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르포] 남해 섬지역 소나무 몰살 위기…재선충 또 ‘붉은 습격’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가왕도·소매물도·곤리도·화도…

산림 전문가들, 14개 섬 실태조사

가왕도는 이미 ‘소나무의 무덤’

한려해상국립공원 섬에도 유입

“방제·예방주사 등 확산 차단을”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소나무를 말려서 죽이는 소나무재선충병이 남해안 섬지역을 덮쳤다. 한려해상국립공원 구역도 예외는 아니어서, 통영 가왕도 소나무숲을 이미 몰살시키고, 소매물도·곤리도·화도 등 주변 섬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남해안 섬지역을 덮친 소나무재선충병의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20일 경남 거제시 대포항에서 낚싯배 미래1호를 타고 가왕도에 들어갔다. 가왕도는 44만여㎡ 면적의 무인도로,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다. 방목하려고 풀어뒀으나 잡을 수 없어서 방치한 염소들만 살고 있다.

현장에서 확인한 가왕도는 소나무에게 ‘죽음의 섬’이었다. 살아있는 소나무를 단 한그루도 발견할 수 없었다. 섬 전체에 소나무숲이 형성돼 있었으나, 모든 소나무는 이파리 하나 없이 발가벗겨진 채 말라죽어 있었다. 동백 등 다른 나무는 푸르고 싱싱한데, 소나무만 몰살당한 상태였다.

소나무만 골라서 죽이는 소나무재선충이 휩쓸고 지나간 증거였다. 2017년 초까지 방제작업을 한 흔적이 섬 곳곳에 남아 있었다. 방제작업이 완벽하지 않았거나, 방제작업 이후 소나무재선충이 다시 섬을 덮쳐 소나무를 몰살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미래1호 선장은 “5년쯤 전부터 가왕도 소나무가 말라죽기 시작했는데, 2017년 갑자기 심해져서 지금처럼 됐다”고 말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엔 거제 저구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남쪽으로 50분 거리인 소매물도로 갔다. 소매물도는 예쁜 등대섬과 둘레길을 갖추고 있어서, 등산객과 낚시꾼 등 많은 관광객이 찾는 섬이다. 하지만 소매물도 소나무숲은 단풍이 든 것처럼 울긋불긋했다. 여기에도 소나무재선충병이 상륙한 것이다.

둘레길을 따라 걸어가 보니, 이미 여러 차례 방제작업을 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것이 확인돼 방제작업을 할 목적으로 붙여둔 노란색 표시를 그대로 달고 있는 소나무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이런 소나무 주변에는 어김없이 누렇게 말라죽어 가는 소나무가 더 있었다. 제때 방제작업을 하지 않아 소나무재선충이 주변 소나무로 퍼진 것이다.

현장을 확인한 박길동 산림기술사는 “소나무재선충병은 초기에 제때 방제하면 주변 확산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때를 놓치면, 짧게는 6개월 길어도 2년이면 숲 전체를 몰살시킨다. 서둘러 완벽하게 방제하지 않으면, 소매물도 소나무숲도 가왕도처럼 몰살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해안 섬들을 덮친 소나무재선충병의 심각성은 ‘경남 남해안 도서 소나무재선충병 실태조사 및 방제방안 마련 조사결과 보고서’에서 명확히 확인된다. 박길동 산림기술사와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산림전문가들과 함께 지난달 8일부터 지난 2일까지 경남 거제와 통영의 섬들을 조사해 냈다. 조사대상 섬은 가왕도, 매물도, 소매물도, 화도, 한산도, 비진도, 곤리도 등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 있는 7개와 사량도, 하도, 두미도, 상노대도, 욕지도, 우도, 연화도 등 한려해상국립공원 밖에 있는 7개 등 모두 14개이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1일 보고서를 보면, 통영 가왕도는 2017년 상반기 방제작업 이후 2년 동안 방치되면서 섬 안의 모든 소나무류가 몰살당했고, 이제는 더이상 피해가 늘어날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소매물도는 85.4%, 화도는 74.6%, 곤리도는 44.4%의 소나무가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려, 서둘러 방제하지 않으면 1~3년 안에 몰살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비진도와 욕지도에도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가 발견됐다. 현재는 육지에 가까운 섬 중심으로 소나무재선충병이 확인되지만, 바닷바람을 타고 이웃 섬으로 계속 퍼져나가 남해안 전체 섬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섬지역 방제작업은 육지의 산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지형이 가파르고 도로가 없어서, 대형 장비를 이용한 작업을 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방제작업은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를 베어서 토막 낸 뒤, 두꺼운 비닐로 싸서 밀봉하고 약물을 집어넣어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를 죽이는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가파른 암반 지형에서는 작업도 어렵고 약물이 새나갈 가능성도 크다. 항공방제를 하려고 해도 섬 주변에 양식장이 많아서 곤란하다.

이 때문에 보고서는 체계적인 관찰을 통해 발생 즉시 방제작업을 실시, 소나무재선충병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별도로 섬지역 소나무들을 대상으로 예방주사를 놓아서 소나무재선충병 유입을 차단할 것을 권고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소나무류는 우리나라 전체 산림의 25%를 차지하며, 특히 섬지역에선 70~80%를 차지한다. 소나무재선충병을 막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소나무재선충병은 소나무, 리기다소나무, 해송, 잣나무 등 소나무류를 골라서 죽인다. 솔잎을 먹고 사는 솔수염하늘소의 다리에 붙어사는 선충이 소나무의 수관을 막아서 생기는 병이기 때문이다. 아직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아, 이 병에 걸린 소나무는 모두 말라죽는다. 국내에는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일본에서 부산항을 거쳐 유입된 것으로 추정한다. 2000년대 들어 방제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지만,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이미 광범위하게 퍼진 상태다.

글· 사진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페북에서 한겨레와 만나요~
▶신문 보는 당신은 핵인싸!▶7분이면 뉴스 끝! 7분컷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