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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패스트트랙 오른 18세 선거권…"학교 정치화" vs "학생 믿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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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3월 '찬성 51%'→12월 '반대 50%'

교육계 "고3도 정치활동, 제2 인헌고 날라"

찬성측 "다른 나라는 16세 선거권도 논의"

중앙일보

촛불청소년 인권법 제정연대 학생들이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만 18세 선거연령 하향 패스트트랙 본회의 통과 촉구 행동'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일제강점기 3.1운동부터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까지, 청소년들은 언제나 '현재의 주인'으로서 정치에 참여해왔다"면서 "만 18세 선거권 보장은 더 많은 청소년들의 참정권 보장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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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연령을 현행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으로 지정돼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가운데 찬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아직 고교를 마치지 않은 고3 학생에게 선거권을 주면 학교가 정치화될 것이란 반대 목소리와 세계적인 추세에 비춰 선거 연령을 낮추는 게 당연하다는 찬성 측 주장이 맞부딪히고 있다.

지난달 2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의 의뢰로 선거연령 하향 조정에 대한 국민 여론을 조사한 결과, 반대 의견(50.1%)로 찬성 의견(44.8%)을 오차 범위 내에서 앞질렀다. 지난 3월 리얼미터의 조사에선 찬성 비율(51.4%)이 반대(46.2%)보다 높았는데, 9개월 만에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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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8세 이상, 선거연령 하향 조정에 대한 여론 변화. 그래픽=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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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연령 하향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정치편향 교육' 논란을 빚은 서울 인헌고 사태 이후 활발해졌다. 부산의 한 고교 중간고사 한국사 시험에 검찰을 비판하는 내용이 출제되고, 서울의 모 중학교 교사가 수업 중 보수집회의 연설을 들려주고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에 비유하는 사건도 이어졌다.

지난 2일 보수 성향의 교원단체인 한국교총은 국회 앞에서 한국사립초중고법인협의회 등 단체들과 함께 '고3까지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선거법 개정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한국의 만18세는 고등학교를 마치지 않은 시기(고3)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교총은 "선거법 개정안은 선거연령을 한살 낮추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고3에게 선거운동과 정치활동까지 허용하는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선거 때마다 보수·진보의 이념적 대립이 교실 안으로 침투해 학생을 선도하고 정치도구할 것"이라고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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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학부모단체연합 회원들이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조희연 교육감 규탄 및 인헌고 교장·교사 10명 검찰 고발' 기자회견에서 정치 편향 교육 논란을 빚고 있는 인헌고 교장과 교사들의 징계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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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선거연령 하향에 찬성하는 측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유일하게 만 19세 선거권을 고수하는 나라"라고 지적한다. OECD 35개국 중 16세 선거권을 인정한 오스트리아를 제외하고 33개국이 만 18세 선거권을 인정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만 16세 선거권을 논의하는 시점에, 한국은 만 18세 부여 여부를 놓고 대립하는 모습 자체가 답답하다는 것이다. 강민진 정의당 청년대변인은 지난 5일 JTBC에 출연해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이란 얘기는 엄청난 위선"이라면서 "청소년들이 직접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참정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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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제19대 대선일에 18세 이하 청소년이 참여하는 ‘모의 대선’이 전국 30곳의 투표소에서 진행됐다. 한국YMCA 전국연맹이 주축이돼 일반 선거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며, 청소년증ㆍ학생증 등을 통해 통해 신분을 확인한 뒤 모의투표용지를 받아 기표소에서 기표한 뒤 투표함에 넣는 방식이다. 대구 2ㆍ28기념 중앙공원에서 청소년들이 YMCA 봉사자의 안내를 받아 모의 선거에 참여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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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대변인은 "OECD 국가 중 스웨덴·독일·체코 등 여러 나라에서도 고교 시절 선거권이 주어지는 데, 한국만 고3 선거권을 문제 삼는 것은 기우"라고도 말했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만 18세는 공무원 임용이 가능한 나이고, 이미 대학에 진학한 경우도 꽤 많다"면서 "한국 고3은 선거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민주시민적 역량과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기성세대가 이를 신뢰하고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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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인헌고 및 서울시교육청의 학생 인권 침해 국가인권위 진정 및 고발 기자회견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인헌고와 서울시교육청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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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대하는 이들은 한국과 외국의 상황을 나이로만 비교해선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일본·미국 등 만 18세 선거권을 인정한 나라들은 만 17세에 고교를 졸업한다. 중등교육(중·고교)을 마칠 때까지는 정치 참여보다 배움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선(先) 학제개편, 후(後) 선거연령 하향'을 주장하는 자유한국당도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한다. 자유한국당은 현재 8세인 취학연령을 7세로 낮춰 만 18세에 고교를 졸업하게 한 뒤, 선거연령 하향을 추진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주장처럼 학제개편을 하려면 교육과정 전반을 대폭 개편해야 한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 현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성급하게 정책을 도입하면 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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