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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文의장이 강행한 '제안설명 생략'… 민주당이 野일때도 항의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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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정의화 부의장이 예산안 제안 설명 없이 표결하자 민주당 "국회법 위반"
2019년 12월, 문희상 의장이 예산안 제안 설명 생략하자 한국당 "국회법 위반"
2012년 헌재는 민주당의 권한쟁의심판 청구에 "제안설명 컴퓨터 단말기 설명으로 가능"
野 "예산안 가결 전까지 의석 단말기에 자료 올라오지 않았다"…'불법' 주장

"2020년도 예산안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 등 162인과 (자유한국당) 이종배 의원 등 108인으로부터 각각 수정안이 발의돼 있다. 수정안에 대한 제안설명은 의석 단말기의 회의 자료로 대체하겠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10일 밤 국회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상정한 뒤 이렇게 말하자, 한국당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단상으로 나가 문 의장에게 "제안설명을 할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문 의장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민주당 출신인 문 의장은 항의하는 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제안설명 생략은) 과거 관행을 다 뒤져보고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야당이었던 2010년, 이런 '관행'이 국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까지 청구했었다. 9년만에 양당 간에 정권이 뒤바뀌자 입장도 뒤바뀐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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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내년도 예산안을 상정하자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가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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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의장이 이날 제안설명 발언을 하게 해달라는 한국당 의원들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근거로 든 '과거 관행'은 2011년도 예산안이 통과된 2010년 12월 18일 국회 본회의를 말한다.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한국당 전신)은 야당과의 난투극을 벌인 끝에 국회 본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는 과정에서 제안설명을 의석 단말기 회의자료로 대체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당시 박희태 국회의장은 정의화 국회부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회권을 넘겼다. 정 부의장은 본회의를 개의한 뒤 곧바로 2011년도 예산안을 상정했다. 당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었던 이주영 의원은 단상으로 나와 "제안설명은 단말기에 있는 것으로 대체하겠다"라며 "이상으로 (예산안) 심사 보고를 마치겠다"고 했다. 야당 의원들은 "날치기"를 외치며 항의했다.

정 부의장은 예산안이 가결된 이후 '국군부대의 아랍에미리트(UAE) 군 교육 훈련 지원 등에 관한 파견 동의안'을 상정하면서 "회의장 소란으로 인해 제안설명 및 심사보고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앞으로 상정되는 모든 안건에 대한 제안설명 및 심사보고는 단말기의 자료를 참고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정 부의장의 이런 의사진행이 부당하다고 봤다. 당시 민주당 대표는 손학규 현 바른미래당 대표, 원내대표는 박지원 현 대안신당 의원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문희상 현 국회의장을 포함해 의원 85명 명의로 헌법재판소에 "정의화 부의장이 국회법 절차를 위반해 법안을 가결 선포해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 등을 침해했다"며 권한쟁의심판을 냈다.

청구인들은 "본회의에서 안건을 심사할 때 상임위원회 심사를 거치지 않은 안건은 제안자가 반드시 그 취지를 설명해야 한다"며 "(당시) 본회의에서는 위원회(예결위) 심사를 거치지 않은 법률안들에 대해 제안자에 의한 취지 설명 없이 컴퓨터 단말기에 입력된 자료로 대체하였으므로, 적법한 취지 설명의 방식이 아니어서 국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제안설명을 의석에 놓인 단말기에 나온 자료로 대체하면 안 되고, 단상에서 발언하는 형식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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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8일 국회에서 본회의장 의장석을 차지하기 위한 여야 의원들의 몸싸움 끝에 2011년도 예산안과 법안들이 통과됐다. 정의화 당시 국회 부의장이 본회의를 진행하는 동안 박기춘 당시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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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헌재는 2012년 2월 23일 민주당이 청구한 권한쟁의심판을 기각했다. 헌재는 법안 제안자 취지 설명 절차 및 질의·토론을 컴퓨터 단말기로 대체한 것이 국회법상 절차를 준수한 것인지에 대해 "취지 설명은 서면이나 컴퓨터 단말기에 의한 설명 등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발언대 마이크를 사용하기 어려울 만큼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소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제안설명을 컴퓨터 단말기로 대체하도록 한 것은 국회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 의장이 전날 제안설명을 의석 단말기 자료로 대체한 것도 이런 헌재 결정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당은 전날 문 의장이 예산안을 표결에 붙이고 가결을 선포할 때까지 의석 단말기에 예산안 자료가 올라와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이날 "문 의장이 제안설명을 막고 (단말기) 화면에 이는 자료로 대체한다고 했는데 단말기 화면에 아무 내용이 없었다"며 "불법적인 통과를 시도했고 먹혔다"고 했다. 실제로 전날 밤 본회의에서 의석에 설치된 컴퓨터 단말기에 내년도 예산안 자료가 올라와 있지 않았다면 문 의장 의사진행이 무효가 될 소지가 있다는 게 한국당 주장이다. 헌재는 2012년 민주당의 권한쟁의심판을 기각하면서 "(본회의 개의 3시간 전인) 오후 1시44분쯤까지 의안 정보가 본회의장 컴퓨터 단말기 시스템에 입력돼 누구나 상정되는 안건들의 취지와 내용을 알 수 있었던 상태인 점을 종합해보면, 제안설명을 단말기로 대체한 것이 국회법 93조에 위반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는 것이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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