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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고속도로 옆 말라 죽는 과수원 나무···대법 "도로공사가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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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차량으로 꽉 막힌 영동고속도로.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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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의 매연이나 제설제 때문에 주변 농작물 피해가 생겼다면 도로를 관리하는 한국도로공사가 손해를 배상해야 할까.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고속도로 부근 과일나무 고사 피해는 도로공사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고 15일 밝혔다.



고속도로 옆만 말라죽는 과수원 나무



경기 이천의 영동고속도로 인근에는 사과와 복숭아 등을 재배하는 한 과수원이 있었다. 편도 4차로 도로 옆에 위치한 과수원은 4차로로부터 약 10m, 갓길부터 계산하면 6~7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고속도로와 인접한 나무들이 어느 때부터 마르기 시작했다. 다른 곳에 심어진 나무보다 현저하게 더디게 자라고 열매도 달리지 않았다. 과수원 측은 2011년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수면을 방해받고, 매연과 제설제 때문에 나무가 말라 죽는다며 중앙환경분쟁위에 손해배상을 구했다. 분쟁위는 한국도로공사가 과수원측에 884만원가량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그러자 한국도로공사가 불복해 법원에 소송을 냈다.



법원, "손해배상 책임 인정"



1심 재판부는 도로공사측이 과수원에 2260만원가량의 배상금을 지급해야한다고 판결했다. 일반적으로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가 가해 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이 사건처럼 오염물질이 배출되고 날아가서 과수원이 피해를 본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법원은 “개인인 피해자가 가해행위와 손해배상 사이의 인과관계를 엄격히 증명하는 것은 극히 어렵거나 불가능하지만, 기업인 도로공사는 과수원측보다는 훨씬 원인조사가 용이한 경우가 많다”고 판결했다. 사회 형평의 관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어 “과수원측은 어떤 유해 원인 물질이 나무에 손해를 끼쳤다는 점을 개략적으로 입증하면 족하고, 도로공사는 그 무해함이나 다른 피해 원인이 있다는 걸 따로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에는 다양한 근거가 제시됐다. ▶지속적인 자동차 매연은 도로변 나무 생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점 ▶제설제에 함유된 염화물이 식물의 광합성 작용을 방해해 악영향을 미치고, 심하면 8년까지 나무를 고사하게 만드는 점 ▶해외 연구에 의하면 제설제에서 나온 염화물은 공기 중으로 날아가 높이 15m, 주변 100m까지 미칠 수 있는 점 ▶고속도로 가까이 심어진 2줄의 나무는 상품 판매율이 5%에 그친 데 비해 3번째 줄부터는 판매율이 95%에 이르는 점 ▶도로와 가깝다는 점 외에는 다른 피해 원인이 없는 점 등이 근거로 고려됐다. 법원은 나무 한 그루당 피해면적과 영농피해 산정기준 등을 고려해 2260만원가량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과 대법원도 이런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대기오염이나 수질오염 등에 의한 공해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에서 피해자에게 사실적인 인과관계 존재를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공해로 인한 사법적 구제를 사실상 거부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어 “고속도를 보존ㆍ관리할 때는 도로 자체의 물리적ㆍ외형적 결함이 있는 경우뿐 아니라 도로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한도를 넘어 제3자에게 사회 통념상 참을 한도를 넘는 피해를 주는 경우에도 피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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