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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동해안별신굿 전수자 벼랑 몬 ‘강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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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해고 부작용 현실화 / 한예종서 20년 몸담은 김정희씨 / 대학측 강사법 핑계 임용문턱 높여 / 사실상 해고… 생활고로 극단 선택 / 강사법 시행으로 인건비 큰 부담 / 대학들 강좌 줄이며 강사들 해고 / 교육부 “한예종은 고등교육법상 / 학위 없는 전문가 임용 가능” 반박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전 겸임교수이자 동해안별신굿 전수교육조교인 김정희(58)씨가 지난 13일 북한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올 하반기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 시행 이후 20여년간 직장으로 삼았던 한예종 측으로부터 사실상 해고통보를 받아 생활고를 겪던 중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강사 처우 개선을 목적으로 시행됐던 강사법이 오히려 강사 대량해고를 야기한다는 소위 ‘강사법 역설’의 여파가 대학가에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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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별신굿 전수교육조교 고 김정희 씨. 연합뉴스


15일 동해안별신굿전수회 등에 따르면 올해 2학기부터 한예종에서 강의를 하지 못하게 된 김씨가 그간 신변을 비관해오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해안별신굿전수회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학교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던 게 (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며 “일자리를 잃은 뒤 주변에 자주 생활고를 토로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82-1호인 동해안별신굿 악사이자 전수교육조교다. 동해안별신굿은 동해안 지역 마을에서 일정 주기로 행해지던 마을 굿의 일종이다. 전수교육조교는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체계에서 보유자 전 단계다. 4대째 무업을 계승하고 있는 김씨는 그 전문성을 인정받아 1998년 한예종 전통예술원 설립 직후부터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 6월 대학 측이 강사 모집공고를 내면서 이전과 달리 ‘전문학사 학위 이상’ 자격을 요구해 김씨가 일자리를 잃게 됐다. 올해 1학기까지만 해도 학위와 무관하게 강사 자격이 부여되던 터였다. 김씨는 강사직을 잃으면서 전공생 대상 레슨도 할 수 없게 됐다. 동해안별신굿전수회 관계자는 “20년 넘게 별다른 문제 없이 강의를 해왔는데 한예종이 강사법 시행에 맞춰 임용 문턱을 올리면서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했던 고인이 일자리를 잃었다”며 “그에겐 전승지원금으로 내려오던 월 60여만원이 수입의 전부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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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 관계자는 “6월 진행된 모집공고에선 전문학사 조건을 내걸었지만 8월 진행한 추가공고에선 학력 제한을 두지 않았다”며 “공고 변화는 교육부 지침을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교육부 측은 “한예종은 고등교육법상 ‘각종학교’에 해당돼 학위 없는 전문가 임용이 법률상 가능하다”며 “한예종이 전문학사 조건을 내건 건 강사법 때문이 아니라 학교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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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예종이 강사법을 앞두고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강사 임용조건을 강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애초 대학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하고 임용기간을 1년 이상으로 하는 강사법이 시행되면 대학이 강사 대량해고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대학알리미 자료에 따르면 한예종의 올해 2학기 강좌 수는 총 1378개로, 지난해 2학기(1403개) 대비 25개 줄었다. 2017년 2학기 강좌 수가 1374개로, 소폭이긴 하지만 지난해 강좌 수가 전년 대비 늘었던 걸 감안하면 강사법 영향으로 일부 강사가 일자리를 잃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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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한예종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최근 교육부가 일반대·교육대 196개교 현황을 분석한 ‘10월 대학정보공시 분석결과’ 자료에 따르면 올해 2학기 강좌 수는 지난해 2학기(29만5886개) 대비 5815개 줄어든 29만71개로 나타났다. 강좌 수 감소가 계속될 경우 결국 학생의 학습권 침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올 2학기 학생 정원 100명당 강좌 수는 22.6개로 소폭이긴 하지만 전년(22.7개) 대비 줄어든 모습을 보였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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