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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하늘에선 행복하길"…가는 길조차 외로웠던 '성북 네 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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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무연고 장례식 치러져

가족없이 봉사자가 상주 역할

지자체·시민단체 관계자만 자리 채워

"하나님 품으로 간다"…유서에 예배형식 장례

이데일리

조문객들이 10일 오전 서울 강북구 서울좋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성북구 네 모녀 무연고 장례에서 분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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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하늘나라에서는 꼭 행복했으면…” 10일 서울 강북구 서울좋은병원 장례식장 특실. 보통의 장례라면 사흘간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나누겠지만, 이날 오전 이곳에서 하늘로 보내진 네 사람에게 허락된 시간은 세 시간에 불과했다.

지난달 성북구 한 빌라에서 쓸쓸한 주검으로 발견된 ‘성북 네 모녀’의 빈소를 찾은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생활고로 떠난 이들은 가는 길조차도 단출했다. 다만 장례식 벽면에 시민들이 손 글씨로 써 붙인 포스트잇 만이 이들을 추모하고 애도할 뿐이었다.

◇“생전 생활고 시달리더니 가는 길도 가난”

이날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마련된 성북 네 모녀의 장례식장에는 8개의 테이블만 놓여있었다. 여느 장례식장과 달리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조문객도, 음료수나 빈소 음식도 없었다. ‘특실’이 무색할 정도였다.

방명록을 대신해 조문객들은 포스트잇에 추모의 글을 남겼다. 20여개의 포스트잇에는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하라’, ‘그곳에서 편히 쉬라’는 애도의 글귀가 눈에 띄었다.

네 모녀의 장례식장에는 가족 대신 지자체 관계자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자리를 채웠다. 앞서 네 모녀의 친지들은 고인의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결국 지자체가 장례를 맡아 진행했다. 성북구는 서울시 공영장례 절차에 따라 성북 네 모녀의 무연고 장례를 치렀다. 이곳을 찾은 시민단체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의 배미영(44)씨는 “생전 생활고에 시달렸던 성북 네 모녀의 가는 길까지 가난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장례식장까지 오는 데 한 시간 반이 걸렸다는 한국한부모연합의 오진방(52)씨는 “고인들과 같은 고통을 겪는 사회적 취약계층이 적지 않다”며 “빈곤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라고 했다. 그는 또 한산한 빈소를 바라보며 “사회적 관심에 비해 조문객이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최근 몇년간 생활고를 겪다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죽음들을 써 내려갔다. 그가 남긴 포스트잇에는 ‘송파 세모녀, 증평에서 죽은 모자, 북한 이주 여성의 죽음, 성북 네 모녀의 죽음을 잊지 않겠다’는 글귀가 씌여있었다. 이날 장례에는 가족을 대신해 교회 및 지자체 소속 봉사자가 상주 역할을 했다.

성북 네 모녀의 장례식은 고인들의 종교에 따라 기독교 예배 형식으로 치러졌다. 성북구청에 따르면 고인들은 ‘하나님의 품으로 간다’는 유서를 남겼다. 무연고 장례식 예배를 처음 진행했다는 신영삼 부목사는 “생전 고인들을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든다”며 “왜 그들을 이전에 챙기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예배 내내 덕수교회 신도 10여명은 고개를 숙인 채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낮 12시 장례를 마친 성북 네 모녀의 시신은 서울시립승화원으로 옮겨져 화장된다. 네 모녀의 골분은 파주 무연고 추모의 집에서 10년간 보관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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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 성북 네 모녀가 살던 자택 앞에 국화꽃 한 송이가 놓여져 있었다. (사진=황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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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 사망자, 서울시에만 한 해 382명

성북구 네 모녀와 마찬가지로 가족이 없어 무연고 장례를 치르는 고인은 적지 않다. 지난해 서울시는 ‘공영장례 조례’를 만들어 서울지역 무연고자 사망자에 대한 장례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서울에서 무연고 장례를 치른 고인은 382명에 달한다. 올해에도 268명(10월 기준)이 가족의 배웅 없이 세상을 떠났다. 이날 장례식을 찾은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성북구에서 애석한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회적으로 이런 현상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일 오후 이들은 성북구의 자택의 한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네 모녀의 시신은 상당히 부패한 상태였다. 경찰은 “시신의 부패 정도를 보아 한참 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찰은 네 모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성북 네 모녀의 건강 보험료가 밀려 있었으며, 두 딸이 운영하던 쇼핑몰 또한 큰 수익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망 당시 집 우편함에는 신용정보회사의 채무 이행 통지서와 이자 지연 내역서 등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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