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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세계 경영’으로 대우신화 일궈… 고도성장의 명암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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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욕의 삶, 빛과 그림자 / 500만원으로 시작한 대우실업 / 한국 기업 최초 해외지사 설립 / ‘세계는 넓고 할 일은…’ 저서처럼 / 1998년 해외 고용인력만 15만명 / “사업자금 빌려서, 벌어 갚는다”는 / 과감한 승부경영 IMF 때 부메랑 / 2000년 그룹 공중분해·해외도피 / 분식회계만 41조로 추징금 17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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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빈소에서 조문객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오후 83세의 일기로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삶은 도약과 추락, 빛과 그림자가 교차한 영욕의 인생이었다. 세계경영 전도사라는 ‘빛’과 분식회계와 17여조원에 달하는 추징금이라는 ‘어둠’이 공존했던 김 전 회장의 삶은 한국 현대사를 응축해 보여주는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소년가장으로 성장한 김우중, 31세에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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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1936년생인 김 전 회장은 6·25전쟁 당시 부친인 김용하 전 제주도지사가 납북되면서 졸지에 ‘소년가장’이 됐다. 신문 배달, 열무·냉차 장사 등을 하며 성장했다. 어려웠던 성장기는 훗날 경영인으로 커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1960년 친척이 운영하던 무역회사 한성실업에 들어가면서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자질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1963년 국내 최초의 섬유제품 직수출을 성사시켰다. 그는 1967년 대우실업을 창업하면서 독립했다. 대우그룹의 출발이었다. 창업 당시 자본금 500만원으로 시작한 대우실업은 설립 첫해 싱가포르에 트리 코트 원단과 제품을 수출하며 58만달러 규모의 수출 실적을 거뒀다. 창업 5년 만에는 수출 100만달러의 실적을 기록했다. 이후 대우실업은 한국기업 최초로 해외(호주 시드니) 지사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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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10일 공개한 김 전 회장 생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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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길에 오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모습.


김 전 회장은 1973년 영진토건을 인수해 건설업에 진출한 것을 시작으로 중공업과 자동차, 조선 등 다양한 직종에 진출하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그는 ‘기술이 없으면 사오면 된다‘, ‘사업은 빌린 돈으로 하고 벌어서 갚으면 된다’는 식의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고,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과 함께 덩치를 키웠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고도성장에서 극적 추락

1980년대 후반, 소련 몰락에 의한 동유럽 개방이 일어나자 김 전 회장은 ‘세계 경영’을 주창하며 해외로 달려갔다. 1989년에 그가 펴낸 책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출간 6개월 만에 100만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올라섰다. 동유럽의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등지에 대우자동차 공장이 들어섰다. 그는 1년의 3분의 2 이상을 해외에 거주하며 경영을 진두지휘했다. 대우의 해외고용인력은 1993년 2만2000명에서 1998년 15만2000명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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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와 만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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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과 면담하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모습.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그의 공격적인 경영스타일이 독으로 작용했다. 1998년 그룹의 부채규모만 89조원에 달했다. 계열사 간 채무구조가 복잡해 채무 구조조정이 어려운 데다 김 전 회장이 ‘위기는 기회’라는 인식 속에 쌍용자동차를 사들이는 등 더 공격적인 경영에 나섰던 것이 부메랑으로 작용했다.결국 대우그룹 계열사들은 시장의 논리를 이기지 못하고 1999년 하반기부터 차례로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2000년 그룹은 해체된다. 41개사에 달했던 대우그룹 계열사들은 뿔뿔이 매각이나 청산과정을 거쳤다.

◆그룹 해체 후 해외 도피… 분식회계 등 수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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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3월 22일 서울 힐튼 호텔에서 열린 대우그룹 창업 50주년 기념식 행사에서 인사말을 마친 뒤 연단에서 내려오는 김 전 회장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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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회장은 그룹이 매각되는 동안 중국과 동남아시아, 유럽 등 해외를 오가며 도피생활을 보냈다. 2005년 41조원에 달하는 대우그룹 분식회계(회계조작) 사실이 검찰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결국 귀국한 김 전 회장은 2006년 징역 8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막바지인 2008년 1월에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추징금 17조9000억원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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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22일 열린 대우그룹 창립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김우중 전 회장. 연합뉴스


김 전 회장은 이후 해외에서 후진 양성에 주력해온 삶을 살았다. 한국 대학 졸업생을 선발해 동남아 현지에서 무료로 취업교육을 제공하는 ‘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사업(GYBM)’을 베트남을 시작으로 펼쳤다. 그룹 해체가 김대중 정부 당시 경제 관료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의 공개석상은 2018년 3월 열린 대우 창업 51주년 기념행사가 마지막이었다. 김 전 회장은 생전에 ‘워커홀릭’이었다. 그룹의 일을 자신이 직접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어서 그룹 경영에 한참 몰두해 있을 때는 일부러 체력이 좋은 남자 비서들을 채용했다. 그런데도 김 전 회장의 스케줄을 따라잡지 못해 비서들이 1년 이상 버티지 못했다고 한다. 식사도 비빔밥이나 설렁탕처럼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좋아했다고 한다. 1980년대 운동권 인재들을 대거 특채하거나 경찰의 눈을 피해 노조 간부들을 자신의 차 트렁크에 태워 피신시켜준 일화도 있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 사진=대우세계경영연구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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