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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다시 식당으로… ‘탑골공원 GD’ 양준일 깜짝 귀환 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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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슈가맨3’ 출연 화제… 양준일 “옛날에 묻어버린 꿈이었는데”

“‘온라인 탑골 공원’ 주목 받은 7~8월부터 섭외 준비”
한국일보

가수 양준일이 6일 방송된 JTBC 음악 예능 프로그램 '슈가맨3'에 출연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JTBC 제공


긴장감으로 가득 찼던 무대, 멜로디가 흐르자 막 뒤에 선 사내가 오른쪽 어깨를 살짝 흔들며 리듬을 탔다. 1980~90년대 유행했던 뉴잭스윙(힙합풍의 댄스곡) 멜로디에 맞춰 몸을 흔드는 그의 몸짓엔 조금함이 없다. 그의 춤사위는 여유로웠고, 손짓은 우아했다. 자로 잰 듯한 군무로 꽉 찬 무대만 선보였던 요즘 K팝 아이돌그룹에게서는 보기 어려웠던 자유로움이었다.

“와우!” 그는 곡 후렴에 맞춰 환호를 지른 뒤 무대를 깡충깡충 뛰며 곡의 흥을돋웠다. “기약 없이 떠나버린 나의 사랑 리베카”. 막이 걷힌 뒤 사내가 얼굴을 드러내자 객석에선 환호가 터졌다. 공연장을 들썩인 주인공은 노래 ‘리베카’(1991)로 유명했던 가수 양준일이다.

그는 6일 방송된 JTBC 예능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슈가맨3’)’에 출연해 자신의 히트곡인 ‘리베카’를 비롯해 ‘가나다라마바사’(1992) 등을 불렀다. 2001년 그룹 V2로 낸 앨범 ‘판타지’를 마지막으로 연예계를 떠난 뒤 18년 만에 선보인 무대였다.


올해 지천명(知天命ㆍ50세),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가 된 양준일은 왼쪽 귀에 귀걸이를 달고 오른손엔 반지와 팔찌를 연결하는 독특한 액세서리를 한 채 무대에 올랐다.

중년이 된 가수의 패션 감각은 여전했다. 무대 뒤 스크린엔 1990년대 초반 양준일의 활동 시절 무대 영상이 떴다.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세련된 모습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지금 난 50대인데 사람들은 옛 양준일을 보고 싶어 하는 거잖아요. 20대의 양준일과 어떻게 경쟁하나 싶어 안 나오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걱정도 했어요. 정말 다시 무대에 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 옛날에 묻어버린 꿈이었는데 다시 무대에 서게 돼서 떨리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

방송 후 온라인은 양준일의 깜짝 귀환 소식으로 들썩였다. 양준일은 지상파 방송사의 1980~90년대 음악 프로그램 재생 유튜브 채널인 ‘온라인 탑골 공원’에서 가장 ‘핫’한 가수로 주목받고 있었다. 10~20대는 양준일을 유물 발굴하듯 재발견하며 그의 음악에 열광했다. 양준일의 시대를 앞서간 음악과 파격적인 무대 의상 및 춤의 매력에 푹 빠진 결과였다. 양준일은 당시 미국에서 한창 유행하던 뉴잭스윙을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보다 1~2년 앞서 국내 대증 음악 시장에 선보였다. 그런 양준일은 요즘 10~20대가 그의 음악을 재조명하면서 ‘1990년대 지드래곤’이란 별명까지 생겼다. 20세기에 외면 받았던 가수는 21세기에 각광 받는 스타로 떠올랐다. 양준일이 보여준 ‘음악 반전’은 누구보다 극적이었고, 그만큼 그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연예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미국 교포 출신인 양준일이 경기도 파주에서 영어 강사를 한다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하지만 정작 그는 TV 카메라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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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가수 양준일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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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은 양준일이 12월이 다 돼서야 TV에 모습을 비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4년 전부터 미국에서 살고 있었다. 양준일은 ‘슈가맨’3에서 “미국 음식점에서 서빙 일을 한다”라고 말했다. 결혼해 가정을 꾸린 그는 미국에서 연예인이 아닌 가장으로서의 삶에 충실했다.

양준일은 어떻게 용기를 내 한국을 찾아 방송에 출연했을까. 윤현준 ‘슈가맨3’책임프로듀서(CP)가 방송 후 다음 날인 7일 한국일보에 들려준 양준일의 출연 과정은 이랬다. ‘슈가맨3’ 제작진은 지난 7~8월께 양준일 섭외를 시작했다. 국내에선 그의 연락처와 근황을 아는 사람이 없어 양준일의 인터넷 팬카페를 통해 접촉했다. 처음엔 양준일이 출연을 주저했다. 일을 잠시라도 중단하고 가면 가정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걱정해서였다. 양준일의 마음을 돌린 건 그의 아내였다. 윤 CP는 “양준일의 아내가 이번 기회 놓치면 후회한다고 남편을 설득했다고 하더라”며 “그래서 양준일 씨 아이를 포함해 가족이 함께 이번에 서울에 와 ‘슈가맨3’ 녹화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양준일이 이날 방송에서 털어놓은 가수 활동사는 파란만장했다. 양준일은 1992년 2집 ‘나의 호기심을 잡은 그대 뒷모습’을 낸 뒤 9년 동안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두문불출하던 양준일이 V2란 그룹으로 다시 무대에 돌아온 시기는 2001년이었다.

양준일은 비자 문제로 당시 한국을 떠나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인으로서 10년짜리 비자를 받아서 활동했고, 6개월마다 확인을 받아야 했다”며 “부산에서 공연하려고 준비를 하는데 (비자 갱신이 안 돼) 지금 무대에 서면 다시는 대한민국에 못 들어온다는 이야기에 콘서트를 취소하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옛일을 털어놨다.

방송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에도 제약이 많았다. 그의 노래 ‘댄스 위드 미 아가씨’(1992)는 ‘가사가 퇴폐적이고 영어가 많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방송사 심의에 걸렸다. ‘가나다라마바사’ 등 그의 실험적인 가사는 주위의 냉대와 외면에서 비롯된, 상처로 맺은 열매였다. 양준일은 “그때 내게 가사를 써 준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직접 가사를 썼다고 했다.

양준일의 ‘슈가맨3’ 녹화는 지난달 22일에 진행됐다. ‘슈가맨3’ 제작진에 따르면 양준일은 녹화를 끝낸 그 주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다시 식당에서 생업을 잇고 있다고 한다.

양준일을 다시 무대에서 볼 수 있을까. 윤 CP는 “양준일의 가수 복귀 계획 등에 대해선 논의된 적도 없고 들은 바도 없다”라며 “어떻게 될지는 시간을 갖고 기다려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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