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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미국 공주와 겸상’ 고종, 한식 만찬의 씁쓸한 뒷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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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석의 시사문화재]

114년 전 루스벨트 대통령 딸 방한

서양인에 17첩 한식 대접 ‘파격’

국권 회복 가능성 없던 쇠망기

나라 자존심 세우려던 노력 깃들어


한겨레

1905년 9월20일 고종 황제가 앨리스 루스벨트 등 미국의 아시아순방단 일부 단원들과 오찬했을 당시의 음식을 재현한 모습. 신선로에 든 열구자탕과 골동면(비빔국수), 편육, 수어증(숭어찜) 등이 보이는데, 모두 한식이다. 문화재청 제공


114년 전인 1905년 9월20일 점심 나절. 지금의 서울 정동 덕수궁 권역 뒤편에 자리잡은 2층짜리 근대건물 중명전 1층 식당에서는 이 땅의 근대음식문화사에 큰 파장을 던진 오찬 사건이 일어났다.

고종 황제는 이날 사상 처음 자신을 만나러 온 한 미국인 여성과 대등한 구도로 양자회담 하듯 마주보며 음식을 같이 먹었다. ‘미국에서 온 공주’로 불렸던 이 여성의 이름은 앨리스 루스벨트. 불과 보름 전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을 중재해 포츠머스 종전 조약을 맺게 한 주역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그의 아버지였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인 식사 자리의 메뉴는 양식이 전혀 없는, 담담하고 소탈한 느낌을 주는 조선 궁중의 전통 잔치용 한식이었다. 화통이 달린 신선로 용기에 소고기, 해물, 채소 등을 넣고 끓인 열구자탕이 나왔다. 얇게 저민 전복을 간장에 조린 전복초, 고급스러운 재료를 넣어 맛이 슴슴한 비빔국수인 골동면, 숭어 살과 소고기 정육을 함께 넣어 끓인 수어증이 뒤이어 놓였다. 생선전인 전유어, 누름전인 화양적, 배추와 무를 간장으로 간해 담근 국물김치인 장침채, 고급 떡인 후병, 약밥인 약식, 배인 생리와 밤인 생률, 포도, 홍시, 과실을 가공한 정과, 숙실과 등 모두 17종의 전통 한식 잔치음식이 잇따라 등장했다. 여기에 양념류인 초장과 겨자인 개자, 흰빛 나는 고급 꿀 백청까지 3종의 양념이 합쳐졌다.

서양 여성을 상대로 한 고종 황제의 오찬 참석과 온전한 한식 메뉴 제공은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황제는 서양 사신과의 연회를 주최했지만, 함께 식사를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왜 서양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국제 관행에도 맞는 서양 요리를 쓰지 않고 온전히 한식을 고집한 것일까. 1880년대 이후 서양 문물과 문화가 물밀듯 밀려들면서 대한제국에서는 유럽식 연회가 외교관 및 외국인들과의 교류 관계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부각되던 때였다. 그런데도 고종은 자신이 선정에 관여했음이 분명해 보이는 17가지 음식을 내놓았다. 고종은 그해 이 음식들을 앨리스를 포함한 외국의 명망가들에게 직접 주빈이 되어 세 차례 대접했다. 대접을 받은 다른 이는 대한제국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던 일제의 실력자들이었다. 5월22일 중명전에서 함께 식사한 일본 왕족인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와 을사늑약 체결을 진두지휘하러 11월10일 어전을 찾아온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그들이다.

원래 조선에서는 ‘예의 시작은 음식’이라고 한 경전 <예기>의 가르침을 중시했다. 연회 등의 의례 음식이 나라와 집안의 격과 위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방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왕실의 잔치인 진연에서도 음식의 종류와 개수, 구성 등에서 참여하는 신분과 직위에 따라 엄격한 제한을 두었고, 모든 준비 과정을 그림과 글로 기록했다.

일본을 비롯한 서구 각국과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조선왕조와 대한제국 정부에서는 전통의 기본 정신 아래 새로운 조류에 참여하는 구본신참의 정신에 따라 새로운 음식문화를 개발하는 것이 근대국가로 가기 위한 상징적 과제였다. 지금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전은 서양과 전통이 조화된 새 음식 메뉴 개발을 위해 왕실과 관리들이 얼마나 고민하고 공들였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다. 서양 음식 예절과 음식 문화를 조선 관리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주는 <서유견문> 등 기록과 당대 서구인들이 조선 음식을 경험한 견문기 등을 비치해놓았다. 1902년 왕실 잔치 그림인 <임인진연도>, 황실이 직접 쓴 서구·일본제 식기, 오얏꽃 문장 새겨진 접시그릇 등도 만날 수 있다.

고종과 앨리스의 오찬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당시 고종은 국권을 자력으로 회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은 장기전으로는 승산이 없던 러일전쟁을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의 중재로 승전으로 마무리했다. 미국은 일본의 우방이었고, 루스벨트는 당대 최고의 친일파 인사였다. 그의 딸이 일본과 조선을 돌았으니 조선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환대를 베풀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통의 메뉴와 격조를 내세운 정찬 메뉴는 그런 씁쓸한 국권 쇠망기에 나라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노력을 함축한다.

한겨레

1905년 9월 고종 황제와 앨리스 루스벨트의 오찬 당시 먹었던 한식들을 지난 9월 신세계조선호텔 조리팀이 고증, 재현해 내놓았다. 열구자탕, 골동면 등 당시 오찬 메뉴들을 재현한 음식들을 중심에 놓고 고종과 앨리스로 분장한 모델들과 조리사를 함께 찍은 기념홍보용 사진이다. 신세계조선호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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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조선호텔은 지난 9월23일 메뉴 복원을 기념해 앨리스와 고종으로 분장한 모델을 세워놓고 활짝 웃는 모습으로 홍보용 사진을 찍어 배포했다. 이 한식 만찬에 깃든 절박하고 가슴 아픈 역사를 생각했다면 모델들이 웃는 사진은 찍지 말았어야 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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