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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안혜리의 직격인터뷰] “회장님들이 아무리 AI 외쳐도 임원들이 시큰둥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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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에 1만명 몰리는 인재 전쟁

한국은 산업 탄탄해 유리한데

정부 규제에 대기업 문화도 발목

서울대, 전 학부생에 AI강의 계획



초대 AI연구원장 맡은 서울대 장병탁 교수



모순덩어리 대한민국. 정치·사회도 마찬가지지만 혁신적인 신산업과 관련해선 특히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은 “AI 정부”를 표방하며 내년엔 올해보다 50% 늘어난 1조7000억 원의 예산을 책정해 1만 AI 인력을 키우겠다고 나섰고, 서울시교육청은 2021년부터 AI 고등학교 10개를 개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청와대의 지원 사격을 받은 국회는 ‘타다 금지법’을 밀어붙이며 AI를 활용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고사시키기 일보 직전이고, 교육부는 AI인력 양성에 가장 필요한 벡터와 행렬을 2018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아예 삭제해버렸다. 혁신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의 1순위 숙원과제였던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도 끝내 20대 정기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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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집처럼 꾸며놓은 서울대 인지로봇인공지능센터에선 각종 휴머노이드가 연구원들과 함께 생활한다. 소프트뱅크의 휴머노이드 ‘페퍼’(오른쪽)도 그 중 하나다. 장병탁 교수가 페퍼를 볼 때마다 페퍼도 고개를 돌려가며 시선을 맞췄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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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AI시대를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걸까. 이런 걱정에 AI전문가이자 이 정부 규제 샌드박스(과기정통부의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 자문위원인 장병탁 서울대 AI연구원장(컴퓨터공학부 교수)을 지난달 연구실에서 만났다. 마침 제7차 규제샌드박스심의위원회가 열린 날이었다. 자연스레 규제 얘기부터 나왔다.

Q : 심의위에선 현대차가 신청한 AI기반 모빌리티 서비스 관련 규제를 풀겠다고 했는데 국회에선 이미 서비스 중인 ‘타다’를 법으로 막겠다고 나섰다. 규제 샌드박스가 무색해진 것 아닌가.

A : “충돌되는 결정이다. 아쉽다. 정부는 새 서비스 도입으로 피해 보는 택시기사 보호책을 내놓고, 기업엔 기술을 지속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하게 해야 한다. 일단 해봐야 그다음과 또 그다음(기술·서비스 진보)이 계속해서 나올 수 있는데 초기 단계에서 멈춰버리면 우리는 그다음이 뭔지조차 모르게 된다. 원천적으로 막아서 스타트업의 싹을 자르는 현실에서 그나마 규제 샌드박스가 보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Q : 국회에서 데이터3법이 또 막혔다.

A : “AI라는 게 다 데이터 기반이다. 축적될수록 고도화하고 늦어질수록 경쟁력이 떨어진다. 지금 한국 기업은 데이터를 활용한 기술이나 서비스를 못 내놓을 뿐만 아니라 규제를 피하기 위해 아예 우회로를 찾는다. 예컨대 중국이 얼굴 사진 데이터를 활용해 안면 인식 기술을 발전시키는 동안 우리는 그런 데이터가 있어도 저장은 안 하고 연결만 시켜주는 방식으로 기술과 서비스를 발전시킨다.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되더라도 기존 데이터는 활용 못 하고 그때부터 새로 데이터를 쌓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미 몇 년 벌어진 격차가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다.”

Q : 인재 부족 걱정도 많다.

A : “수준은 높은데 수가 적다. AI의 핵심인 머신러닝이라는 건 결국 기초연구다. 우리는 기초에 투자를 잘 안 한다. 투자를 안 하니 연구자가 적을 수밖에. 한국의 연구 지원 체제가 한 분야를 뚝심 있게 밀어주지 못한다. 너무 짧게 본다. 일본은 노벨상을 타는데 한국은 못 타는 이유도 여기 있다. 일본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밀어주면 해낸다는 성공 경험이 지속적인 투자와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 반면 우린 그런 경험이 없으니 불안해서 중간에 투자를 멈춘다. 지금 AI 주요 거점이 된 캐나다와 비교해봐도 명확하다. 캐나다 정부는 사이파(CIFAR·캐나다혁신기술연구소)를 만들어 1980년부터 꾸준히 투자했고, 그렇게 20~30년이 지나니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민간은 하기 어려운 이런 지속적인 투자를 정부가 해줘야 한다.”

Q : 정부 지원만 있으면 인재가 확보되나.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낮은 연봉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는데.

A : “구글·페이스북은 인재 블랙홀이다. 인재를 뽑아서 더 좋은 기술을 내놓으면 그걸 보고 또 인재가 몰린다. 인재의 선순환이다. 우린 선순환 구조에 올라타지 못했으니 영입 비용이라도 써야 하는데 학교는 그것도 막혀 있다. 지금 AI 분야는 글로벌 인재 쟁탈전이 한창이다. AI 최고 학회인 캐나다 닙스(NIPS)에 가보면 안다. 연구자 300명 끼리 하던 학회에 인재를 선점하려고 기업들이 참가하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참가자가 1만5000명을 넘었다. 좋은 인재를 영입하기는커녕 뺏기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첨단분야 학과의 신·증설과 대학교수의 기업겸직을 허용하겠다고 했으니 일단 지켜보고 있다. 미국 대학은 수요에 맞춰 학생을 더 뽑는데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학부 정원은 교육부 규제로 15년째 55명에 갇혀있다.”

Q : AI 발전에 교육부가 걸림돌 같다. 벡터와 행렬을 고교 교육과정에서 삭제한 걸 놓고도 말이 많다.

A :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서 어휘력 등 기본적인 언어 능력이 부족하면 연구가 어려운 것처럼 공학과 자연과학에선 수학이 기본 언어(vocabulrary)다. 언어를 모른 채 연구를 할 순 없지 않나. 그런 면에서 문제가 있다. 그런데 교육과정에 뭘 넣고 빼느냐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교육이 수동적인 인재를 길러낸다는 점이다. 사실 관심만 있다면 스스로 찾아서라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무조건 교실에 앉혀놓고 이게 필요한 거라고 정답을 정해놓고 딱 그거만 공부시킨다. 우등생일수록 받아들이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와일드한 아이디어로 뭔가 꺼내놓는 능력은 부족하다. AI시대엔 융합형 인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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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열린 서울대 AI연구원 개원 심포지엄. SK텔레콤 AI책임자뿐 아니라 의학·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 연구자가 모였다. [사진 AI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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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AI연구원도 그런 맥락에서 만든 건가.

※서울대는 기존의 빅데이터연구원을 확대 개편해 지난 4일 AI와 데이터사이언스를 전담하는 AI연구원을 만들었다. 장 교수가 초대 원장이다. 개원 기념 심포지엄엔 컴퓨터공학 연구자뿐 아니라 의학·법학·경영학·언론학·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참여했다.


A : “그렇다. 당장 급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몇 개월짜리 수료증 줘서 AI인재라고 내놓는다. 단기 처방이다. 10년쯤 후 AI가 또 한 번 진화할 때 이런 겉핥기식으로 따라가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기초부터 투자해야 한다. 서울대는 빠르면 내년 3월 학기부터 모든 학부 커리큘럼에 AI 관련 강의를 넣을 계획이다.”

Q : 보수적이라는 대학에 비해서도 정부의 교육 정책이 지나치게 시대 역행적이다. 한국의 AI 미래를 어떻게 보나.

A : “앞서 예로 든 캐나다의 경우 연구 수준은 높지만 다른 고민이 있다. 산업 기반이 약하다 보니 인력을 미국 등에 다 뺏긴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반면 우리는 IT산업이 발달했고,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제조사가 있고, 통신·인터넷 인프라가 좋고, 스마트폰 보급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AI를 활용해 새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좋은 환경이다. 독일이 요즘 한국에 관심을 두는 이유다.”

Q : 독일이 왜 한국에 주목하나.

A : “최근 독일 국회의원 7명이 한국에 다녀갔다. 우리는 메신저로 카카오톡을 쓰지만 독일은 중국의 위챗이나 미국 왓츠앱을 쓰고, 우리가 네이버로 검색할 때 독일은 구글로 한다. 폐허에서 50년 만에 어떻게 이런 발전을 이뤄냈는지 흥미로워하고 궁금해한다.”

Q : 한국이 이렇게 앞서나간 이유가 뭘까.

A : “과거의 장점이 단점이 되고, 단점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독일은 시스템이 안정돼서 느리고, 우린 기반이 약해서 빨리 적응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잘해온 게 발목을 잡는다. AI 분야에선 뭐라도 일단 시작해야 데이터가 생기고, 그걸 모아서 다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반도체·자동차 등 제조업 기반 성공사례가 많은 한국의 대기업 문화에선 어렵다. 신사업은 필연적으로 안 될 확률이 높다. 실패하더라도 상 주고 밀어줘야 하는데 현실은 성과 없으면 1년 만에 잘린다. 그러니 회사 회장님들은 AI에 목숨 건 듯이 얘기하지만 임원들은 남 일 보듯 한다. 해봐야 좋은 평가 못 받거나 다른 걸로 평가받으니까. 그런 면에서 중요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Q : 해법이 뭘까.

A : “인수합병(M&A)이다. 삼성 C랩이나 네이버의 CIC 등 사내벤처 형식을 도입해 나름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분사 모델보다 밖에서 사들이는 게 맞다. 기업을 만나면 인수할 회사가 없다고 한다. 그 말도 맞다.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싶어도 지분 30%(비상장 20%) 넘어가면 무조건 자회사로 분류돼 공정위 규제를 받으니 선뜻 M&A를 할 수 없다. 사줄 기업이 없으니 사갈 만한 기업이 안 만들어진다. 그래서 외국 기업을 사는데 비싸기만 하고 문화가 서로 달라 실패 확률이 높다. 우리 스타트업을 제값 주고 사고 그게 기술 진보를 이루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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