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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책과 미래] 사이버민주주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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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극단적 불통의 시대다. 슬프지만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온라인 민주주의는 없었다. '좋아요'와 '하트' 놀이에 중독된 사람들은 광신의 회로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학력, 지력, 경제력은 별 상관없다. 소셜 중독은 마약 중독과 작동 회로가 거의 똑같다.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해 도파민 중독에 빠지도록 본래 설계되어 있다. 일단 회로가 작동하면 금단현상 탓에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적대감 가득한 저열한 풍자로 얻은 '따봉' 숫자를 세고, 가짜진실을 얼기설기 조합한 싸구려 예언으로 후원금 '삥'을 뜯으며, 제 성에 안 차면 우르르 몰려드는 디지털 린치로 '빠'의 힘을 과시한다. '좋아요'와 '하트'의 회로에서는 자기가 바라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선택적 지각'의 노예로 산다. 눈앞에 사실을 들이밀어도 사실로 받아들이는 대신 차라리 음모론에 빠지는 쪽을 택한다.

'좋아요'는 의견을 달리하는 이에 대한 비아냥과 혐오를 동반하고, '하트'는 취향 다른 이를 향한 배제와 증오를 낳는다. 이 놀이에 민주와 공화는 없다. '선한 사람 대 악한 사람' 사이의 이단 투쟁으로 세상을 보는 집단 편향이 있을 뿐이다. 온라인 공유와 댓글로 이루어진 사이버 세상은 점차 포퓰리즘에 사로잡히고 파시즘에 파먹히는 중이다. 두려운 일이다.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교수의 '나쁜 교육'(프시케의숲 펴냄)에 따르면 SNS 세계에서 사람들은 '자비의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비의 원칙이란 "상대방 발언을 가능한 한 가장 좋은 방향으로, 가장 이치에 맞는 형태로 해석하는 것"이다. 사소한 부분을 물고 늘어지면서 "가장 악랄하거나 가장 공격적인 방식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인간은 '부족 성향의 생명체'다. 상대방을 악의를 품은 악마라고 설정한 후에는 내면에 장착된 부족 스위치가 켜지면서 이분법 사고가 작동한다. 의견이 같은 이는 무작정 옹호하고, 배신자는 처단하며, 내통자는 단속하려 한다. 상대가 어떤 생각인지는 전혀 살피지 않는다. 의심의 신호를 모으고 적대의 기호를 찾아내 가차 없이 악마화한다. 자비의 원칙이 작동할 수 없는 것이다.

하이트 교수는 말한다. "응집력이 강하고 윤리적으로 단일한 집단은 마녀사냥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요즈음 국회에서, 광장에서, SNS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다. "독단주의, 집단주의, 십자군식 사고, 반지성주의"의 물결을 무찌르고, 민주와 공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동등한 시민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공통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까. 새해의 정치가 파행의 민주주의에서 자비의 민주주의로 이행하려면, 무엇보다 이를 화두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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