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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은행권 “주가연계신탁 허용에 숨통”… DLF 피해자들은 “배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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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DLF 대책]

고위험 신탁상품 전면금지 방침서 주가연계신탁 판매 절충안 확정

은행 “판매 규모 제한은 아쉬워” 피해자들 “이중적 태도에 실망”
한국일보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단 기준. 그래픽=김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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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종합대책을 확정하고 시행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고위험 신탁ㆍ사모펀드 상품의 은행권 판매를 전면 금지하겠다던 당초 방침에서 한발 물러나, 고위험 신탁상품 중 주가연계신탁(ELT)은 일부 판매를 허용하는 절충안을 마련했다. 신탁 판매 유지 요구를 상당 부분 관철한 은행권은 환영의 뜻을 나타낸 반면 DLF 피해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12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지난달 14일 발표한 DLF 대책에 대한 최종적인 의견 수렴을 거친 뒤 이런 내용의 최종안을 확정했다.

가장 뜨거운 쟁점은 은행이 ELT와 같은 고위험 신탁상품을 앞으로 판매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금융위가 지난달 대책 초안에서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해 은행과 보험사의 고난도금융상품 신탁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하자, 은행권은 40조원(올해 6월 기준)에 달하는 ELT 시장을 지키고자 금융당국에 지속적으로 “신탁상품 판매를 허용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금융당국이 은행권 호소를 들어준 것은 저금리 시대에 투자처가 마땅치 않은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보호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ELT는 주가연계증권(ELS)를 편입한 신탁으로 대중적인 중금리(연 3~4%) 상품으로 꼽힌다.

금융위는 다만 △기초자산이 코스피200 등 국내외 대표적인 5개 주가지수이면서 △공모로 발행되고 △손실배수가 1 이하인 ELS 등을 편입한 신탁에 한해 은행 판매를 허용하기로 했다. 손실배수가 1이라는 것은 기초자산 가치가 하락하는 비율만큼만 손실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대규모 손실을 부른 DLF의 경우 기초자산인 해외금리가 하락할 때 손실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특성이 있었다. 또한 ELT 판매 규모를 지난달 말 잔액 이상으로 늘릴 수 없도록 했다.

김정각 자본시장정책관은 “이번에 허용된 신탁 유형은 (특정 기초자산으로) 쏠림 위험이 적고 그간 손실이 크지 않았다는 점이 종합적으로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대신 금융감독원은 내년에 각 은행별 테마검사를 실시해 고위험 신탁상품의 판매 실태를 점검할 예정이다. 은행이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적합성ㆍ적정성 원칙과 설명의무를 위반하진 않았는지 집중 조사한다는 것이다.

당국이 대책 초안에서 은행 판매 금지 대상으로 설정한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의 구체적 판단 기준도 제시됐다. 고난도 금융상품은 △파생상품을 내재하고 있어 구조가 복잡하고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를 넘는 상품으로 규정됐다. 은행은 앞으로 이들 상품을 사모펀드나 신탁(일부 ELT 예외 인정) 형태로 판매할 수 없다. 향후 상품 출시 땐 금융사가 고난도 금융상품 여부를 1차적으로 판단하되 모호하면 금융투자협회와 금융위의 판단을 거치도록 했다.

신탁상품 판매를 전면 금지 당할 위기에 몰렸던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제한적 판매 허용 방침에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기초자산으로 허용된 5개 지수 모두 현재 판매되고 있는 상품인 점을 근거로 당국이 사실상 현 사업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 것으로 은행들은 해석하고 있다.

다만 금융위가 신탁상품 판매 규모를 제한한 점은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고령화에 따라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신탁 시장에서 은행이 사업을 확대할 길이 막힌 셈이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부담도 늘어날 수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신탁 판매 총량을 제한하면 초과 수요에 대해 신탁 아닌 펀드(ELF)를 팔아야 하는데 펀드는 신탁상품보다 소비자의 보수ㆍ수수료 부담이 30%가량 많다”고 말했다.

금융소비자보호 단체는 “피해자 요구는 외면한 채 사태 원인 제공자인 은행의 요구를 들어줬다”며 이번 대책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은행 요구는 들어주고, 배상비율 가중ㆍ감경 세부지침 공개 등 DLF 피해자들 요구엔 묵묵부답인 당국의 이중적 태도에 피해 고객들은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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