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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필동정담] 배교자 이승훈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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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였고 첫 신부였던 이가 주인공이다. 이승훈이다.

그는 참수형을 당하며 순교(殉敎)했다. 그렇지만 교단에서 내침을 당했다. 천주교를 떠났다고 외쳤고 천주를 부인했기 때문이다. 배교자(背敎者)였다. 3번이나 배신하고 부인했다. 부친의 강력한 만류 후 모친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거부한 윤지충의 진산사건 뒤 양반 신도들이 대거 외면할 때, 정조 임금 승하 후 신유박해 때 등이다. 그의 세례명 베드로가 예수를 3번 부인했던 것과 판박이다. 저자의 표현처럼 그의 삶은 살아서는 처절했고 죽어서는 더욱 처참했다.

역사적 사실 위에 글쓴이의 상상력이 더해져 수려한 문장으로 칠해졌다. 팩트와 픽션을 합친 팩션이다. 윤춘호 작가의 '배교자 이승훈의 편지'라는 책이다. '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부제도 있다. 서두는 1801년 처형을 당하기 전 이승훈이 다산 정약용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한다. 정약용은 이승훈의 처남이자 신앙과 학문에 동지였다. 그러나 다산은 국문(鞫問)장에서 매형(이승훈)과 조카(황사영), 심지어 친형(정약종)을 향해 비난과 고발에 앞장서며 목숨을 건진다. 비겁한 처신으로 삶을 구걸한 다산을 향해 이승훈은 서운함과 인간적 고심을 절절하게 토로한다. 말미에선 1822년 유배지에서 고향 마재로 돌아온 다산이 21년 전 세상을 떠난 이승훈에게 보내는 편지로 대칭을 이룬다.

저자가 현직 언론인이라는 점에 더 눈길이 쏠리지만 책은 의미 있는 물음 몇 개를 던진다. 조선인 최초의 신부 이승훈은 왜 떳떳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며 순교자의 길을 택하지 않았을까. 신화처럼 도배된 다산 정약용이 의금부 국문장에서 입을 열 때마다 다른 천주교도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저승사자였다니. 18세기 조선의 뜻있는 이들에게 서학과 천주교는 과연 어떤 구실을 했을까.

부제에 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믿음이란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 신념을 지키려면 어떤 어려움을 감수해야 할까. 철학과 종교에 대한 심오한 탐구다.

[윤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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