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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발가락 이용해 날개 쥐락펴락… ‘비둘기 비행’의 비밀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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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모방 로봇 ‘비둘기봇’ 등장… 날개 펴면 깃털 사이 ‘찍찍이’ 발생

바람 안 새게 깃털끼리 서로 붙잡아… 강력한 바람에도 안전하게 비행

美연구팀, 실제 깃털 40개 붙여… 합성탄력인대로 관절 움직임 실험

비행효율 개선 연구에 적용 기대

동아일보

1 데이비드 렌틴크 미국 스탠퍼드대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생체모방 로봇 ‘비둘기봇’이 비행하고 있다. 2 실제 비둘기 깃털 40개를 붙여 비둘기봇 날개를 만들었다. 3 신소재인 합성탄력인대를 이용해 실제 비둘기처럼 깃털에 인공 관절과 발가락을 연결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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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00년 전 이탈리아의 천재 과학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하늘을 나는 새들을 관찰했다. 비행기라는 개념도 없던 당시 새가 비행하는 모습을 연구해 하늘을 나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사람의 팔과 다리에 날개를 달아 새처럼 퍼덕여 보기도 했고, 새가 날개를 가만히 펼친 채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것처럼 사람 등에 날개를 달아보기도 했다. 비록 모두 실패했지만 다빈치는 연구 내용을 ‘새들의 비행에 관해’라는 기록으로 남겼고 후대에 비행기를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다빈치의 기록은 글로 남겨진 최초의 ‘생체모방’ 연구 사례다. 생체모방은 다양한 생물체의 구조나 행동 원리, 메커니즘을 모방해 유용한 도구를 만들려는 시도다. 인류는 선사시대에도 동물의 날카로운 이빨을 모방한 칼과 창을 만들었고 1948년 엉겅퀴 씨앗의 갈고리 모양을 본떠 개발한 일명 ‘찍찍이’인 벨크로는 현대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됐다.

최근 생체모방 연구는 특정 생물이 지닌 근육이나 세포의 정밀하고 부드러운 움직임까지도 모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생체 특성을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소재가 개발되며 단순한 동작뿐만 아니라 복잡하고 미세한 감각까지 구현하는 게 가능해졌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9월 김도환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촉각세포의 세포막 구조와 외부 자극에 따른 생체 신호 전달 메커니즘을 모방해 개발한 인공 촉각 세포다.

미세한 세포 수준까지도 모방한 연구사례가 늘고 있지만 과학자들은 정작 비둘기 날개 ‘깃털’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모방하는 데는 실패했다. 비둘기의 비행을 모방하기엔 깃털처럼 움직이는 소재를 찾기가 쉽지 않은 데다 복잡한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렌틴크 미국 스탠퍼드대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생체모방 분야에서 한계로 인식된 비둘기의 부드러운 비행을 모방하는 데 성공하고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와 사이언스 로보틱스 17일자에 발표했다. 사이언스에는 비둘기 비행의 비밀을 푼 연구결과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는 밝혀낸 비밀을 적용한 생체모방 로봇 ‘비둘기봇’에 대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연구팀은 비둘기 비행의 비밀을 풀기 위해 깃털 하나하나 간의 상호작용을 분석했다. 고화질 모션 캡처 카메라를 이용해 비둘기 3마리 사체의 깃털과 날개뼈를 움직이며 그 모습을 관찰했다.

그 결과 비둘기는 조직을 결합해 기관을 형성하는 결합조직의 ‘탄성용량’을 활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탄성용량은 탄성에 대한 변형과 응력의 비율을 나타내는 것으로 결합조직과 깃털 사이에도 존재한다. 비둘기는 비행 중 날개를 움직이기 위해 뼈를 움직이는 변형을 가한다. 이때 겹치는 깃털들을 결합조직이 응력을 이용해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탄성용량을 활용했다.

또 다른 메커니즘은 비둘기가 날개를 펼 때 생기는 벨크로 구조다. 날개를 펴면 깃털들 사이에 공간이 생기는데 이때 깃털들에 수천 개의 벨크로 구조가 형성돼 서로를 단단히 잡아준다. 이런 구조가 깃털 간 공간이 크게 벌어지는 것을 막는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 구조는 비둘기가 날개를 오므리면 자동으로 해제됐다.

연구팀은 분석한 메커니즘을 적용한 ‘비둘기봇’도 만들어냈다. 비둘기봇에는 실제 비둘기 깃털 40개를 붙였다. 신소재인 합성탄력인대를 이용해 실제 비둘기처럼 깃털에 인공 관절과 발가락을 연결했다. 그런 뒤 실제 비둘기의 비행에서 결합조직 역할을 하는 관절과 발가락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터널 안에 비둘기봇을 넣은 다음 빠르고 강한 공기를 불어넣는 풍동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관절과 발가락 동작이 깃털 배치와 날개를 펼치는 정도를 조절하는 데 미세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대칭적인 관절과 발가락의 움직임이 날카로운 각도로 비행할 때도 안정적인 회전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준 것이다. 렌틴크 교수는 “비둘기가 주로 발가락을 사용해 비행 방향을 잡는다는 첫 번째 증거”라며 “이번 연구는 혁신적인 항공기를 개발하는 데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박훈철 건국대 생체모방시스템연구실 교수는 “사용하는 에너지 대비 비행거리를 의미하는 비행효율이 비행기는 특정 구간에서만 효율이 높은데 새는 전 비행구간에서 높다”며 “새의 날개 변형을 모방한다면 비행기의 비행효율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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