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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영화이야기] 25년 동안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해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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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30일 개봉한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감독 팀 밀러, 2019)는 ‘터미네이터 시리즈’ 여섯 번째 영화이면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첫 ‘터미네이터’(1984)와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1991)에 이어 세 번째로 참여한 영화다.

카메론 감독은 1991년 2편까지는 작가이자 연출자로 참여했지만, 이후 ‘터미네이터 시리즈’에는 참여하지 않다가, 이번에 작가이자 제작자로 돌아왔다. 사라 코너를 연기한 린다 해밀턴 역시 1991년 2편 이후 오랜만에 돌아왔다.

극장용 영화 시리즈 이외에 TV 시리즈 ‘터미네이터: 사라 코너 연대기’도 2008~2009년에 두 개 시즌을 통해 총 31회가 방영되었기에, 지난 25년간 소위 ‘터미네이터 유니버스’는 늘 근처에 있었고, 여러 모로 수많은 다른 영화에 여러 영향들을 끼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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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지금이야 익숙해졌지만, 1980~90년대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통해 만나게 된 ‘과거를 바꾸면 미래가 바뀐다.’는 시간 개념은 매우 신선했다. 1984년 ‘터미네이터’가 이런 설정의 원조라 할 수는 없겠지만, 이후 수많은 영화에서 비슷한 설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백투더 퓨처 시리즈’(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1987~1990), ‘프리퀀시’(감독 그레고리 호블릿, 2000), ‘데자뷰’(감독 토니 스콧, 2007), ‘소소코드’(감독 던칸 존스, 2011), ‘어바웃 타임’(감독 리차드 커티스, 2013), ‘엣지 오브 투모로우’(감독 더그 라이만, 2014), ‘시간이탈자’(감독 곽재용, 2016), ‘하루’(감독 조선호, 2017), ‘엣지 오브 투모로우’(감독 더그 라이만, 2014) 등등 국경 초월 장르 초월 영화들에서 시간은 서로 연결되어있고, 주인공들의 노력에 따라 과거나 현재나 미래가 바뀌었다.

그러다 ‘인터스텔라’(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2014)나 ‘어벤져스: 엔드게임’(감독 안소니 루소, 조 루소, 2019)에서는 새로운 시간 개념이 등장하기에 이르기도 했다. 영화들을 통해 마치 과학적 지식인 것처럼 인지하고 있던 시간 개념이 통째로 흔들리는 상황도 맞았다.

- 과연 기계는 인간을 공격할까?

새로운 기술이 개발될 때마다 인간은 기대와 동시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최첨단 기술이 오롯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데에만 이용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편리함을 줄 거라 기대했던 기술들이 대량 살상 무기로 변질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역사는 안타깝게도 반복되고 있기도 하다.

시기에 따라 핵, 유전자 복제, 인공지능 등 특정 기술이나 기계 등 인간이 이룩한 기술 발전이 과연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게 될지, 혹시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면 인간은 예방 혹은 극복할 수 있을지 아무도 보장할 수 없다. 관련법과 윤리 등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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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 (감독 제임스 카메론, 1991) 포스터.


-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다.

이번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에서는 이전 시리즈를 통해 익숙해진 ‘미래를 바꿀 수 있다.’라는 시간 개념이 좀 흔들린다. ‘바꾼다고 될까? 또 바뀌겠지?’에 이르게 되니 말이다. 1991년 두 번째 ‘터미네이터’에서 핵전쟁을 막았지만, 2019년에 보니 시간과 방법만 달라졌을 뿐 결국 미래에 기계는 인간을 점령했고, 인간은 여전히 저항 중이란다. 과연 역사의 큰 흐름은 바꿀 수 있을 없는 것인가?

그동안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죽도록 고생해서 미래의 리더를 살려봤자, 또다시 압도적인 터미네이터들이 시간을 건너온다. 25년 동안 반복되는 싸움을 목격하자니, 이번 영화 속 사라 코너 만큼이나 관객들도 회의감에 빠진다.

그래도 여전히 희망을 보여준다. 심지어 미래의 리더를 살려내지 못해도, 또 다른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그리고 이전 리더나 이후 리더나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다. 특별 교육을 받았거나 소위 지도층 집안 자제도 아니다. 식당 종업원 아들이고, 공장 노동자다.

게다가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에서 등장한 미래의 리더 대니는 미국인도 백인도 남성도 아니다. 아들 존을 잃은 후 오랫동안 터미네이터 헌터로 살아온 사라 코너도 처음 대니를 만났을 때, 과거 자신의 모습을 느낀다. 대니가 25년 전 자신처럼 미래 리더의 엄마가 사람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니는 리더의 엄마가 아니라 스스로가 리더가 될 사람이었다.

대니를 살리기 위해 인간과 로봇, 현재를 사는 사람들과 미래에서 온 사람과 로봇, 남성, 여성, 젊은 세대, 노년 세대, 미국인, 멕시코 인 등등 많은 이들이 협력한다. 국적, 성별, 민족성, 인간성 모두 초월한 협력인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과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이렇듯 1984년부터 2019년까지 25년 동안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세상의 변화도 담아내는 동시에 좀 허무맹랑해 보일지 몰라도, 인간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인간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실감나는 두려움과 희망을 느끼게 해준 영화 시리즈가 또 있었나 싶다.

앞으로도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지속될지 확신할 순 없으나, 아마 다른 영화들에서 그 흔적은 발견될 듯하다.

송영애 서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해당 기사는 외부필진의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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