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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11일만에 죽었다···제주 앞바다 아기거북의 비참한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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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많은 쓰레기들 어디서 왔을까

바다거북 부검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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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생태원 연구진들이 부검실에서 폐사체로 발견된 바다거북을 부검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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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3일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 내에 있는 복원생태관.

계단을 따라 지하 부검실로 내려가자 몸길이 70㎝가량인 바다거북 한 마리가 죽은 채로 누워 있었다.

6월 13일 경북 포항시 호미곶 해수욕장에서 폐사체로 발견된 붉은바다거북이다.

이날 부검실에는 국립생태원을 비롯해 국립해양생물자원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등 해양생물 연구자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바다거북이 왜 죽었는지 부검을 하면서 밝힐 생각이에요. 일단 복갑(腹甲·배를 싸고 있는 단단한 껍데기)을 열고 내부에 있는 장기를 적출해서 특별한 병변이 있는지, 쓰레기를 많이 먹었는지 보려고 합니다.” 이날 부검을 진행하는 이혜림 국립생태원 동물병원부 연구원이 바다거북 폐사체를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부검이 시작되자 심한 악취가 방 전체로 퍼졌다. 연구팀은 바다거북 뱃속에서 장기를 꺼내 식도에서부터 대장, 직장 내부를 꼼꼼하게 살폈다.

기도 안에서 액체와 함께 하얀 거품이 나왔다. 작은 탄식 소리가 들렸다.

이 연구원은 “기도 안에 액체가 차 있는 거로 봐서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바다거북이 그물 등에 머리나 앞 갈퀴가 걸리는 경우에 빠져나가지 못하고 익사한 채로 발견된 경우가 많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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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거북 뱃속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파이프. [사진 강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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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속에는 바다거북이 먹은 수초가 가득 차 있었다. 수초들 사이로 검은 물체가 보였다. 플라스틱으로 된 파이프였다.

이 연구원은 “이런 플라스틱이 장벽을 긁으면서 내려가면 장 염증을 일으킬 수 있고, 단면이 뾰족한 경우에는 장을 뚫게 돼 복막염을 일으키고 심하면 패혈증 때문에 죽게 된다”고 설명했다.



고무관, 낚싯줄, 약 포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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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거북 뱃속에서 발견된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들. 천권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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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2, 23일 이틀 동안 바다거북 5마리를 부검한 결과, 뱃속에서는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이 발견됐다.

수도꼭지 연결용 고무관과 낚싯줄, 알약이 든 플라스틱 포장재도 나왔다.

실제로 우리나라 주변 바다에서는 해마다 20마리가 넘는 바다거북이 죽은 채로 발견된다.

이에 국립해양생물자원관과 국립생태원 등은 지난해부터 바다거북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45마리의 바다거북 폐사체를 부검해 왔다.

조사 결과, 지금까지 부검한 바다거북 가운데 절반이 넘는 31마리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됐다.

이 중 절반가량인 15마리는 플라스틱 쓰레기 섭취가 직·간접적 사인으로 밝혀졌다.



방류 11일 뒤 폐사체로 발견…뱃속엔 쓰레기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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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제주 서귀포시 중문 색달해변에서 방류된 붉은바다거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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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류된 지 11일 뒤에 부산 기장군 해안에서 폐사체로 발견된 붉은바다거북. 뱃속에는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다. [사진 국립생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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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제주도 중문 해수욕장에서 방류된 새끼 붉은바다거북 한 마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바다거북은 방류된 지 불과 11일 뒤에 부산 기장군 해안에서 폐사체로 발견됐다.

부검을 했더니 이 어린 바다거북 뱃속에서 200개가 넘는 쓰레기가 발견됐다. 사탕 껍데기와 삼다수 페트병 라벨 등 비닐 쓰레기가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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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붉은바다거북 뱃속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쓰레기들. [사진 국립생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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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훈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연구원은 “방류가 되고 죽을 때까지 기간이 불과 11일이었는데, 그사이에 그렇게 많은 쓰레기에 노출됐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먹어도 뱉어낼 능력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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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남해연구소 책임연구원이 바다거북 폐사체 속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쓰레기를 들고 있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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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취재팀은 경남 거제시 장목면에 있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남해연구소의 홍상희 박사 연구실을 찾았다.

연구실에서는 바다거북 몸에서 나온 비닐·플라스틱 쓰레기를 종류별로 알루미늄 포일에 싸서 보관하고 있었다.

홍 박사는 알루미늄을 쌓여 있는 비닐 쓰레기를 펼쳐 보이며 "바다거북이 종류별로 사체에서 나온 비닐·플라스틱을 분석한 결과, 해조류를 먹고 사는 푸른바다거북은 밧줄이나 섬유 형태의 비닐을 많이 먹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잡식성인 붉은바다거북은 필름 타입의 비닐, 일회용 비닐봉지를 해파리로 오인해 많이 섭취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는 “해양 쓰레기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6종 가운데 푸른바다거북과 붉은바다거북이 포함돼 있을 정도로 바다거북은 해양 쓰레기를 가장 많이 먹고, 또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위장 안에 뾰족한 케라틴 돌기가 아래쪽을 향해 있기 때문에 플라스틱을 한번 먹으면 위장으로 역류해서 뱉어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홍 박사는 "폐비닐 등이 한번 몸에 들어가면 3주 혹은 한 달은 걸려야 배설되는데, 형태에 따라 체내에 머무는 기간도 달라진다"며 "일회용 비닐봉지가 부피로는 가장 많이 차지했는데, 물에 떠 멀리까지 이동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닐 중에는 농협에서 종이상자 포장 때 붙이는 비닐 테이프도 나왔다.

일부 중국 쓰레기가 나오기도 했는데, 이는 중국 쓰레기가 해류를 타고 떠내려왔음을 보여주는 증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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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제주 서귀포시 중문 색달해변에서 해양수산부 주최로 열린 '바다거북 방류행사'에서 인공부화한 새끼 바다거북들이 바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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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자란 거북이보다 새끼 바다거북이다. 성체 바다거북의 경우 종종 폐사체로 발견되기도 하지만, 새끼 바다거북은 피해 규모를 가늠할 수조차 없다. 발견되지 않을 뿐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새끼거북의 피해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플라스틱으로 인해 해양생물들이 피해를 보면 결국 먹이사슬을 따라 인간에게도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혜림 연구원은 “작은 플라스틱들이 바닷속에서 미세플라스틱 조각으로 분해되고 우리가 흔히 먹는 해양생물들이 미세플라스틱을 먹게 되면 그런 것들이 우리 식탁에 오르게 되는 것”이라며 “플라스틱 쓰레기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생태계는 없는 만큼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충남 서천=천권필 기자, 거제=강찬수 기자 feeling@joongang.co.kr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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