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사범학교를 나와 교사로 있던 구 명예회장은 1950년 락희화학공업(현 LG화학) 이사로 입사하며 기업 활동을 시작했다. 1925년 경남 진주에서 연암 구인회 LG 창업 회장 슬하 6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LG그룹의 모태인 화학과 전자(금성사, 현 LG전자) 부문에서 경험을 쌓은 구 명예회장은 가문의 장남 승계 원칙에 따라 1970년 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구 명예회장이 그룹을 이끈 25년 동안 LG그룹 매출은 연평균 50% 이상 성장했다.
1999년 고 구자경 명예회장(왼쪽)과 고 구본무 LG회장이 생전 담소를 나누는 모습./LG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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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구 명예회장은 꾸준한 연구개발에 투자해 핵심 기술을 확보했고, 해외 진출을 통해 LG가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틀을 닦았다. 덕분에 LG그룹은 전자와 화학뿐 아니라 부품소재, IT(정보기술)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1995년 장남인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 그룹을 물려주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구 명예회장은 생전 '강토소국(疆土小國) 기술대국(技術大國)'을 강조했다. 국토가 좁고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의존할 것은 오직 사람의 경쟁력뿐이라는 것이다.
이 지론에 따라 구 명예회장은 퇴임한 후에도 인재육성과 기술개발에 힘썼다. 구 명예회장은 LG연암문화재단 이사장을 재직하면서 연암공업대학과 천안연암대학 등을 지원해 기초산업 분야 전문인력을 육성했다. 또 LG복지재단을 통해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사회공헌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72년 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지냈고, 18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구 명예회장은 슬하에 고 구본무 LG 회장을 비롯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등 6남매를 뒀다. 고 구본무 회장은 지난해 5월 20일 별세했다.
[연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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