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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세상사는 이야기] 사선(死線) 속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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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베를린에 다시 다녀왔다. 예전의 사선, 베를린 장벽 안에 들어선 집 한 채와 작품 하나를 보기 위해서였다. 베를린 장벽은 3.6m 높이의 철통 같은 경계였을뿐더러 장벽 자체가 다가 아니고 그 뒤에는 감시초소며 즉각 발포가 따르는 지뢰밭이 있고 다시 담장이 하나 더 서 있었다. 장벽이 있던 자리는 지금, 도로에는 네모난 작은 포석으로 표시되어 있고 그 2열의 장벽 사이 공간은 공공의 공간, 대개 공원이 되어 있다. 대도시를 가르며, 에워싸며 155㎞나 되는 장벽이 쌓이고(1961년 8월 13일 일요일) 또 헐리다(1989년 11월 9일) 보니, 또 통일 후의 복잡한 환수과정 중에, 현재의 공공용지를 좀 파고 들어간 사유지가 남아 있는 일도 있게 되었다. 그런 지점이, (건물 창문에서 뛰어내리면 서독이라) 분단비극이 속출하던 베르나우가에 있는데, 거기 집이 대여섯 채 세워졌다. 물론 처음 있는 일회적 일이다.

옛 사선 안에 살짝 들어선 그 집들은, 대지의 뜻을 충분히 감안한 듯, 감각이 뛰어나면서도 주변과 어울렸다. 한 가정을 위한 터는 아주 좁은데, 대신 4층씩으로 높이를 올려, 될 수 있는 대로 여러 가족이 땅을 나누어 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지금 열여섯 가족이 살고 있다. 집집마다 부엌을 4층으로 올리고 부엌 밖 발코니를, 담장이 없는 옥상 정원으로 만들어 거기서 꽃과 채소를 키우고, 밖으로 나가서 밥이나 차를 들면 저절로 이웃과도 함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건축가의 뜻이 보기 좋았다.

이탈리아 건축가 내외가 지은 집에 갔는데, 손님을 대접하는 과자조차 엄마와 아들이 각기 모양을 달리하여 함께 구운 것을 접시에다 번갈아 나란히, 통일처럼, 담아 내놓았다. 그런 식탁에 앉아서도 나의 눈길은 자꾸 창문으로 쏠렸는데 예전의 사선이 내려다보여서였다. 잔디밭에 길게 늘어 놓은 디딤돌들은, 좋은 조경석으로 보이지만, 실은 탈출하려고 동독인들이 목숨을 걸고 땅속에다 몰래 팠던 굴들을 표시한 것이다. 동독이 폭파시켜버린 교회의 주춧돌도 정원석인 양 평화롭게 잔디밭에 남아있다.

그 집에 가기 전에 바로 앞에 있는 분단기념관에서 보려던 '작품'을 보고 갔다. 큰 구슬 같은 것들을 주렴처럼 꿰어, 커다란 벽에 가득 드리운 것이었는데 그 아래에서는 구경하던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구슬처럼 보이는 그 하나하나가 실은 구슬이 아니라, 독특하게 빚은 진흙덩이, '핸드 셰이프'였다.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베를린 전역에서 벌이고 있는 예술 프로젝트인데, 낯선 사람들이-이미 서로 아는 사람들은 안 된다!-이야기를 해보고 서로 뜻이 맞고 무언가를 함께하기로까지 했을 때, 맞잡은 두 손으로 진흙을 누른 것이다(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꿰어 놓은 진흙덩이들이, 물론 부러움 때문에, 보석구슬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부러워하며, 함께하며" 드린다는 이상한 헌사를 써서, 독일 분단을 다룬 저서 한 권을 건축가에게 건네고 그 예쁜 집을 떠나며, 분단 시절 그곳에서 벌어졌던 비극들을 아는지라, 만감이 교차했다. 그런데 그 집에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떠날 때 이미 날이 늦어 미처 생각 못 한 일이 생각난 것. 그 아름다운 집을 지은 건축가와 나도 핸드 셰이프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그런 마음들이 쌓이면, 우리의 장벽도 무너지지 않을까. 남들도 도와주지 않을까. 미신처럼 떠나지 않은 생각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꼭 30년을 지켜보았다. 많게 혹은 적게 독일 통일과 관련되는 책들을, 번역한 것, 쓴 것을 이제야 꼽아보자니, 열여덟 권에 달한다. 통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다른 견해가 있겠지만, 긴 세월 내가 독일 통일을 지켜보며 경험한 바, 그건-어마어마한 국익이다. 험한 국제 기류의 흔들리는 틈새들을 바라보며 이때를 놓치지 말아야 할 텐데, 이건만은 우선 우리 안에서 마음이 모여야 할 텐데 싶어 초조하다. 마음만 초조하다.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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