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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기자수첩] 할퀸 곳 생명 움트는데…가리왕산, 또 갈아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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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정선군 "존치" 산림청·환경단체 "전면복원"…10일 연장회의 무기한 연기

뉴스1

9일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 알파인스키경기장 슬로프 경사면에 떨어진 낙엽송이 자연발아 돼 자라고 있다. 2019.12.9/뉴스1 © News1 박하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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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뉴스1) 박하림 기자 = 매서운 추위가 온몸을 에워싸는 지난 9일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 동계올림픽 알파인경기장에선 한파 속 새로운 생명이 땅에서 돋아나고 있었다.

수십 번 파헤쳐 생명력을 잃은 줄만 알았던 슬로프에 자그마한 식물들이 이곳저곳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슬로프의 평면보다 비교적 손 떼를 덜 탄 경사면을 바라봤을 땐, 자연발아 된 수십 개의 낙엽송들이 군집을 이루며 자연의 섭리 그 자체를 보여주기도 했다.

자연은 이렇게 경이로운 회복력으로 인간들이 할퀸 상처를 스스로 아물게 하고 있었다.

가리왕산은 경기장 완공을 위해 지난 2014년 5월부터 4년 간 몸살을 앓으며 값진 희생을 치러야 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 성공적인 올림픽을 치를 수 있었고 세계 선수들로부터 세계 최고의 경기장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가리왕산은 이젠 가까스로 침묵을 유지하며 회복의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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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 알파인스키경기장 슬로프 경사면에 떨어진 낙엽송이 자연발아 돼 자라고 있다. 2019.12.9/뉴스1 © News1 박하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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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어에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말이 있다. 현재 인간만이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고 이토록 어렵게 유지된 자연의 침묵을 깨려고 한다.

자연보호를 위해 존재한다고 하는 산림청과 환경단체가 행정의 원리원칙이라는 명분으로 전면복원을 주장하면서부터다.

이는 단순히 평화롭게 나무를 심자는 차원이 아니다. 말이 좋아 전면복원이지 실리는커녕 천문학적인 재정을 들이면서 또 다른 환경파괴를 감수해야 할 지경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원시림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곤돌라를 포함해 땅 속에 있는 모든 시설들을 뿌리 뽑으며 가까스로 회복하고 있는 가리왕산을 다시 한 번 뒤엎겠다고 한다.

수백 년 간 원시림이었던 이곳의 흙과 물길 등은 올림픽 이후 완전히 뒤바뀐 상태다. 우선 원시상태의 흙은 어디서 공수해오며 과연 이전 상태로 메꿀 수 있을지가 의문이고, 한번 바뀐 물길은 100% 자연복원 될 수 없다는 게 산림학계의 정설이다.

곤돌라 시설을 철거했을 경우 제2의 환경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경기장 건설 투자비가 1926억 원이었다. 철거비용은 최대 100억 원, 산림복원비용은 방식에 따라 700억 원에서 최대 4000억 원까지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게다가 알파인경기장 지하에는 수 십m 아래까지 전기통신, 배관선로, 배수처리시설이 묻혀 있다. 지주를 받치기 위해 설치한 콘크리트 구조물 7만 톤을 처리하는 것도 골칫거리다.

반면 강원도⋅정선군은 슬로프와 운영도로는 복원해도 상관없지만 최소한의 시설존치로 곤돌라만큼은 올림픽 유산으로 남겨달라며 산림청⋅환경단체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국무총리실은 지난 5월부터 강원도와 산림청, 정선군, 환경단체, 학계 등 14명으로 이뤄진 가리왕산 합리적 복원을 위한 협의회를 꾸려 지난달 19일까지 총 10차 회의를 진행해왔다.

이달 10일 최종 회의를 열고 가리왕산 복원 여부에 대한 의견을 결정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아무런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무기한 연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산림환경과 교수는 “당초 강원도가 ‘복구’가 아닌 ‘복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이렇게 행정적인 측면에서 곤욕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면서도 “이제는 산림청이 양보를 해서 원만히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미 올림픽 유치를 위해 불가피하게 자연에 손을 댄 것은 국민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 번 손을 댄 것도 부족해 비생산적인 원칙을 내세우며 또다시 손을 대야 한다는 것은 누굴 위한 명분인지 상식적으로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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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 알파인스키경기장 슬로프 경사면에 떨어진 낙엽송이 자연발아 돼 자라고 있다. 2019.12.9/뉴스1 © News1 박하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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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mroc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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