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책과 삶]플랫폼 자본주의를 찌르는 키워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감정화하는 사회

오쓰카 에이지 지음·선정우 옮김

리시올 | 132쪽 | 1만8000원

경향신문

일본의 비평가 오쓰카 에이지. 리시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플랫폼’은 오늘날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 문화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웹소설 시장은 수천억원 규모로 성장하고 있으며, 유튜브는 기존 미디어를 압도하고 있다. ‘플랫폼 자본주의’ 사회는 우리의 경제와 생활양식뿐 아니라 문화와 삶, 사고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일본의 비평가 오쓰카 에이지(62)는 <감정화하는 사회>에서 플랫폼 자본주의가 사회와 문화에 초래한 거대한 변화를 ‘감정화’라는 키워드로 분석한다. 인터넷은 자아를 표출할 공간을 만인에게 개방했으며, 나를 드러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을 발산하는 것이다. 좋음, 감동, 혐오, 분노, 증오 등 즉각적 감정의 분출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들이 플랫폼에서 선호받는다. ‘좋아요’는 곧 인기와 명성이며, 현금이다. 플랫폼 자본주의는 ‘감정화’가 사회 전 영역을 압도하는 현실을 낳았다.

오쓰카는 일본 대중문화와 비평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비해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고 저평가된 인물이다. ‘오타쿠 담론의 아버지’로 불리며 게임, 만화 등 일본 서브컬처의 대표적 비평가이며, 직접 소설을 쓰고 만화 편집자를 지내기도 했다. 전후 민주주의론자로서 우익으로 치닫는 일본 사회와 천황제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지식인이기도 하다. <감정화하는 사회>에 대해 말하자면, 오쓰카의 다양한 면모를 한눈에 보여주는 책이다. 콘텐츠 플랫폼이 문화에 끼친 영향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일본 사회의 보수화와 천황제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이 문학의 창작과 수용에 가져올 미래도 과감하게 예측한다. 비평가 오쓰카 에이지의 저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경향신문

일본 문호메신저는 다자이 오사무 소설 등 일본 근대문학을 채팅창 메시지처럼 전달한다. 리시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책을 여는 것은 뜻밖에 일왕에 대한 이야기다. 번역자는 ‘天皇’이 일본에서 쓰이는 특수한 맥락을 고려해 일본에서 발음되는 ‘덴노’ 그대로 표기한다. 저자는 아키히토 덴노가 생전 퇴위에 대한 ‘마음’을 표명한 것을 사례로 들어 ‘감정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덴노의 정치참여가 헌법으로 금지된 상황에서 그는 퇴위하고 싶은 ‘마음’을 국민에게 직접 전달해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는 제도와 정치를 넘어서서 벌어진 일이었다. 저자는 “ ‘감정’이 우리 가치 판단의 최상위에 놓이고 ‘감정’을 통한 ‘공감’이 사회 시스템으로 기능하게 되는 사태를 ‘감정화’라 부른다”고 말한다. 그는 “ ‘감정’은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경제학적 분석보다 단번에 ‘감정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이것이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반지성주의’라는 이름의, 간신히 존재하던 ‘지성’마저도 능가하는 ‘감정’의 정체”라며 “그 감정 앞에 저널리즘도 문학도 비평도 침묵하고 있다”고 일갈한다.

과거 <이야기 소비론>에서 동인지 창작과 같은 ‘2차 창작’이 작가가 작품을 생산하고 독자는 소비하던 일방향성 관계를 무너뜨릴 것을 예측했던 그는 이번엔 ‘이야기 노동론’으로 발전시킨다. 대다수 사람들이 플랫폼 ‘유저’로서 게시글이든 영상이든 아니면 단순한 댓글이든 ‘콘텐츠’를 공급하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보이지 않는 노동’이 이뤄지고 있고, 콘텐츠 플랫폼기업들이 ‘유저’들을 착취하며 이익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벌어진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X 101> 사건을 떠올려보자. 방송국과 제작사는 ‘독자들의 참여’라는 노동을 기반으로 인기와 이익을 창출했으면서도 순위를 조작해 자신들의 사익을 챙겼다. 투표에 참여한 팬들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와 이익 분배에서 철저하게 소외됐다.

경향신문

‘감정화’는 문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는 ‘눈물 난다’ ‘무섭다’ ‘감동적이다’ 식의 ‘즉효성’을 문학 역시 요구받고 있다고 한다. 이를 ‘기능성 문학’이라 일컬으며 ‘소설의 감정화’라고 말한다. 오쓰카는 또한 모바일 메신저의 단문 대화, 트위터처럼 글자 제한이 있는 SNS에 익숙한 독자들이 문학에서도 문체의 소멸, 묘사보다 대화에 치중하게 만들면서 ‘문학의 기능화’를 초래한다고 말한다. 일례로 채팅앱에서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처럼 소설을 읽게 한 ‘문호 메신저’는 다자이 오사무 등 일본을 대표하는 근대문학들을 메신저창에 구현하면서 ‘일반적인 소설보다 술술 읽히는’이라고 설명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비판적 언급도 눈에 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시로가 주인공 쓰쿠루에게 강간당했다고 위증을 하고(시로는 정신이 이상해 그런 위증을 한다), 쓰쿠루가 오해를 풀기 위해 ‘순례’를 하는 것이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를 우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이 위안부 문제를 규탄하는 것은 오로지 그 나라의 국민성과 피해자 의식 때문이라는 주장은 시로의 위증이 그녀의 정신 상태 때문이라는 것과 같은 논리다.”

경향신문

트위터의 ‘오쓰카 에이지 봇’ 계정. 가상의 계정이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AI에 의한 창작을 시사한다. 리시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오쓰카는 AI의 발달이 문학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논지를 펼친다.

책에 언급되는 대부분의 사례가 일본의 상황이고, 일본에서 쓰이는 용어와 표현을 그대로 쓴 점이 많다는 점에서 책을 읽어나가는 게 쉽지는 않다. 번역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였다. “나는 장황한 만연체에 사실상 구어에 가까운 원서 문장을 되도록 그대로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이는 “ ‘타자와의 접촉이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본질”이라는 저자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플랫폼이 추천해주는 ‘입맛에 맞는’ 콘텐츠에 익숙한 요즘 시대에, 오쓰카가 들려주는 ‘불편한’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신문 최신기사

▶ 기사 제보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