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8 (토)

[단독]법원 “납품사 기술유용 기업에 제재 적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너스, 하도급업체 기술자료 제공받아 부당하게 단가 깎아

원사업자의 기술유용 행위에 공정위 과징금 등 합당 첫 판결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하도급업체의 기술자료를 경쟁업체에 넘긴 뒤 단가를 부당하게 깎은 원사업자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가 적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원사업자의 ‘기술유용’ 행위에 대한 법원의 첫 판단이다.

4일 법원과 공정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6부(재판장 박형남 부장판사)는 전동 물걸레청소기 제조업체 ‘아너스’가 “공정위 제재를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지난달 27일 공정위 손을 들어줬다.

아너스는 2015~2017년 전동 물걸레청소기의 전원을 공급·차단하는 전자제어장치 기술자료 18개를 하도급업체인 ㄱ사에 10여 차례 요구해 받고, 이를 ㄱ사 경쟁업체 8곳에 넘겼다. 이후 경쟁업체들로부터 받은 견적서를 바탕으로 ㄱ사 납품가를 부당하게 깎았다. 아너스 물걸레청소기는 2011년 출시 후 2017년까지 약 110만개(1000억원 규모)가 팔린 인기 상품으로, ㄱ사 매출은 모두 아너스와의 거래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하도급법상 기술유용 혐의로 아너스를 고발하고 시정명령과 과징금 5억원을 부과했다. 2017년 9월 문재인 정부가 기술유용 근절대책을 발표한 뒤 출범한 공정위의 기술유용전담 조사팀의 두번째 제재 사례였다.

아너스는 공정위 제재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아너스는 해당 기술자료에 ㄱ사 고유의 기술이 담겼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술유용 혐의를 부인했다. 해외 수출에 필요한 인증 등을 위해 기술자료를 정당하게 요구했다고도 주장했다. 재판에서는 아너스가 요구한 자료를 하도급법이 보호하는 ‘기술자료’로 볼 수 있는지 등이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ㄱ사 자료가 독자적이고 경제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며 기술자료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청소기 본체에 전원을 공급·차단하는 핵심 부품 작동을 위한 기초자료”라며 “영업에 유용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ㄱ사가 자료를 개발하는 데 들인 비용과 시간의 많고 적음은 기술자료 판단 여부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제품 수출에 필요한 해외 인증 등 정당한 목적으로 기술자료를 요구했다는 아너스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일부 자료는 인증에 필요하지 않았고 인증대행기관이 요구한 적도 없다”며 “자료 요구가 필요최소한도 범위 안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ㄱ사 대표 진술 등을 근거로 “핵심 기술이 집약된 자료를 다른 업체에 제공하는 것을 승낙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아너스의 기술유용 행위로 ㄱ사가 현저한 경영상 타격을 입었다며 과징금 액수도 과하지 않다고 봤다. ㄱ사는 2017년 8월 아너스와의 거래가 단절되자 그해 매출이 전년보다 34% 하락했다. 아너스 법인과 대표에 대한 형사재판은 수원지법에서 진행 중이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신문 최신기사

▶ 기사 제보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