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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슈 윤석열 검찰총장

"윤석열 패싱에 기습 인사, 결국 보복하기 위해서였나"... 檢 내부 격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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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균형 인사"라는데 집어내듯 윤 총장 참모들 좌천
文과 근무연 있는 검사들, 검찰 장악할 핵심 보직 꿰 차
검찰 내부 "정치권력, 또 한번 檢 정치적 독립 짓밟았다"
尹 총장 패싱에 現정권 수사 무력화 등 논란 계속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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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7일 추미애 법무장관을 예방한 뒤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건물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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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장관이 8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패싱하고 기습적으로 단행한 검찰 고위 간부 인사는 결국 현 정권을 겨냥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보복이었다. 윤 총장의 대검찰청 참모 대부분은 좌천됐고, 유일하게 자리를 지킨 사람은 조국 전 법무장관이 임명한 한동수 감찰부장 뿐이었다.

이를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보복성 인사 외에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다", "영전하신 분들 면면을 보니 코드인사가 이런거구나 싶다", "문재인 정부가 말하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겠다"는 격앙된 반응이 쏟아졌다. 특히 법무부가 법에 명시된 ‘검찰총장의 의견 청취’ 절차를 무시하고 인사를 강행한 데 대한 불만도 나왔다.

법무부는 이날 고검장·검사장 등 검찰 고위 간부 32명에 대한 승진·전보인사를 단행했다. 오는 13일자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에 대해 "특정 부서 중심의 기존 인사에서 벗어나 그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던 일선 우수 검사들을 적극 중용했다"면서 "특정 인맥, 출신, 기수에 편중되지 않고 인권친화적 자세, 검찰개혁 의지 등 직무 자질을 기준으로 공정하고 균형있게 평가함으로써 인사의 합리적 기준을 제시했다"고 자평했다. 이른바 윤석열 총장을 비롯한 ‘특수통’ 중심의 검찰 문화를 바꾸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윤 총장이 전(前) 정권, 전전(前前) 정권에 대한 적폐 수사를 진두지휘할 때부터 손발을 맞춰온 대검 참모들은 모조리 지방 고검 차장이나 지방검사장으로 밀려났다. 그것도 대부분 발령난 지 6개월여 밖에 안된 초임 검사장들이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수사를 지휘해온 박찬호 대검 공공수사부장은 제주지검장으로, 조국 전 법무장관 가족비리·유재수 감찰중단 사건 수사를 지휘해 온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부산고검 차장으로 각각 전보됐다. 또 이두봉 과학수사부장은 대전지검장, 문홍성 인권부장은 창원지검장, 노정연 공판송무부장은 전주지검장으로 각각 자리를 옮기게 됐다. 이들 대부분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에서부터 윤 총장이 특검 수사팀장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을 때부터 손발을 맞춰왔던 검사들이다. 지방 발령이 난 한 대검 간부는 "해야 할 일을 하다가 생긴 일이니 그냥 감당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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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박찬호 대검 공공수사부장,조상준 대검 형사부장,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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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 사건과 윤규근 총경 비리 사건 등을 지휘해 온 조상준 대검 형사부장은 서울고검 차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검찰의 자체 개혁안 마련과 수사권 조정 작업을 주도해 온 이원석 대검 기획조정부장은 수원고검 차장으로 전보됐다. 윤 총장의 참모 대부분이 검찰 내에서 손꼽히는 부패범죄 수사 전문가들이다.

대검 참모 외에도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이자 윤 총장과 가까운 사이로 꼽히는 윤대진 수원지검장은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전보됐고, 조 전 장관 일가 비리 의혹과 청와대 선거개입 수사를 지휘해 온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도 고검장 승진 발령 형태로 비수사 보직인 법무연수원장에 보임됐다.

이번 인사의 특징은 윤 총장과 가까운 사람들을 대부분 직접 수사 지휘 권한이 없거나, 핵심 현안과 무관한 곳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한 간부는 "몽땅 유배를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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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윤 신임 서울중앙지검장과 조남관 신임 법무부 검찰국장. /조선DB


반면 이들이 떠난 자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근무연(連)이 있는 인물들이 채웠다. 이른바 검찰 내 ‘빅2’라고 불리는 핵심 요직인 서울중앙지검장에는 노무현 정부 때 문재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밑에서 특별감찰반장을 지낸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이, 법무부 검찰국장에는 조남관 서울동부지검장이 각각 임명됐다. 조 지검장은 유재수 감찰무사 사건을 수사해 좌천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으나, 그 역시 문 대통령이 비서실장이던 시절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이날 인사에 대해 검찰은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한 현직 검사는 "언론 보도 등으로 '물갈이설'을 접하긴 했지만 설마하니 일거에 대검 수뇌부를 모두 갈아치울 줄은 정말 몰랐다"며 "검찰개혁, 수사팀 와해 이런 것 다 떠나서 윤 총장 힘빼기 목적 만큼은 감출 수 없이 또렷해 보인다"고 말했다. 재경지검 한 간부는 "검찰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치 권력은 또 한 번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빼앗아 갔다"면서 "요직에 오른 인물들이 그동안 검찰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검찰 내부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부장검사는 "윤석열과 가까우면 죽고, 문재인과 가까우면 산다. 이 외에 달리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할 인사"라면서 "'살아있는 권력'은 건드리지 말라는 확실한 신호"라고 했다.

검찰총장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전례없는 '검찰 패싱' 인사로 절차 위반 논란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청법상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대통령에게 제청하도록 돼 있다. 참여정부 초기인 2004년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며 추가된 조항이다. 당시 강금실 법무장관이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송광수 검찰총장과 상의 없이 인사를 밀어붙였다가 역풍을 맞은 결과였다. 이에 법에 명시된 '의견 제시'는 단순한 요식 행위가 아닌 '실질적 협의'라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추미애 장관이 후보자 시절부터 인사는 '협의 대상'이 아닌 '장관 권한'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피해갈 것으로 점쳐졌고, 실제로 현실이 됐다. 검찰은 법무부의 기본적인 인사계획과 개별 검사에 대한 구체적 보직 관련 인사안을 확인해야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 법무부는 "윤 총장이 장관실로 와서 검찰안(案)을 말하라"고 통보한 뒤, 검찰이 이에 응하지 않았다며 인사를 강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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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장관이 8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건물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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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후속 인사도 칼바람이 불 가능성이 높아졌다. 법무부는 차장·부장급 중간 간부와 평검사 승진·전보 발령 인사까지 이달 내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서울중앙지검에서 선거개입 수사를 지휘 중인 신봉수 2차장검사, 조 전 장관 일가 비리 사건을 지휘했던 송경호 3차장검사, 유재수 사건을 지휘하는 홍승욱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 등이 교체 대상으로 거론된다. 다만 이번 정부 들어 중간 간부의 필수 보직 기간을 1년으로 정한 '검찰 인사 규정'이 있어 수사팀을 대놓고 와해시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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