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56739056 0252019120656739056 02 0201001 6.1.14-RELEASE 25 조선일보 0 false true true false 1575605700000 1575614121000

[단독] "2만원이면 수능 만점" 가짜 수능성적표 대량 유통 왜?

글자크기
가짜 수능 성적표, 2만원 내면 5분 만에 구매 가능
평가원장 직인까지 똑같아…실제 대입엔 사용 못 해
판매업자 "하루에 30장 팔았다"
"부모님 속이려" "재수학원 제출용" "과시용" 용도
판매자·구매자 모두 형사처벌 대상

"수능 성적표 살 수 있나요?"
"2만원입니다. 카톡으로 한글파일 보내드리고, 점수는 만점이든 원하는 대로 작업하세요."

2020학년도 수능 성적표가 배부된 지난 4일, 한 소셜미디어에 "직접 제작한 수능 성적표 판매한다"는 글과 함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익명 채팅방) 링크가 첨부됐다. 링크를 눌러 카카오톡으로 판매자에게 구매 문의를 하니 이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직접 만들었다는 가짜 수능 성적표는 실제 성적표와 완전히 똑같은 모습이었다. 가격은 2만원.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형사처벌 대상인데도 매년 가짜 수능 성적표가 반복해서 유통되고 있다.

조선일보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 가짜 수능 성적표를 구매하는 상황. /고성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루에만 30개 성적표 팔았다"…가짜 수능 성적표 대량 유통
이날 중고물품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와 카카오톡 오픈채팅, 네이버 블로그, 트위터 등 온라인에는 수능 성적표 양식을 판매한다는 글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일부 판매자는 암호처럼 ‘성적표’의 초성만 딴 ‘ㅅㅈㅍ’라는 이름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만들었다.

기자가 이날 오후 9시쯤 한 판매업자와 접촉하니, 그는 샘플로 가짜 성적표 양식을 보내줬다. "2만원을 내면 카카오톡 메시지로 곧바로 성적표를 보내 줄 수 있다"고 했다. 한글파일(hwp) 형태 문서라 스스로 점수를 입력한 뒤 출력하는 방식이다. 그가 직접 만들었다는 가짜 성적표는 실제 성적표와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로고가 도표 뒷면에 그려졌고, 평가원장 직인도 진본과 같은 위치에 찍혀 있었다. 표준점수 등 각종 용어를 설명하는 문구 위치와 폰트도 실제 성적표와 같았다.

조선일보

가짜 수능 성적표 판매업자가 보내준 2020학년도 수능 성적표 양식. /고성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자가 "돈만 받고 성적표는 안 보내주는 사기 거래 아니냐"고 하자, 그는 자신의 카카오톡 대화창을 캡처해 보내왔다. 그에게는 오후 6시, 6시 30분, 7시 등 30분에 한 명꼴로 가짜 성적표를 산다는 문의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하루에만 30개 성적표를 팔았고, 모의고사까지 포함하면 올해 80개쯤 가짜 성적표를 팔았다"고 했다. 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사람이 있는지 따져보고 연락하겠다고 하자 그가 다급해졌다. "자정까지만 팔 거니 빨리 연락 주세요. 재촉하는 게 아니라 길게 하면 경찰에 걸릴 수 있어서, 수능 성적표는 오늘만 팔아요. 지금 세 분한테 또 구매 문의 연락이 왔어요."

◇재수학원 제출, 부모님께 거짓말, 소셜미디어 과시용…"판매·구매 모두 형사처벌"

가짜 성적표 유통은 매년 수능철 반복된다. 가격은 주로 1만~3만원선. 가짜 수능 성적표가 대입(大入) 과정에서 문제 될 일은 없다. 전산으로 수험생 성적이 각 대학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가짜 수능 성적표가 유통될까? 가짜 성적표가 유용하게 쓰이는 곳은 재수(再修)학원이다. 유명 재수학원 상위반에 등록하려면 높은 수능 성적이 필요하고, 수능 등급에 따라 수업료도 감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가짜 수능 성적표를 들고 찾아온 수험생이 작년에도 한 명 있었다"며 "표준점수와 백분위가 실제 성적표 숫자와 달라 가짜 성적표임을 확인했다"고 했다.

가짜 성적표는 이외에도 △부모님에게 망친 실제 수능 성적표 대신, 다소 아쉬운 점수의 성적표를 보여드려 재수를 설득하기 위해 △소셜미디어 과시용 △대학생이 학부모에게 높은 수능 성적표를 보여주며, 과외비를 더 받고자 할 때 등 이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은 가짜 수능 성적표를 판매·구매하는 행위 모두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밝혔다. 판매자는 공문서위조 혐의, 구매자는 위조 공문서 행사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실제 2015년 한 수험생은 자신이 지망하는 학과에 다른 수험생의 원서접수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수능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고, 비슷한 성적의 수험생 80여 명이 서울대 경영학과 등에 지원할 예정"이라며 가짜 고득점 수능 성적표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가 경찰에 입건됐다. 이 수험생에게 성적표를 만들어준 판매업자도 뒤이어 검거됐다.

[고성민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