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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이수연 PD의 방송 이야기] 방송인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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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벌써 설날이 코앞이다. 방송가도 설 연휴를 위해 귀성 계획을 짜는데, 그 풍경은 조금 다르다. 아무리 연휴가 길어도 방송은 쉬는 적이 없고, 녹화를 허락하지 않는 뉴스도 횟수만 줄 뿐이지 빠지는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 1초도 공백기를 둘 수 없는 생방송팀은 근무 셈법이 복잡해지는데, 일단 지방에 꼭 내려가야 하는 사람들을 연휴 앞뒤에 배치해 편의를 봐준다. 그다음에 기혼자들은 설 당일 근무에서 제외해 차례에 참석할 수 있게 한다. 이러면 설날 당일 근무는 늘 미혼 차지가 되는데, 결혼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친척들 사이에선 점점 잊힌 얼굴이 돼 간다.

제작진의 존재가 잊히는 건 꼭 명절만이 아니다. 가족 생일이나 식사 모임, 때로는 아이들 입학이나 졸업식도 건너뛰고, 극단적으론 부모님 임종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그깟 일 좀 미리 해 놓고 참석하면 될 것 아니냐?"는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방송 제작은 팀플레이(team play)다. 누구 하나가 부지런을 떨어도 어떤 순간엔 반드시 모두 모여 작업해야 한다. 예능이나 드라마라면 녹화 시간이 그렇고, 뉴스라면 생방송 시간이 그렇다. 이럴 때 내 사정으로 제작에 지장이 생긴다면 큰 민폐이기 때문에 이때만큼은 모든 스태프가 이유 불문하고 제작에만 몰두한다. 그러니 큰 부상으로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아니라면, 가족 식사 모임쯤은 빠지는 것이 당연해지는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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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제작할 때뿐만이 아니다. 기자라면 취재원을 만나 저녁 식사를 하는 것도 일이고, PD라면 촬영 장소를 물색하려고 여행하는 것도 출장이다. 밤낮 구분이 없고, 일과 일상생활이 뒤섞여 있는 것이 제작 현장이다 보니 가족보다는 스태프와 보내는 시간이, 집보다는 촬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아진다. 얼마 전 만난 드라마 PD의 아내는 "출산할 때도 남편은 촬영장에 있을 것 같다"며 우울해했다. 방송인 가족으로 사는 외로움이 느껴지며, 중요한 순간마다 가족과 함께 있어주지 못한 나 자신이 생각나 입맛이 썼다.

올 설 연휴 TV 편성표도 24시간 빡빡하게 채워질 것이다. 이 당연한 풍경 뒤엔 가족과 지내는 시간을 포기한 방송 제작진이 있음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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