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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4+1협의체 협상 따로, 3당 협상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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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등 여야 4당, 한국당 제외한 채 예산안 처리해 후유증



4+1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합의안일까, 아니면 3당(민주당·한국당·바른미래당) 합의안일까?

지난 12월 10일 내년도 정부 예산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하루종일 예산수정안의 향방이 오락가락했다. 이른바 ‘투트랙’이 가동된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3당 원내대표 합의안이 최선이었고, 4+1협의체 합의안은 차선이라고 볼 수 있다. 3당 합의안은 국회 예결위에서 그동안 논의해오다 11월 말 중단됐다. 이후에는 4+1협의체에서 예산안이 논의됐다. 민주당에서 최선을 주장한 쪽은 자유한국당과의 협상을 강조한 온건파였다. 강경파는 한국당을 배제한 4+1협의체 합의안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상황에서 지도부는 온건파 쪽에 속했다고 볼 수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어쩌다가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당내에서 최고로 온건한 정치인이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 지도부가 역설적으로 온건파에 속한다고 할 만큼 의원들 대부분은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오후에 열린 민주당 의원 총회에서는 4+1 예산안 통과를 주장한 의원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는 겉으로는 4+1협의체의 예산 합의안을 전제로 한국당을 압박했지만, 최대한 한국당과의 협상 기회를 열어뒀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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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국회에서 512조원 규모의 내년 정부 예산 수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고 표결에 들어가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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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패스트트랙 법안도 투트랙 전략

한국당과의 예산안 협상에서 대표적인 강경파는 전해철 예결위 민주당 간사였다는 게 당 안팎의 이야기다. 예산안 통과를 앞두고 하루종일 ‘강 대 강’ 대치를 벌이고 있을 때, 한국당의 예산 관련 한 관계자는 “전해철 간사와 협상하느니 원내대표 사이에서 협상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한국당으로서는 11월 말까지 국회 예결위 소소위에서 논의되던 내년도 정부 예산안 협상을 중단한 것도 전 간사였던 점이 각인돼 있었다. 11월 29일 나경원 당시 원내대표가 199개 법안에 모두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신청하자, 전 간사는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12월 9일 밤샘 협상을 할 때도, 12월 10일 아침 협상에서도 전 간사는 한국당 이종배 간사와 협상을 진행하다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민주당 온건파가 3당 원내대표 합의안을 최선으로 기대하고 있었다면, 한국당 역시 온건파는 3당 원내대표 합의안을 기대했다. 양보할 것은 양보하더라도 얻을 것은 얻자는 생각이었다. 9일 오전에 열린 한국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심재철 원내대표와 김재원 정책위 의장 체제가 승리한 것도 온건파의 목소리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금까지 나경원 전 원내 지도부의 일방적인 강경 노선보다는 합리적인 협상 노선을 원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당 강경파는 협상보다는 민주당과의 투쟁을 앞세웠다. 4+1협의체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오후에 의원 총회를 열어 어떻게 할 것인지 의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두 당 의원들의 주장은 대부분 강경했다. 이 과정에서는 예산안 협상은 하루종일 여야 3당의 협상안에서 4+1협의체 협상안으로, 다시 여야 3당 협상안으로 왔다갔다 했다. 냉탕과 온탕 사이를 오고 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후 늦게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가 모인 가운데 총 삭감액 1조6000억원 수준에서 합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한국당이 앞서 4+1협의체가 만든 예산안의 삭감 증액 내역을 보여달라고 하면서 이 협상은 깨진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밤 한국당을 제외한 채 민주당을 비롯한 여야 4당이 예산수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통상 정부안에서 감액분을 정해놓고 의원들이 지역 민원 증액분을 반영해 정부안에서 결과적으로 1조원 정도 감액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라면서 “한국당이 4+1협의체가 며칠 동안 만들어놓은 합의안 삭감 증액 내역을 들여다본다고 하는 것은 결국 민주당으로서는 트집을 잡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증액 내용을 들여다보게 되면 협의체에 참여한 정당 소속 의원들의 민원 예산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투트랙 전략은 예산안 통과 이후에도 계속 유지됐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라간 선거법과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안 역시 4+1협의체의 합의안이 만들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 과정에서도 뒷문은 열어두었다. 한국당이 참여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민주당이 가장 크게 열어둔 문은 선거법 협상안이다. 지금까지 국회에서 총선의 룰인 선거법 협상에서 합의하지 않은 채 여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적이 없었다. 게다가 4+1 선거법 협상안은 지역구 중심의 정당인 민주당에 다소 불리하게 돼 있다. 4+1협의체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으로서는 내심 한국당이 협상에 참여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기대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한국당은 협상에 참여할 생각조차 없어 민주당이 애를 태우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민주당은 양손에 떡을 쥐고 있지만 두 개의 떡을 다 먹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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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예산안 패싱 후 더욱 강경

한국당의 분위기는 예산안 패싱 이후 더욱 강경해졌다.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국회 로텐더 홀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심재철 원내대표 체제가 여야 예산안 협상에서 얻은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당내에서 나오고 있는 만큼 협상을 주장하는 온건파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었다. 한국당의 한 초선 의원은 “농성은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면 된다”면서 “민주당과 대화는 할 수 있으나 지금의 연동형 비례제나 공수처법안으로는 도저히 합의에 이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수도권 중진 의원은 “선거법 협상에서 한국당을 마냥 배제할 수 없다. 3당 원내대표 간 합의가 중요하긴 하지만, 황 대표와 한국당이 너무 강경하게 나오니 민주당으로서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결국 4+1협의체의 합의안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선거법 개정안 통과는 예산안 통과와는 다른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김상일 시사평론가는 “선거법은 게임의 룰이기 때문에 한국당을 뺀 채 처리하는 것은 굉장히 부적절한 선례가 될 수 있다”면서 “협상 불가능의 원인은 지금까지 한국당이 제공했다고 보지만 여당은 협상의 모든 카드를 쥐고 있기 때문에 협상 파탄의 책임은 결국 여당에 돌아오게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예산안 통과 때처럼 4+1 합의안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한국당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여 3당 원내대표 협상안을 낼 수도 있다는 전략을 내세운 것이다. 뒷문을 열어둔 채 출발하는 민주당의 투트랙 전략과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선 한국당의 전략이 연말 정국에서 거세게 맞부딪치고 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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