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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부동산 투기 대응, 공시가격 현실화로 보유세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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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 절반에도 못 미쳐 부동산에 돈 몰리고 기업들은 보유세 절감

시세를 반영하지 못하는 ‘공시가격제도’를 부동산 가격 폭등의 한 원인으로 꼽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2월 5일 경실련과 함께 ‘공시가격 조작’으로 재벌·건물주 등 상류층에게 80조원에 달하는 절세 특혜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한국감정원과 국토부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한 정동영 의원(민주평화당)이 “한국사회 불평등의 80%가 자산불평등·부동산 불평등이고 그 뿌리에 부동산 공시가격제도의 왜곡과 통계조작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 것은 이런 시각을 대표한다.

경실련은 앞서 12월 3일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말 국내 땅값이 1경1545조원이고 공시지가의 현실화율(시세반영률)은 43%라고 주장했다. 국토부가 주장하는 현실화율인 64.8%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12월 3, 4일 두 번에 걸쳐 설명자료를 내 한국은행 대차대조표의 토지자산총액은 2016년 7146조원에서 지난해 말 8222조원으로 1076조원 증가했다며 경실련 주장을 반박했다. 국토부는 정동영 의원실에 1월에 공개토론회를 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경향신문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가운데)와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왼쪽) 등이 12월 5일 ‘공시지가 조작’ 관련자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서초동 서울지방검찰청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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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현실화율과 고무줄 공시가격

국토부는 한국은행 통계에 기대고, 경실련은 토지·주택 표본조사의 결과로 추정하고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한쪽이 무조건 옳다고 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경실련의 통계가 신빙성을 갖고 있다고 봤다. 고 원장은 “LH공사가 토지수용 보상을 할 때 감정평가사들이 실제 거래 가격을 조사해 제시한 시세 보상을 따르는데 그 보상 비율이 공시지가의 1.8배”라며 “공시지가가 시세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는 경실련의 주장은 어느 정도 근거 있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공시가격제도는 토지에 적용되는 부동산 가격인 공시지가와 주택에 적용되는 공시가격으로 나뉜다. 1990년 처음 공시지가 조사가 시작된 후 2005년 종합부동산세가 도입되면서 주택에 대해서 토지와 건물을 통합해 평가하는 공시가격이 도입됐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재산세뿐 아니라 상속세·증여세·종부세 등 각종 조세와 개발부담금과 건강보험료 등 60여 개의 다양한 행정 목적에 활용된다. 공시가격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실질적인 증세나 감세가 이뤄질 수 있다.

공시가격과 관련해 그간 시세반영률이 낮고, 부동산 유형별·지역별·가격대별 불균형이 크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가 올해 처음으로 공개한 부동산 공시가격의 유형별 시세반영률을 보면 시세반영률이 가장 높은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조차 시세의 68.1%에 불과했고, 단독주택은 53%에 그쳤다. 특히 시세가 급등한 서울 한남동·청담동의 고가 단독주택의 경우 시세반영률이 20~30%대에 불과해 건물과 토지가격을 합산한 주택 공시가격이 해당 주택의 공시지가보다 낮게 책정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현행법상 공시가격 산정·고시 권한은 정부가 행사하지만 실무의 경우 공동주택과 표준단독주택은 감정원, 표준지는 한국감정평가사협회, 개별 단독주택과 개별토지는 지자체가 제각각 산정하면서 형평성 문제가 더 불거지는 측면도 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공시지가 조사의 정확성 확보를 위해 한국감정원이나 감정평가사에만 의존해선 안 되고 일선에서 거래를 자주 접하는 공인중개사를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권일 팀장은 “감정평가사가 대표적인 땅(표준지)을 정해서 그 땅의 움직임을 통해 주변가격을 추론하는 형태인데 정확성을 기하려면 땅의 표본수를 늘려야 한다”며 “요즘처럼 부동산 시장이 활발하게 움직이면 현실적으로 빠르게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공인중개사와의 협업을 더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공인중개사 스스로 수수료 수익을 위해 시장을 교란하는 면도 있어서 제제와 보상 체계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종완 원장 역시 비슷한 제안을 했다. 한국감정원의 경우 이와 달리 정부 주도로 전국적으로 일원화된 가격 조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제도 변화보다 조사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김 국장은 “공시지가 조사 예산이 투입되는 과정 자체가 불투명해 수의계약으로 진행하는지, 경쟁으로 이뤄지는지도 알 수 없고 감정평가사가 현장에서 조사한 내역서도 알 수 없다”며 “정부가 주장하는 현실화율 64%를 그대로 믿기 어려운 것도 시세가 얼마이며 그래서 어느 정도의 공시가격이 적정한지 자료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시지가 현실화, 보유세 강화해야”

특히 법인이 소유한 비업무용 토지의 공시지가가 낮게 산정돼 부동산 재벌, 대기업의 세 부담이 낮다는 문제가 지적된다. 일례로 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평당 4억4000만원에 매각된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의 경우 공시지가가 평당 1억9000만원에 불과하다. 고종완 원장은 “대기업 소유 토지의 공시지가가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세금을 낮추기 위해 기업들이 지가산정위원회의 이의신청 절차를 거쳐 합법의 외피를 쓴 특혜를 추구하고 있다는 논란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법인의 경우 공시지가가 낮게 정해지는 상가·사무실·공장 등 별도합산토지 비율이 높다 보니 세금 부담도 낮다. 지난 12월 11일 정동영 의원이 국세청에서 제출받은 ‘종합부동산세 100분위’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종부세를 내는 법인 보유 부동산 자산의 평균 규모가 개인의 13배에 달하지만 보유 부동산 규모 대비 종부세 비율은 3배 수준에 그쳤다. 특히 상위 1%만 보면 법인 부동산이 개인의 50배인데 세급납부비율은 1.7배에 그쳤다.

김 국장은 정부가 기업들에 막대한 부동산 보유세 절감효과를 주는 공시지가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국장은 “상위 100개 법인이 전체 토지의 75%를 보유하고 그중에서도 최상위 1% 재벌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토지 소유가 증가했다”면서 “아파트값이 오르는 건 건물값이 올라서가 아니라 땅값이 올랐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재벌들의 부동산 투기가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종성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교수는 공시지가를 현실화해 보유세를 높이고 대신 양도소득세와 취·등록세 등 거래 관련 세금을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지금 취·등록세와 양도소득세가 높아 매물이 나오지 않고 집값이 오르고 있다”며 “거래세를 낮추면서 보유세를 높이면 부동산 가격 안정과 불로소득 환수 측면에서 모두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재벌 기업들이 보유한 토지의 공시지가를 높이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봤다. 토지는 공급 탄력성(가격 변화에 따른 공급량 변화)이 제로라 세금을 늘려도 경제적으로 왜곡 효과가 없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재벌들은 생산적 투자보다 부동산 수익이 높으면 당연히 부동산에 투자하게 된다”며 “부동산에서 얻을 수 있는 불로소득의 기대 수익을 낮추는 구조를 만들지 않고 이런저런 규제를 한다고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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