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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브렉시트 공포에… 금융도시 런던은 노동당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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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론 보수당이 압승했지만 노동당 73개 선거구서 49석 차지

"EU서 멀어지면 피해 크기 때문" 선거이후 '이민' 검색 크게 늘어

"런던은 파란색 바다에 둘러싸인 빨간색 섬이 됐다."

지난 12일 치러진 영국 총선 결과를 전한 BBC의 해설이다. 보수당의 상징색은 파란색이고 노동당은 빨간색인데, 런던 바깥을 보수당이 휩쓸었지만 런던은 노동당이 확실한 우세를 보여 뚜렷한 대비를 이뤘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은 전체 650석 중 보수당이 절반을 훌쩍 넘는 365석을 가져가 203석에 그친 노동당을 대파한 선거다. 하지만 수도 런던은 정반대였다. 전체 73개 지역구 중 노동당 49석, 보수당 21석, 자유민주당 3석이었다. 이 같은 정당별 의석 분포는 2017년 총선과 똑같다. 런던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보수당 344석, 노동당 154석으로 보수당이 더블 스코어 이상으로 이겼지만, 런던에서는 반대로 노동당이 보수당을 더블 스코어 이상으로 누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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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자 개에 입맞추는 존슨 총리 - 보리스 존슨(가운데) 영국 총리가 14일(현지 시각) 총선 승리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잉글랜드 북동부 더럼주 세지필드를 방문해 지지자의 애완견을 품에 안고 키스하고 있다. 존슨 총리의 보수당은 지난 12일 실시된 총선에서 전체 650석 중 절반을 훌쩍 넘는 365석을 확보해 압승했으나, 수도 런던에서는 73석 중 21석에 그쳐 노동당(49석)에 크게 밀렸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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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73개 지역구 중 69곳에서 당선자의 당적이 2년 전 총선과 같았다. 4개 지역구에서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이 각각 한 석씩 잃고 얻었고, 보수당이 2석씩 잃고 얻은 차이만 있는 정도다. 노동당이 보수당 현역 의원을 누른 지역구는 전국을 통틀어 하나뿐인데, 런던 중서부의 푸트니 지역이다.

런던과 지방이 서로 극명하게 표심(票心) 차이가 드러난 이유는 선거의 핵심 쟁점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였기 때문이다. 세계적 금융 도시인 런던은 EU를 비롯해 해외에서 자본과 인력이 몰려든다. 금융 산업은 규제 수위가 낮아 자유롭게 자본이 들락거려야 이득을 볼 수 있다. 브렉시트로 국경 문턱을 높여 EU와 거리가 멀어지면 그만큼 런던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브렉시트를 완수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보수당이 많은 득표를 하기 어렵다. 이번에 전국에서 11석을 얻는 데 그친 자유민주당이 런던에서는 2년 전 총선보다 6%포인트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것이 런던의 반(反)브렉시트 정서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BBC는 보도했다. 자유민주당은 가장 분명하게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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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달리 지방에서는 제조업이나 농어업이 중심이다. 이민자들이 유입돼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반감이 크다. 그동안 유럽 본토의 자금과 인력이 유입돼 EU 회원국으로서 얻는 혜택이 런던에 국한됐다는 불만이 표심으로 나타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전통적인 노동당의 텃밭인 잉글랜드 북동부 지역에서 보수당이 약진한 것이 지방에 사는 영국인들이 대거 보수당으로 쏠린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영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이 지역은 한때 영국의 석탄 산업 중심지로 번영했지만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총리가 탄광을 대거 폐광(廢鑛)하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한 이후로 보수당에 반감이 큰 영국의 '러스트 벨트'에 해당한다. 수십 년간 노동당이 거의 싹쓸이해서 '레드 월(red wall)'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63석 중 33석을 보수당이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14일 '레드 월' 지역을 돌며 "오랜 투표 관례를 깨고 정치 지형을 바꿔줘서 고맙다"며 "신뢰에 보답하겠다"고 했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대립 이외에도 전통적으로 런던은 진보 성향의 젊은 층이 노동당에 몰표를 던져왔다. 살인적인 집값·월세에 지친 젊은 세대의 기득권층에 대한 불만이 큰 곳이 런던이다. BBC는 "예전에도 보수당 집권기에 런던은 노동당이 우위를 보였다"고 했다.

브렉시트를 추진하는 보수당이 압승하자 인터넷에서 이민 관련 검색이 크게 늘었다고 일간 인디펜던트가 보도했다. 캐나다·호주와 같은 영(英)연방 국가나 프랑스·아일랜드 같은 이웃 나라로의 이민을 검색한 사람이 많았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13일 '캐나다로의 이민(move to Canada)'이라는 문구의 검색량은 선거 전날보다 49배나 많았다. 미국에서도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캐나다 이민을 알아보는 미국인이 몰려들어 캐나다 이민국 홈페이지 서버가 마비된 적이 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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