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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각도 달리 보면 무죄" 숙명여고 교사 주장, 대법서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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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 지난달 숙명여고 사건 항소심 선고

모두 유죄, 징역 3년6월→3년

구체적 간접정황 설명한 재판부

현씨측, "추상적 의혹 외 밝혀진 것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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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오후. 한참을 이어진 선고가 끝났을 때쯤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현모(52)씨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된 모습이었습니다. 다시 구치소로 가려 피고인석 옆을 걸어 나오던 현씨는 잠시 휘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숙명여고 사건은 처음 재판이 시작될 때부터 ‘직접 증거 없는 사건’으로 불렸습니다. 현씨와 두 딸은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검찰과 변호인이 같은 간접 증거를 두고 상반된 주장을 펼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간접증거에 따라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지가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항소심은 원심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과 그 결론을 대부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간접증거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보다 촘촘하게 유죄 판결의 근거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선고 당일 법정에서 수차례 스크린에 자료를 띄우기도 했습니다. 항소심에서 추가로 설명하려 한 부분은 크게 3가지입니다.



①‘압도적인 1등’ 두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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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한 성적 상승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 설명과 현씨측 반박.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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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2학년 1학기 인문ㆍ자연계열의 성적분포를 스크린에 띄웠습니다. 딸들이 각각 인문계열 1등과 자연계열 1등을 차지한 때입니다. 먼저 인문계 1등 언니는 과목별 가중치를 반영한 총합이 2747점입니다. 2등은 2692점, 5등은 2659점입니다. 1등과 2등은 점수 차이가 55점인데 반해 2등과 5등은 33점이 차이 납니다. 자연계 1등인 동생도 마찬가집니다. 총합 1등인 동생과 2등은 81점이 차이 나는데 2등과 5등의 점수 차는 33점입니다. 재판부는 “어떤 기준으로 보든 두 딸이 압도적인 전체 1등인데, 단 1년 만에 이런 성적 향상은 상당히 이례적이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른 학교 재학생의 성적 급상승 사례를 찾은 것도 판단 근거로 삼았습니다. 사실조회 결과 중상위권에서 전교 2등이 된 사례 1명밖에 없었습니다. 재판부는 “딸들의 성적에 외부 요인이 개입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라고 봤습니다.

변호인은 “왜 2학년 1학기 성적 분포만 예로 드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현 씨는 1학년 2학기 및 2학년 1학기의 모든 과목 답안을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습니다. 유죄 판결대로라면 딸들은 1학년 2학기에도 모든 과목의 답안을 외우고 시험을 친 셈입니다. 당시에는 언니는 5등, 동생은 2등을 합니다. 변호인은 “1학년 2학기 성적은 딸들과 다른 학생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며 “그럼 압도적 2등과 5등은 아닌 셈이니 무죄의 근거가 되는 거냐”고 묻습니다. 또 “단 한명이라도 성적이 전교 2등까지 오른 사례가 있다면 성적 급상승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셈”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덧붙여 “쌍둥이와 함께 입학한 학생들의 6학기 수학 성적 추이에는 딸들보다 더 급격한 성적 상승 사례도 많다”고 주장했습니다.



②메모장 메모는 시험 전에 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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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 내용 및 깨알정답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 설명과 현씨측 반박.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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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을 두고도 양측 주장이 맞섰습니다. 딸들은 “시험 후 반장이 부르는 답을 적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재판부는 동생의 메모장을 스크린에 띄웠습니다. 물리와 문학 시험을 친 날의 메모인데, 준비물이 적혀있습니다. 문제는 메모장 곳곳에 적힌 5열의 숫자들과 문학 서술형 답입니다. 준비물은 시험 전 적을 수 있지만, 답을 시험 전 적었다면 문제 유출의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문학 서술형 답 3번에 동생은 “순수하게 기표를 도와주는(삭제 선이 그어져 있음) 기표를 위한”이라고 적었습니다. 이 문제의 모범답안은 “순수한 마음으로 기표를 도와주는”입니다. 재판부는 “반장이 불러주는 것을 적었다면 삭제 선을 그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변호인은 “빨리 받아 적으며 수정한 것일 수 있고, 답을 알았다면 오히려 삭제 선을 그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③홀로 ‘정정 전 정답’ 쓴 화학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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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 전 정답 쓴 화학 문제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 설명과 현씨측 반박. 시험지에 필기된 동그라미와 숫자는 흐릿해서 덧쓴 것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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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가 스크린에 세 번째로 띄운 것은 화학 문제입니다. 동생이 정정 전 정답인 '10:11'을 써서 틀린 문제입니다. 재판부는 원그래프 옆에 표시까지 한 학생이 숫자를 잘못 옮겨적는 건 쉽게 수긍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수를 전제해도 답은 '11:10'이지, 정정 전 정답인 '10:11'은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압도적인 1등의 실력을 갖춘 학생이 쉬운 문제에서 두 번 연속 실수를 한다는 건 경험칙상 납득이 어렵다는 취지입니다. 반면 변호인은 “'10:11'이라는 답을 알았다면 굳이 분수를 그래프 사이 적을 필요가 없다”며 “단순 실수를 유죄의 증거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변호인은 직접 증거가 없는 이 사건이 “가능성과 가능성의 싸움”이라고 말합니다. 유죄 판결이 났지만 어떤 증거든 각도를 조금만 달리 보면 무죄 판결의 근거로도 볼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변호인은 “'학교 성적이 어떻게 이렇게 오를 수 있느냐'는 추상적 의혹과 의심 외에 구체적으로 정답 유출이 이렇게 이뤄졌다고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현씨에게는 이제 대법원 판단만 남아 있습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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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는 ‘판결 다시 보기’의 줄임말입니다. 중앙일보 법조팀에서 이슈가 된 판결을 깊이 있게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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