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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美 “유연한 준비 됐다” 달래기에도… 北 ‘새로운 길’ 선택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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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리 회의’ 반발 北외무성 담화 / 北 “대화 타령 美에 기대할 것 없어 / 유엔헌장 자주권 원칙 유린” 맹공 / 내주 방한 비건, 北측과 접촉 여지 / 당국 “현재로선 성사 가능성 낮아” / 문정인 특보 “北·美 협상 교착 땐 / 美, ‘한국 변수’도 있다는 점 알아야”

11일(현지시간)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 후 북한의 반응은 ‘결사항전’으로 요약된다. 미국이 ‘유연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지만, 북한은 ‘기대할 것이 없다’고 했다. 북한이 결국 스스로 예고한 ‘새로운 길’을 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내주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특별대표의 방한으로 ‘연말 시한’ 내 북한과 미국의 마지막 접촉에 대한 기대가 없지 않지만, 현재로선 그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북, “대화에 기대할 것 없어”… 북·미 긴장 절정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2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낸 담화에서 “연말 시한부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는 속에 미국이 우리에 대한 도발 수위를 계속 높이고 있다”며 “미국이 입만 벌리면 대화 타령을 틀어놓고 있는데 설사 대화를 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내놓을 것이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점점 북한이 스스로 예고한 ‘새로운 길’로 접어들고 있는 모습이다.

세계일보

北, 줄잇는 백두산 답사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2일 전국 각지의 노동당 선전일꾼들이 지난 11일 ‘백두산 밀영 고향집’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머물렀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태어났다는 백두산 밀영을 성역화하고 생가를 복원해 백두산 밀영 고향집이라고 부르고 있다. 평양=노동신문·뉴스1


북한은 평소 제재와 관련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안보리 체제에 대한 비판도 꺼내들었다. 외무성 대변인은 “국제평화와 안전보장을 기본 사명으로 하는 유엔 안보리가 주권국가의 자위적인 조치들을 걸고든 것은 유엔 헌장에 명시된 자주권 존중의 원칙에 대한 난폭한 유린”이라며 "유엔 안보리가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적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방증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당국자 개인이 아닌 외무성 대변인 명의로 담화를 냈는데, 당국 차원의 공식 비판이라는 뜻이다.

대변인은 그러면서 “저들은 때 없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려도 되고, 우리는 그 어느 나라나 다 하는 무기시험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야말로 우리를 완전히 무장해제시켜 보려는 미국의 날강도적인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북·미 간 ‘말폭탄’이 절정으로 치닫으면서 일각에선 군사적 충돌에 대한 우려까지 나온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앞서 이날 ‘통일부 장관 및 외교안보특보 송년특별대담’에 참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 역시 대선과 연결해 판단할 것”이라며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쏜다면 (미국도) 군사적 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세계일보

◆비건 방한까지 북한 고심할 듯

내주 비건 대표의 방한 역시 한반도에 찾아든 일촉즉발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미국은 일단 안보리 회의를 소집하는 것으로 북한을 긴장시킨 뒤, 회의에서 다른 안보리 이사국들과 단합된 모습을 보이고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는 등으로 연내 북한과의 마지막 대화 기회를 만드는 시나리오를 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날 북한의 반응을 볼 때 비건 대표가 방한해도 북한과 접촉면을 만들기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북한이 계속 미국의 오전 시간대, 즉 한국 밤 시간에 담화를 발표하고 미국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반응을 내놓고 있어 대화 기회가 완전히 닫힌 것이 아니라는 분석도 여전하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통화에서 “이날 담화는 미국을 계속 압박하는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면서도 “북한이 완전히 문을 닫은 것은 아닐 것”이라고 관측했다. 북한으로서도 스스로 정한 시한을 넘어서면 상황을 되돌릴 기회가 없기 때문에 비건 대표의 방한까지 약 3일 내부에선 고민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비건 대표가 외무성 부장관으로 승진한 뒤 처음 한반도에 오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을 움직일 ‘당근’을 갖고 올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비건 대표의 방한 중 북·미 접촉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지는 않다”면서도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닫지 않고 주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보조를 맞추며 북한에 대응하고 있다. 이날 크래프트 미국 대사의 안보리 발언도 사전에 우리 정부와 조율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문정인 특보는 이날 대담에서 “문재인정부는 기본적으로 북·미 협상이 잘 되려면 우리가 미국과 더 잘해야 하다고 생각해왔다“며 “미국은 한국이 일심동체로 나아간다고 생각하고 북한만 걱정하는데 북·미협상이 진전되지 않는다면 한국 변수도 달리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큰 진전을 보지 못하면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 많은 분들이 불만을 표명할 것”이라며 “그러면 문 대통령도 정책을 바꿀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안보리, 北 도발 평가 공방

북한이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요구하며 설정한 연말 시한을 앞두고 고강도 도발 징후를 보이자 미국의 요구로 11일(현지시간)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회원국들은 외교적 해법과 북·미 간 조속한 대화 재개를 촉구하며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 중국·러시아가 최근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대한 평가와 비핵화의 구체적 방안을 놓고 이견을 드러내면서 미국이 2년 만에 소집한 안보리 회의에서 대북 경고 성명 등은 채택되지 않았다.

켈리 크래프트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이날 안보리 회의에서 북한에 도발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도, 북한이 조속히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크래프트 대사는 ‘균형된 합의’와 ‘병행적 행동’, ‘상호적 행동’ 필요성을 강조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북·미 협상의 교착상태가 이어진 지난 6월 언급한 ‘동시적, 병행적 해법’을 또다시 꺼내 든 것이다.

크래프트 대사는 “우리가 어떤 것을 하기 전에 북한에 모든 것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유연할 준비가 돼 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홀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내놔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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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 크래프트 유엔주재 미국 대사가 11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프랑스 등 서방국가들은 제재 완화에 반대하며 미국에 힘을 보탰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북·미 협상 촉진을 위해 미국과 유엔 안보리가 먼저 대북제재를 완화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북한이 그동안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유예한 만큼 이에 상응하는 ‘당근’을 제공해 협상을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쥔(張軍) 중국 대사는 “제재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라며 “가능한 한 빨리 대북제재 결의의 ‘가역(reversible) 조항’을 적용해 조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보리 대북제재는 상황에 따라 완화할 수 있다는 조항에 따라서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과 미국, 특히 미국은 어렵게 얻은 ‘기회의 창’을 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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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인사들과 가진 오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바실리 네벤쟈 러시아 대사는 “지난해에는 긍정적인 모멘텀이 있었지만, 안보리 차원에서 긍정적인 조치가 부족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북한에) 대가를 제공하지 않은 채 뭔가를 합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제약들을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로드맵 마련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네벤쟈 대사는 상호조치, 단계적 조치, ‘행동 대 행동’ 원칙 등 “정치적 결단”으로 북한의 협력을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으며, 따로 기자들과 만나서도 북한을 향해 “그것(미사일 발사 시험)을 자제하라.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촉구했다.

한편 당사국 대사 자격으로 이날 회의에 참석한 조현 한국대사는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의 의무를 이행하는 동시에, 협상 진전을 통한 구체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의미 있는 북·미 대화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당부했다.

홍주형 기자·워싱턴=정재영 특파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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