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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진주만 추모일에 '흑인 영웅' 도리스 밀러 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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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진주만'에서 쿠바 구딩 주니어가 연기 / 일본기 격추 전공에도 '명예훈장'은 못 받아 / 인종차별 탓… '훈장 승급해야' 운동 벌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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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은 제78주기 ‘진주만 추모의 날’을 맞아 내놓은 성명에서 해군 수병 도리스 밀러(오른쪽)의 영웅적 행위를 극찬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진주만’(2001)에는 1941년 12월7일 일본군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할 때 한 흑인 병사가 군함에 장착된 기관포를 고공으로 사격, 일본 전투기를 격추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수병은 해군 소속 취사병인 동시에 권투를 아주 잘하는 사람으로 그려졌다.

할리우드 인기 배우 쿠바 구딩 주니어가 연기한 이 수병은 실존인물이다. 진주만 공습 당시 미 태평양함대 소속 군함 ‘웨스트 버지니아’의 취사병이었던 도리스 밀러(1919∼1943)가 주인공이다. 취사병이란 것도, 권투를 잘했다는 것도, 공습 당일 기관포로 일본 군용기를 격추한 것도 모두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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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진주만’에서 도리스 밀러가 기관포로 일본 전투기를 사격하는 장면. 인기 배우 쿠바 구딩 주니어가 밀러를 연기했다.


미국에서 매년 12월7일은 연방정부의 공식 기념일인 ‘진주만 추모의 날(National Pearl Harbor Remembrance Day)’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념일을 하루 앞둔 지난 6일(현지시간) 내놓은 성명에서 특별히 도리스 밀러의 애국심을 극찬해 눈길을 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함 웨스트 버지니아의 승조원이던 도리스 밀러는 (함정의) 기관포를 조준 발사해 복수의 일본 군용기를 성공적으로 격추시켰다”며 “(놀랍게도) 밀러는 그 무기를 다루는 법을 훈련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공적으로 밀러에겐 해군십자훈장(Navy Cross)이 수여됐는데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이 영예를 받은 이는 밀러가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진주만 공습은 미국 입장에선 일본한테 완전히 허를 찔린 쓰디쓴 참패였다. 해군 등 군인 2335명이 전사하고 민간인도 68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렇지만 공습 후 미국은 전투 도중 용기를 발휘해 남의 목숨을 구하거나 일본군에 맞서 싸우는 등 공적을 세운 15명을 발굴해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했다. 이 가운데 10명은 공습으로 숨져 사후에 훈장이 추서된 경우다.

명예훈장은 미국에서 군인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훈장에 해당한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그토록 극찬한 도리스 밀러는 해군십자훈장에 그쳤을 뿐 명예훈장은 받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해군 등 미군에 만연한 인종차별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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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 와코에 세워진 도리스 밀러의 동상을 향해 참전용사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미 해군


그래선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마바 행정부 시절인 2015년 밀러의 고향인 텍사스 주민들과 지역 정치인들이 “밀러에게 최고 등급의 명예훈장을 추서하는 것이 옳다”며 훈장 승급 운동에 나섰다. 하지만 ‘전례가 없는 일’이란 이유로 성사되진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진주만 추모 성명에서 도리스 밀러의 공적을 상세히 언급한 건 훈장 승급이 이뤄지지 않은 데 따른 미안함도 일부 작용한 듯하다는 분석이다.

진주만에서의 공적으로 미국 흑인들 사이에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 밀러는 제2차 세계대전 내내 해군 승조원으로 태평양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1943년 11월 전사했다. 그가 승선한 항공모함이 일본군 잠수함에서 쏜 어뢰에 맞아 침몰하며 24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2017년 12월7일 제76주기 ‘진주만 추모의 날’에 밀러의 고향인 텍사스주 와코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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