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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130년전 경복궁의 ‘도깨비불’ 소동…범인은 에디슨 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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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지 않는 불에 놀라 무당 굿판도

해방·전쟁 거치며 긴 세월끝 자립

이젠 세계 최고 에너지 소비국으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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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이상 연령층 중에는 어린 시절 전기 없이 살았던 기억이 더러 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좀 깊은 산골에서는 해가 지면 호롱불이나 촛불로 어둠을 밝히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도회지 역시 지금처럼 조명이 휘황찬란하지 않아서 서울에서도 밤이면 은하수가 잘 보였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정부에서 네온사인 등 과도한 조명시설을 단속하기도 했고, 지금처럼 밝은 LED전구가 나오기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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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기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도 없다. 현대인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누리는 과학기술 인프라 중에서도 전기는 으뜸이다. 주택이나 수도는 자연에서 대체재를 구할 수도 있지만, 전기만큼은 끊어지면 끝이다. 스마트폰과 PC를 비롯한 정보통신망, 냉장고나 세탁기, TV 등등 일상의 가전제품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단전 상태가 지속되면 생활의 차원을 넘어 산업 시스템이 무너진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듯 전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된 것은 최소 1만 년이 넘는 기나긴 인류의 역사에서 불과 100년 정도밖에 안 된 일이다.

지금 문화역서울284에서는 ‘전기우주’전시가 열리고 있다. 갤러리로 바뀐 옛 서울역 건물에서 12월 중순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우리나라에 전기가 들어온 역사를 다양한 관련 유물들로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서울화력발전소(옛 당인리발전소)의 주요 도면들과 설비 일부를 그대로 전시해서 평소 일상에서는 깨닫지 못했던 과학기술문명의 속살 한 단면을 잘 드러내 보인다. 서울화력발전소는 1929년에 착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화력발전소이며, 지금은 발전기들을 포함한 노후 시설들을 다 폐지했고 더이상 석탄을 연료로 쓰지도 않는다.

우리나라에 전기가 처음 들어온 것은 조선 시대에서 대한제국으로 넘어가는 구한말 시기였다. 1882년에 전화기라는 문명의 이기가 처음 소개되었고, 1885년에 한성(서울)과 인천 사이에 전선이 깔려 전신전보 통신이 시작되었다. 1887년에는 경복궁에 에디슨 전기회사의 전구가 설치되었는데, 꺼지지 않는 ‘도깨비불’인데다 발전기 냉각수가 데워져서 연못의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까지 일어나 무당이 굿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전구에 대고 담뱃불을 붙이려는 사람도 있었다. 1896년에는 덕수궁에 전화가 놓였다. 개통 사흘째 되던 날 고종이 직접 인천으로 전화를 걸어 당시 일본인 살인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스무 살 청년 김창수(김구)의 형 집행을 중지시켰다는 일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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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진입 앞뒤로 전기는 본격적으로 이 땅의 일상생활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1899년에 서울에 전차가 개통되어 현대식 대중교통수단의 시작을 알렸고 1900년에는 종로에 전기 가로등이 세워진다. 이를 설치한 것은 1898년에 설립된 한성전기회사였다. 한성전기회사는 미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번갈아 지분을 차지하거나 장악하는 등 현대사와 그 질곡을 같이하면서 계속 이어져 오늘날의 한국전력주식회사가 되었다. 한편 1902년에는 서울과 인천 사이에 일반인용 공중전화가 놓였다. 라디오 방송이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말의 일이다.

1930년대 말부터 장진강발전소와 수풍댐 등 대규모 수력발전소들이 한반도 북부에 건설되었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의 군수물자 보급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만든 것이다. 특히 1944년에 건설된 수풍수력발전소는 당시 아시아 최대규모였고 한반도 전체의 전력 수요를 너끈히 감당할 정도였다. 이렇듯 대규모 전력생산 설비들이 북쪽에 있었던 까닭에 해방 이후 남쪽은 전력 공급의 70% 정도를 북쪽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북쪽은 일방적으로 단전 조치를 취하게 되고, 이 때문에 남쪽은 에너지 자립을 할 때까지 애를 먹었다.

세월이 흘러 21세기가 된 지금 남북한 사이의 전력 격차는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벌어졌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여줬다는 한반도의 야간 위성사진을 보면 그 대비가 너무나 극적으로 드러난다. 휴전선 남쪽은 불빛들로 빽빽한 반면 북쪽은 평양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전 지역이 깜깜한 것이다.

사실 한국은 전력을 비롯한 1인당 에너지 소모가 세계적으로 너무 높은 수준이라 문제다. 이런 지경까지 온 것은 저렴한 전기요금이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다. 기후 변화로 해수면이 오르고 미세먼지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것 등이 모두 지나친 에너지 소비와 직결된 폐해이다. 이는 절전하자는 사회적 캠페인 차원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우리의 에너지 소비 철학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보다 전기를 훨씬 덜 쓰고도 편리한 삶이 가능한 적정기술 이념의 광범위한 확산이 필요하다.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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