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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꺼지지 않는 호주 산불… 원주민 지혜까지 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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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불 내 숲 덤불 미리 제거… 큰 불로 안번지게 雨期때 활용

석 달째 화마(火魔)와 싸우고 있는 호주에서 불로 불을 예방하는 호주 원주민의 지혜가 주목받고 있다. 호주 북부에 사는 원주민들이 우기(雨期) 때 일부러 작은 불을 내 숲 속 덤불을 태우는 화재 예방법이 재조명되고 있다고 16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와 BBC 등이 전했다.

조선일보

14일(현지 시각) 호주 시드니 남부 이스트린에서 산불에 화상을 입은 새끼 캥거루가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다. 호주에서 석 달째 이어지고 있는 산불로 캥거루, 코알라 같은 야생동물이 5억마리 이상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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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년 전부터 내려온 원주민의 이 화재 예방법에는 과학 상식이 녹아 있다. 물질이 탈 때는 산소, 탈 물질, 발화점 이상의 온도가 필요하다. 산불이 날 때 주변에 덤불이 널려 있으면 큰불이 되기 십상인데, 원주민 방식은 탈 물질을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원주민들은 기온, 풍속·풍향, 습도, 식물의 생애주기 등을 고려해 작은 불을 낸다고 한다. 주간지 타임은 "원주민들은 기온이 높을 때, 바람이 세고 건조할 때, 식물의 파종기 등을 피해 작은 불을 낸다"고 했다. 호주 역사학자 빌 가메즈의 호주 원주민 문화를 다룬 책 '지구에서 가장 큰 땅'에 따르면, 18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호주에선 원주민 방식의 화재 예방법이 널리 통용됐다. 그러나 불을 무서워하는 유럽인들이 호주에 상륙하면서, 원주민들이 불을 내는 것을 금지해 원주민의 화재 예방법은 맥이 끊기다시피 했다. 그런데 2009년 발생한 호주 빅토리아 대화재로 원주민의 지혜가 주목을 받았고, 이는 2013년 호주 정부 공인 화재 예방 프로그램이 됐다. 이로 인해 최근 10년 사이 호주 북부에서 치명적 산불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원주민 출신인 호주 멜버른대 교수 알렉시스 라이트는 NYT 기고를 통해 "원주민의 기술은 불의 연료를 줄이고 화재 범위를 제한함으로써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며 "원주민들의 지식을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언론들도 원주민들을 찾아가 과거 방식을 취재해 보도하고 있다. 지난 15~16일 호주 남동부에 비가 쏟아지면서 32곳의 산불이 진압됐지만, 전체 산불은 아직 꺼지지 않고 있다. 가디언 등 외신은 "뉴사우스웨일스의 30곳에서는 아직도 손 쓸 수 없을 정도의 불이 나고 있고, 다른 82곳에서도 산불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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