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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화제의 책]지구상의 크고 작은 수많은 섬들을 점유하고 있는 ‘점묘주의 제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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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국의 연대기

대니얼 임머바르 지음·김현정 옮김

글항아리 | 720쪽 | 3만5000원

경향신문

1941년 12월7일, 일본 군용기가 미국 하와이주 오아후섬의 해군기지를 폭격했다. 미국 전함 애리조나는 공중 어뢰 4개를 얻어맞고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일본의 공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하와이 공격 9시간 뒤 또 다른 비행대가 필리핀 상공에 나타났다. 진주만을 공습했던 일본 폭격기는 타격에 성공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만 필리핀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최초 공습 이후 더 많은 공격이 잇달았고 결국 일본은 필리핀을 점령했다. 필리핀만이 아니라 괌, 웨이크섬 등 미국 영토를 불과 몇달 만에 모두 차지했다.

당시 1600만명의 필리핀인들은 미국 국적을 지니고 있었으며 학교에서 영어를 배웠다. 날마다 성조기에 경례했다. “필리핀은 미국의 최대 식민지”였다. 그래서 1944년 10월, 20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루손섬에 상륙한 맥아더는 라디오 방송에서 “내가 돌아왔다”라고 외쳤다. 알려져 있다시피 그의 아버지는 필리핀 총독을 지낸 인물이다. 하지만 대다수 평범한 미국인들은 필리핀이 미국 식민지라는 사실을 잘 몰랐으며 필리핀 자체에 아예 무관심했다. 마닐라에 당도한 상당수 미군 병사들이 영어를 구사하는 필리핀 사람들을 보고 놀란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단 한번도 식민지를 구하러 간다거나, 거기서 만날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미국인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으며, 그저 “어떤 외국에 쳐들어간다고만 생각”했다.

저자 대니얼 임머바르는 미국 노스웨스턴대 역사학과 교수다. 책은 ‘전쟁, 전략, 은밀한 확장에 대하여’라는 부제를 지녔다. 100년이 넘도록 세계 최강대국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는 미국의 역사를 ‘제국의 역사’로 규정하면서 ‘영토’(Territory)라는 측면에서 살피고 있다. 저자는 미국 영토를 둘로 바라본다. 하나는 “북아메리카 미국 본토”이고, 다른 하나는 “전 세계에 점조직으로 퍼져 있는 다수의 미국령 섬과 제도, 기지들”이다.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물론 후자다. 앞서 언급한 필리핀을 비롯해 푸에르토리코, 괌, 미국령 사모아, 하와이, 웨이크섬 등이 미국 영토로 편입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면서였다. 그것은 명백한 식민지였다. 하지만 ‘노골적인 제국주의’의 “열기가 사그라들면서 식민지라는 말 대신 영토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됐다”.

저자는 50개 주로 이뤄져 있는,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의 지도(로고 지도, Logo Map)는 “진실을 호도한다”고 지적한다. 책에는 1941년 무렵 미국 영토 전부를 나타내는 지도가 ‘확장된 미국 영토’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다. 하지만 필리핀이 그랬듯이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이라는 것을 아는 미국인은 거의 없었다. 필리핀인과 푸에르토리코인들은 미국인이 되길 원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차별당했다”. 물론 이런 상황은 지금도 이어진다. “2017년 허리케인이 푸에르토리코를 덮쳐 큰 피해를 입힌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푸에르토리코가 미국 영토라는 걸 아는 미국인은 절반을 약간 넘는 수준”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권력의 정점에서 ‘식민지 제국’의 모습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택했다. 하나는 식민지에서의 저항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기술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은 실제로 식민지를 보유할 필요 없이 제국의 수많은 이점을 실현할 놀라운 기술들”을 개발했고, 이를 “표준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확장된 영토’는 지도에서 사라졌는가. 저자는 이 물음에 대해 “미국의 영토는 여전하다”고 답하면서 “지도상의 크고 작은 수많은 섬들을 점유하고, 전 세계에 800여개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을 ‘점묘주의 제국’(Pointillist Empire)이라고 지칭한다.

아울러 과거에도 그랬듯이, “대규모 식민지든 작은 섬이든 군사기지든 간에, 그 어떤 영토도 미국 본토 거주자들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공화국을 자처하는 미국이 “여전히 제국”임을 세밀하게 논증하고 있는 책이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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