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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청소년 꿈 지켜주세요" 님비에 막힌 여명학교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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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로 이전 계획 알려지자 일부 주민 "동의 절차 없었다" 반발

사실상 신축 절차 중단… 구청 "의견 팽팽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조선일보

서울 중구 남산동에 있는 탈북 청소년 대안 학교인 여명학교. /장련성 기자

'무릎 꿇어 줄 어머니마저 없는 탈북 청소년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6일 오전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이런 제목으로 글이 올라왔다. 글을 올린 이는 탈북 청소년 대안 학교인 여명학교의 조명숙 교감이다. 조 교감은 "우리 여명학교 교사들이 국민 여러분과 주민들께 무릎 꿇고 호소하오니 여명학교가 통일의 상상 기지인 은평구로 이전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그는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장애 학생 어머니들이 무릎을 꿇고 호소해 여론을 움직였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무릎을 꿇어줄 어머니도 없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에 있는 여명학교가 건물 임대 계약 만료로 은평구로 이전하려던 계획이 해당 지역 일부 주민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차질을 빚자, 학교 측이 청와대 국민 청원에 직접 사연을 올리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해결을 호소하고 나섰다.

2004년 문을 연 여명학교는 서울에 있는 탈북 청소년 학교다. 교사 16명이 17~25세 학생 89명에게 고교 교과목을 가르치고 수능 시험 준비도 돕는다. 2010년 학력 인정 대안 학교로 인가받아, 졸업하면 바로 고졸 학력을 인정받는다. 전교생 중 한쪽이라도 부모가 있는 학생은 70%이고 재학생 절반 정도는 기숙사 생활을 한다. 졸업생 328명 중에는 임용 고시에 합격한 교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도 있다. 지난해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 중에 여명학교 출신이 있다. 지난 4월 포스코 청암교육상도 받았다.

여명학교는 중구 남산동 현 교사(校舍) 임대 계약 만료(2021년 2월)가 다가오자 신축 이전을 추진했다. 현재 부지가 남산 자락에 있어 대중교통편이 불편하고 운동장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고른 땅이 은평구 진관동의 2143.3㎡다.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 등과 협의해 터를 매입하는 행정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중학교 과정까지 신설해 학생 규모도 2배 이상으로 늘린다는 청사진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이 암초를 만났다. 여명학교 이전을 알게 된 일부 주민이 조직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학교 이전안을 설명하는 공청회에 참석한 주민 상당수가 "주민 동의가 전혀 없었다"며 반대했다. 지난 3일에는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도 '은평뉴타운 내 주민 의견을 무시한 여명학교 신설·이전 추진을 막아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청원인은 "주민 동의나 알림 없이 학교 이전을 끼워 넣기식으로 추진 중"이라며 "공청회 자료에 '서울시 대안 학교'라고만 표기해 주민들은 이 학교가 '탈북자 여명학교'라는 것조차 인지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은평뉴타운 내 새 학교도 짓지 않았는데 전혀 무관한 탈북자 여명학교가 들어온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며 "우리 아이들은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수업하며 학습권을 침해당하고 있다"고도 했다.

6일 올라온 여명학교의 청와대 청원은 대응 성격도 있다. 하지만 각을 세우지 않고 일관되게 납작 엎드려 호소했다. "(주민들) 학교가 부족한 상황에 일반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가 들어오는 게 불편한 마음이 있다 하니, (문재인 대통령이) 학교와 주민 편익 시설을 지원해달라"고 청와대에 청원했다. 이어 "학교 건물을 작더라도 예쁘고 따뜻하게 짓고, 어려운 이웃들을 솔선해 돕도록 하겠다"고 했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반대한다면 여학생만 기숙시키고 규모도 줄이겠다"는 구체적 약속도 했다.

여명학교의 신축 이전 절차는 주민들 반대로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향방은 은평구에 달려 있다. 구에서 학교 이전 계획안을 확정해야 서울시가 도시재정비위원회에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구 관계자는 "주민들 의견이 팽팽히 엇갈려 어떻게 될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구의 태도는 스스로 정한 구정(區政)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평구는 통일로와 경의선 철길이 다닌다는 점을 부각해 '통일 상상 기지'를 표방하며 통일 관련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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