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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항불안제 벤조디아제핀 오남용 막을 제도적 보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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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상열 원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약(藥)은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개발되지만 꼭 긍정적인 결과만 가져오진 않는다. 약의 의존성(중독), 내성, 각종 오·남용에 따른 부작용도 공존한다. 약이 지닌 양면성이다. 이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이를 보완한 새로운 약을 개발하거나 처방 가이드라인을 바꾸기도 하지만 가끔은 제도와 규제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항불안제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이 대표적이다. 원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상열 교수에게 이 약물로 인해 불거지는 문제와 해결 방안에 대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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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열 교수는 오·남용을 줄이기 위한 국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동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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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조디아제핀은 어떤 약인가.

“항불안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신경안정제라고 알고 있는 약 중 하나다. 1930년대에 불안 장애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된 오래된 약이다. 불안은 중추신경계가 과활성화된 상태인데, 이를 억제해 진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벤조디아제핀 계열로 분류되는 약물은 다양하다.”

-항불안제라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주로 처방될 것 같은데.

“그래야 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2014년에 논문을 낸 적이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등록된 처방을 근거로 조사해 봤더니 2011년 국내에서 996만여 명에게 처방됐다. 매우 많은 양이다.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을 처방한 진료과별로 보면 정신건강의학과의 전체 처방 중 벤조디아제핀은 1.8%에 불과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가 아닌 다른 과에서 이뤄지는 모든 처방 중에서 벤조디아제핀이 차지하는 비중은 40.3%에 달한다.”

-다른 진료과에선 어떤 경우에 처방되는지 궁금하다.

“정신건강의학과가 아니어도 불안 장애에 처방할 순 있다. 근데 불안 장애에만 처방하는 것은 아니다. 위·십이지장궤양, 과민성대장증후군 등 위장관 질환자나 근골격계 질환자 등에게 다양하게 처방된다. 환자가 왔는데 검사상 이상이 없는 경우, 즉 신경성·스트레스성이라고 하면 대부분 처방한다고 보면 된다.”

-다른 항불안제도 비슷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항불안제의 적응증은 불안 장애로만 돼 있다. 하지만 벤조디아제핀은 국내에 처음 들어올 때 불안 장애뿐 아니라 위장관 질환과 근골격계 질환 등 다양하게 적응증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다양하게 처방되고 있다.”

-많이 처방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닐 텐데.

“벤조디아제핀은 항불안제 중에서 오·남용 가능성이 높은 약이다. 벤조디아제핀의 장점은 약효가 빨리 나타난다는 점이다. 근데 기본적으로 약효가 빠른 약은 그만큼 내성과 의존성이 크다. 벤조디아제핀도 마찬가지다. 습관성으로 먹게 되고 갈수록 약의 용량이 증가하게 된다. 원래 약을 쓰다가 용량을 줄여가면서 끊어야 하는데 내성과 의존성 때문에 끊지 못한다. 30일 이상 처방률이 8.1%, 180일 이상 처방률이 3.4%나 된다. 처방을 중단하면 금단 증상과 심한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약을 못 끊는 거다. 게다가 어지럽고 졸리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부작용도 있다. 노인 환자의 경우 낙상과 이로 인한 골절로 이어질 수 있다. 노인에게 낙상과 골절은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고다. 국내 65세 이상 노인에 대한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제 처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3.3배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우리나라에 국한된 문제인가.

“미국 등 다른 나라의 경우 벤조디아제핀은 불안 장애에만 쓸 수 있다. 그리고 급성기를 제외하곤 처방을 많이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외국과 우리나라 간 처방에 차이가 난다. 그리고 민간보험 가입 문제도 있다. 불안 장애로 처방하면 상병코드가 F코드로 등록되는데, 사회적 인식 때문에 F코드로 처방되면 민간보험 가입에 제한을 받는 것이다. 근데 외국의 경우 이에 대한 차별을 두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미국 뉴욕주의 경우 한 개인이 민간보험 가입 시 신체 질병과 정신장애로 차별받으면 안 된다는 내용이 법에 명시돼 있다. 이를 어긴 보험사는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한다.”

-대체할 만한 약이 없나.

“항불안제의 경우 벤조디아제핀과 부스피론 두 가지 약이 있다. 부스피론은 벤조디아제핀처럼 약효가 즉각적이지는 않지만 불안 해소 효과가 훨씬 좋고 습관성·의존성이 없는 약이다. 항불안뿐 아니라 항우울 효과도 있다.”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보나.

“우선 벤조디아제핀의 적응증 허가 기준이 변경돼야 한다. 지금까지 제도적으로 약에 대한 위해성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오·남용 가능성과 이에 따른 위해성을 반영해야 한다. 벤조디아제핀을 어쩔 수 없이 써야만 하는 경우에는 불안 장애(F코드)에 쓰도록 하되 단기간만 처방하도록 하고, 부스피론 등 의존성이 없는 약을 같이 쓰면서 벤조디아제핀을 점차 감량해 결국 약을 끊을 수 있는 전략이 권장돼야 한다. 그리고 F코드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바뀌어 민간보험 가입 제한 등 차별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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