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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삶과문화] 펭수와 르네 베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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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존재 자체가 아름다워 / 남이 비난해도 자기 비하 금물 / 긍정적인 자아 이미지 만들어 / 조건·상황에 주눅들지 말아야

펭수 신드롬이다. 왜? 2018년에 상영된 영화 ‘아이 필 프리티’(에비 콘 연출)에서 그 답을 찾아 보자. 80kg의 몸무게, 늘어진 볼살, 드럼통 같은 몸매가 불만인 르네 베넷(에이미 슈머 분)은 패션 센스도 뛰어나고 성격도 좋다. 하지만 일반적인 미의 기준으로 볼 때 자신이 결코 예쁘지 않다고 생각해 주눅 들어 있다. 살을 빼기 위해 헬스 클럽에서 열심히 운동하던 그녀는 사이클 페달을 잘못 밟아 바닥에 머리를 부딪친다. 정신을 차린 뒤 거울을 보니 거기엔 멋진 미녀가 서 있었다. ‘드디어 꿈을 이뤘어!’ 베넷은 환호한다. 사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베넷의 머리가 이상해진 것이다. 자기가 보기에만 미인인 거다.

세계일보

명로진 배우 겸 작가


그 사건 이후, 베넷은 변한다. 이전에는 남자가 말을 걸어오면 ‘또 길을 물어 보겠지’했지만 이제는 ‘나랑 데이트하고 싶은 거지? 눈은 높아서’라고 생각한다. 모든 일에 자신감이 넘친다. 여유만만이다. 사람들의 친절이 당연하다. 지금보다 더 대우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급기야 베넷은 유명 화장품 회사의 리셉셔니스트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하는데, 사장은 자존감 넘치는 묘한 매력의 베넷을 전격 발탁한다. 이 화장품 회사의 역대 리셉셔니스트들은 화려한 외모에 늘씬한 키의 소유자였다.

베넷은 사람들이 비웃든 말든, 당당하게 자신의 일을 해 나간다. 경영진에게 건설적인 의견을 제시해서 신뢰를 얻고 남자친구를 사귀고 새 화장품 론칭을 주도하기도 한다. 영화의 미덕은 베넷이 정신이 돌아와 자신이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라는 걸 알고 난 뒤에도 자신을 여전히 사랑한다는 설정이다. 베넷은 신상품 발표회장에서 외친다. “외모가 어떻든 우리 모두는 존재 자체로 아름답고 멋지다.”

미국 의사 맥스웰 몰츠는 수많은 성형수술을 집도한 뒤 ‘성공의 법칙’이란 책을 써서 외모가 바뀌면 성격도 바뀌고 나아가 인생이 변하는 사례를 밝혔다. 귀가 이상하게 생겨 놀림 받던 소년은 늘 사람을 회피하고 두려워했으나 수술 이후 평범한 성격으로 변해 잘 살았고, 자동차 사고로 흉터가 생겨 타인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생각에 고통받던 세일즈 맨은 수술을 받고 성공적인 영업인으로 변신했다. 상습범으로 복역하던 죄수는 조폭 이미지를 없애고 출소한 뒤에 책임 있는 시민으로 살아갔다. 그런데 긍정적인 변화만 있는 건 아니었다. 몰츠는 자신에게 성형을 받으러 온 사람 중 상당수는 전혀 이상하지 않고 심지어 매력적인데도 스스로 ‘못생기고 늙어 보인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과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은 뒤에도 여전히 자신은 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유가 뭘까?

자아 이미지가 바뀌지 않아서다.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며 생명력 충만한 자아 이미지를 가진 사람만이 행복해진다는 것. 그건 외모와 무관하다는 것. 세상 그 누구도 우리 허락 없이 열등감에 빠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이 그가 전하는 메시지다. 하지만 살다 보면 시도 때도 없이 화살이 날아와 우리 등에 꽂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비수가 우리 가슴에 박힌다. 팀장이, 부하 직원이, 동료가, 가족이 우리에게 “넌 안 돼” “네가 그렇지 뭐” “네가 뭐라고”를 반복한다.

우리에겐 어떤 비난에도 굴하지 않는 자아 이미지가 필요하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멋진 사람이라고 말해 줄 존재가 필요하다. 음악이 나오면 흥에 겨워 춤을 추고 기분이 좋으면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노래 부르는 어린아이 같아야 한다. 남의 눈치 안 보고 사장 이름을 마구 불러대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배울 때는 최대한 몸을 낮추고 겸손해야 한다. 뭔가를 이뤄야 할 때는 고통도 참고 견뎌야 한다. 출신이 어디인지, 가족관계가 어떤지, 최고급 외제차가 있는지 없는지는 따지지 말라. 성별도 국적도 나이도 묻지 말라. 그저 현재를 순수하게 즐기고 누리면 된다. 그게 펭수다. 우리 모두 펭하~

명로진 배우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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