 소상공인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담당부처인 중기부가 유통 산업을 맡게 되면 “유통을 거대 산업이 아닌, 대·중소상공인 간 갈등 관점에서 볼 것”이라고 우려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유통산업은 이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쟁 구도로 넘어왔다”며 “미국의 월마트, 영국의 테스코도 온라인의 아마존에 고전하고 있는데, 중소상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규제를 늘리는 것은 산업 전체에 불이익을 주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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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유통산업발전법 관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중소자영업자에 대해 우리사회 발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정치권이 합심해서 대책세울 때"라고 말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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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을 앞둔 국회에선 ‘골목 표심’을 노린 규제법안 띄우기가 한창이다.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당ㆍ정ㆍ청 을지로위원회(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에서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등 여당 지도부는 한국당 등에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통과에 협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익표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안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복합쇼핑몰에 대해 월 2회 의무휴업을 하도록 하고 대규모 점포 등록 시 지역상권발전기여금을 내도록 했다. 지난 9월에도 당ㆍ정ㆍ청은 대형 유통업체의 입점을 규제하기 위한 대책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지구단위계획을 세울 때 대형 유통점의 입지 허용 여부를 검토할 수 있도록 했다.



유통 산업 전체를 함께 키울 상생의 길은 없나



대기업 유통자본에 대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골목상권의 위기는 여전하다. 온라인과 신종 오프라인 유통망 등 유통산업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가구 유통 전문점 이케아·생활용품 전문점 다이소 등 새로운 형태의 대규모 유통업체나 대형 식자재마트 등은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규제를 받지 않은 채 골목 상권을 장악했다. 김완태 소상공인연합회 전문연구위원은 “국회가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상인의 생존권을 정말 지키려고 한다면 전문성을 더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락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정책부장은 “유통 산업 전체가 크게 바뀌는데, 정치권도 대기업에 대한 규제만큼이나 중소상인의 유통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법안에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박수련·강기헌·임성빈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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