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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창고 대방출" 케케묵은 8090 영상, 추억소환 '보물'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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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테이프를 디지털 전환·재활용

'어게인 가요톱 10' 등 복고풍 타고 인기

다큐 '모던코리아'는 지난 현대사 재조명

"아카이브 활용한 스토리텔링이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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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개설된 유튜브 채널 '어게인 가요톱 10'의 한 장면. 1994년 6월 출연한 듀오 투투의 ‘일과 이분의일’ 방송 동영상으로 조회수 419만회를 기록 중이다. [사진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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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벌써 10년전 방송이란 게 신기” “음향사고 보소”

9일 유튜브 채널 ‘어게인 가요톱10’이 실시간 스트리밍한 ‘2009년 KBS 가요대축제(12/09)’에 달린 라이브 채팅 댓글이다. 2009년 방송을 마치 요즘 생방송 보듯 유튜브로 지켜보면서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1980~90년대 KBS ‘가요톱10’을 재활용하는 이 채널은 연말을 맞아 KBS 연말 가요 시상식인 ‘가요대축제’의 역대 방송분 총 38회를 차례로 스트리밍하고 있다. ‘쇼 토요특급' '토요대행진' 등 당대의 음악프로그램들도 줄줄이 재소환한다.

이런 유튜브 채널을 담당하는 곳은 KBS 예능국이 아니라 디지털미디어국 콘텐츠아카이브부다. 이곳의 주된 업무는 KBS의 옛날 프로그램 저장고(아카이브)를 디지털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쌓인 디지털 자산이 늘어나자 ‘이걸로 디지털 서비스를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어게인 가요톱10’을 기획한 김성아 팀장은 “나부터가 가요톱10을 보고 자란 세대라 옛날 영상을 보니 추억이 새록새록했다”면서 “지난해 10월 개설 땐 노래 클립별로 서비스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지난달부터 전체 방송분을 실시간 스트리밍 방식으로 틀고 있다”고 소개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MC 멘트, 다소 투박한 무대 전환 등이 2040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구독자 10만4000명이 모였다. 이보다 앞서 ‘인기가요’ 실시간 스트리밍을 시작한 ‘SBS K팝 클래식’ 채널(구독 18만2000명)과 함께 ‘온라인 탑골공원’으로 각광 받고 있다. MBC 유튜브는 옛날 예능‧드라마‧노래들을 다시 볼 수 있는 ‘옛능’ ‘옛드’ ‘옛송’ 등 채널을 별도 운영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KBS‧MBC‧SBS‧EBS 등 지상파 방송사들의 ‘아카이브 재활용’ 바람이 거세다. 1990년대까지 쓰인 아날로그 테이프들이 대거 디지털 파일로 전환된 덕분이다. 당시만 해도 방송이 끝난 즉시 테이프는 자료실로 옮겨져 먼지만 쌓이기 일쑤였다. 2010년대 들어 방송 환경 전반이 세대 교체되면서 이들 테이프를 디지털 전환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KBS의 경우 최종 편집본 외에 소재영상, 인서트(삽입화면), 촬영 원본 테이프 등 약 60만개가 대상이었다. 콘텐츠아카이브부 홍정민 팀장은 “최종 방송분의 경우 디지털 전환이 99% 이뤄졌고, 나머지 촬영원본 등도 순차적으로 파일 변환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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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다큐 6부작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1부 '우리의 소원은'에서 한 장면. 당시 전국대학생협의회(전대협)의장이었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인터뷰하는 도중 황급히 자리를 뜨는 촬영 원본이 담겼다. [사진 KBS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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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이를 재가공해서 새로운 방송 콘텐트로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연작 방영 중인 ‘KBS 다큐 인사이트 -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다. ‘KBS 영상 아카이브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여 대한민국의 오늘을 돌아본다’는 취지로 제작됐다. KBS ‘9시 뉴스’ ‘심야토론’ 등 시사 프로그램 및 인터뷰와 각종 드라마‧예능 영상을 내레이션 없이 교차 편집하는 게 특징이다. 총 6부 중 ‘우리의 소원은’ ‘대망’ ‘수능의 탄생’ 등 1~3부가 방영됐고 내년 2월부터 ‘해태 타이거즈’ ‘삼풍 사고’ ‘휴거 소동’ 등을 주제로 4~6부가 방영된다.

‘모던코리아’를 총지휘하는 이태웅 PD는 “지난해 88올림픽 30주년을 맞아 기획 다큐 ‘88/18’을 찍으면서 수십년간 축적된 KBS 아카이브의 힘을 재발견했다”고 말했다. 방영분 외에 편집되기 전 원본 영상에 어마어마한 ‘B컷’들이 있었던 것이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엄근진’(엄숙 근엄 진지)하게 대국민 담화를 녹화하던 중 NG를 내는 장면이나 임종석 당시 전국대학생협의회의장이 인터뷰 중 경찰을 피해 황급히 자리를 뜨는 장면 등이 30여년 만에 방송 전파를 탔다.

올림픽 개최 관련 뉴스 속 “이때 잘못하면 한국은 역시 개발도상국이구나 하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기자의 코멘트나 일본을 제치고 유치에 성공한 것을 두고 “(일제강점기) 36년간 짓눌렸던 아픔을 이제야 씻어주는 듯하다”는 여학생의 발언도 현재 시점에서 이채롭게 다가온다. 이런 ‘날 것’을 건져내기 위해 10여년치 방송 분량을 깨알 같이 검토하고 해당 주제별로 데이터베이스(DB)화 했다. 모던코리아 1부 ‘우리의 소원은’을 만들기 위해 활용한 자료만 20테라바이트(TB)에 이른다고 한다.

‘88/18’이나 ‘모던코리아’ 프로젝트는 아카이브를 발굴해 새롭게 콘텐트화하는 글로벌 다큐 트렌드와도 맞물린다. 올 초 개봉했던 ‘마리아 칼라스:세기의 디바’나 현재 상영 중인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대표적이다. 전자는 칼라스의 공연 영상과 당시 뉴스 및 인터뷰 화면만으로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의 일생을 재구성했다. 후자는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의 1972년 미공개 공연 촬영본을 발굴해 관객 호응을 이끌고 있다. BBC 등 해외 방송사들 역시 '아카이브=기업자산'이라는 마인드로 관련 비즈니스에 주력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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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오페라의 전설이 된 여가수 마리아 칼라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감독 톰 볼프). 분장실 모습처럼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스타의 이면을 담아 호응을 얻었다. [사진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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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콘텐츠기획센터의 오정호 콘텐츠관리부장(PD)은 “이제껏 방송사들은 자료실에 문헌정보학과 출신 사서들을 배치한 채 사실상 아카이브를 방치했다가 최근 서서히 바뀌는 중”이라고 진단했다. 새로운 플랫폼을 겨냥한 콘텐트 큐레이션이 부각되면서 EBS 대표 의학프로그램 '명의'도 유튜브에서 다시 소비되고 있다. 오 PD는 “콘텐트가 비즈니스를 이끌어내던 시대가 지나고 비즈니스가 콘텐트를 이끌어내는 시대”라면서 “지상파 방송사가 신규 플랫폼의 도전에 맞서려면 아카이브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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