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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경찰은 왜 고래고기 사건으로 검사를 수사하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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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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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울산경찰청의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수사를 놓고 지방선거를 겨냥한 청와대 ‘하명수사’ 논란이 일더니 난데없는 ‘울산 고래고기 사건’ 얘기가 튀어나왔습니다. ‘하명수사’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특감반이 지난해 1월 울산에 내려갔다는데, 청와대에선 그게 고래고기 사건 때문이라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고래고기 사건이 뭐길래 그런 걸까요? 안녕하세요, 울산 지역을 취재하는 전국1팀 선임기자 신동명입니다. 고래고기 사건은 2016년 4월 울산의 한 경찰서에서 밍크고래 불법포획 사건을 수사하면서 증거물로 고래고기 27t을 압수했는데, 이를 울산지검이 한달 만에 21t을 피의자인 유통업자들에게 돌려준 일을 말합니다. 이를 놓고 울산경찰청이 2017년 9월 위법성을 가려보자고 담당 검사를 상대로 수사에 나서면서 형사사건 수사권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기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수사 지휘자가 경찰 수사권 독립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황운하 대전경찰청장(당시 울산경찰청장)이었지요.

검찰은 고래고기를 돌려준 이유에 대해 “돌려준 고래고기에 대해 불법포획 등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했다”고 밝혔지만, 경찰은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에 넘긴 고래고기 샘플의 유전자(DNA) 검사 결과도 나오기 전”이었다고 반박합니다. 2017년 12월 “모두 불법유통 밍크고래로 추정된다”는 유전자 분석 결과가 나왔을 때엔 이미 고래고기가 모두 유통업자들에 의해 팔려나간 뒤였죠. 사라진 고래고기의 가치를 경찰은 30억원(소비자가), 검찰은 4억7천여만원(수협 위판가)으로 추산합니다. 어떻든 ‘억’ 소리 나는 금액입니다.

당시 유통업자들은 고래고기를 돌려받으려 2억원의 수임료를 주고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변호사는 2013년까지 울산지검에서 담당 검사와 같은 분야의 수사를 맡았던 검사였다고 합니다. 선배 검사 출신으로 ‘전관예우’ 의혹이 나오는 이유죠.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불법포경을 엄단해야 할 검사가 ‘봐주기 기소'로 되레 포경업자들의 경제적 이득을 도와줬다”며 담당 검사를 직무유기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그래서 본격 수사가 시작된 겁니다.

그래서 경찰 수사는 어떻게 됐느냐고요? 고래고기를 주고받은 담당 검사와 유통업자, 이를 도운 변호사가 삼각 연결고리인데 경찰은 유통업자 3명 중 1명만 구속했을 뿐입니다. 담당 검사와 변호사는 2년이 넘도록 ‘조사 중’입니다.

경찰은 변호사 사무실과 통신·금융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는데 검찰이 통신·계좌만 받아들였고, 수사에 필요한 핵심은 다 제외해 제대로 수사할 수 없었다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또 2018년 6월 변호사에 대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이것도 검찰이 기각했습니다.

담당 검사에 대한 수사도 ‘사무실에 없다’ ‘공판에 출석했다’ 등의 이유로 무산됐고, 국외연수를 떠났다며 서면조사도 미뤘습니다. 올해 1월에야 경찰에 서면답변서를 제출했는데 “원칙과 절차에 따라 돌려줬다”는 원론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울산지검은 언론에 ‘참고자료’를 배포해 “수사기관은 수사 결과로 말하는 것이지 그 과정에서 확정되지 않은 내용이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며 경찰의 언론 브리핑을 노골적으로 비판합니다. 그러더니 지난 6월 울산경찰청이 무면허 약사 구속 사건 보도자료를 낸 것과 관련해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조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경찰관 2명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냈는데, 하필 이 경찰관들이 고래고기 사건 수사를 맡았던 경찰관들이라 ‘보복수사’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검찰과 경찰의 팽팽한 기싸움이 한창이던 때 울산경찰청의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수사가 맞물리면서 검·경 두 기관의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습니다. 검찰은 결국 지난 3월과 4월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김 전 시장 비서실장과 동생 사건을 모두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그날, 이 수사를 맡았던 경찰관 1명의 개인비리 사건을 파헤친다며 울산경찰청을 압수수색하고 경찰관도 구속합니다. 이후 검찰 수사가 울산지검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옮겨가더니 ‘하명수사’ 논란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처럼, 거대 권력기관과 정치판의 고래 싸움 속에 정작 밝혀져야 할 고래고기 사건과 김 전 시장 측근 비리 의혹의 진상은 영영 묻히지나 않을까 우려되는 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한겨레

신동명 전국1팀 선임기자 tms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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