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삶과 문화] 응급관리료의 예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일보

담당의가 응급/비응급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명시된 기준은 환자에게 ‘응급’에 준하는 증상이 있을 때다. 가령 심정지, 의식 저하, 골절, 토혈 등이다. 하지만 증상의 유무로만 판단해서 적용하면 애매할 때가 많고, 훨씬 더 불합리한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적용은 당시 담당의의 판단에 의한다. 담당의에게는 진료 외에 또 다른 의무가 있는 셈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접수하는 모든 환자에게는 6만원 정도의 응급관리료가 책정된다. 이 비용이 있어 응급실은 외래에 비해 비쌀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환자가 이 비용을 다 내는 것은 아니다. 환자가 응급실에서 퇴원할 때 담당의는 응급/비응급을 지정한다. 퇴원 시에 ‘응급’으로 지정되면 절반이 할인되고, ‘비응급’으로 지정될 때만 전부 지불한다. 환자가 입원하면 ‘응급’에서 추가 할인이 있다.

이는 중증도로 비용의 차등을 두어 꼭 필요한 사람만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개념이다. 이 비용이 없다면 외래와 응급실 이용료는 별반 차이가 없어, 정말 위급한 사람이 제때 치료를 못 받는 일이 생길 것이다. 게다가 응급실은 외래보다 운영비가 더 많이 든다. 응급관리료는 적당한 문턱의 기능을 하면서도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담당의가 응급/비응급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명시된 기준은 환자에게 ‘응급’에 준하는 증상이 있을 때다. 가령 심정지, 의식 저하, 골절, 토혈 등이다. 하지만 증상의 유무로만 판단해서 적용하면 애매할 때가 많고, 훨씬 더 불합리한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적용은 당시 담당의의 판단에 의한다. 담당의에게는 진료 외에 또 다른 의무가 있는 셈이다.

실제 판정해보면 대부분 ‘응급’이다. 환자들은 제각기 필요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이유로 응급실에 방문한다. 의사도 사람이라 환자들의 응급함을 이해한다. 단순 약 처방, 단순 감기, 상처 소독, 경미한 외상 정도만이 비응급이다. 이들도 본인이 추가 비용을 알고 방문했거나 보험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에겐 응급실 비용에서 3만원 정도가 추가된다. 비응급 지정에 있어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응급관리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연 교통사고 보험 환자다. 특히 한쪽의 과실로 사고가 났을 때다. 교통사고는 대체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고, 신체와 재산상의 손해를 배상하는 암묵적 합의가 발생한다. 또한 피해자는 교통사고가 발생한 순간부터 가능한 한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받으려고 한다. 인간의 심리상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피해자가 보험으로 병원을 여기저기 방문한다거나, 경미한 부상에도 큰 병원 응급실에 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응급실 과밀화를 줄이기 위해 이를 제도적으로 막을 필요가 있다. 교통사고라도 외래 진료로 충분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의사가 ‘응급’으로 판단하면 보험처리가 되고, ‘비응급’으로 판단하면 응급관리료를 환자가 직접 지불한다. 제도적으로 문턱이 있는 것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들은 대부분 응급실로 직행한다. 상식적으로 당연하며, 담당의는 대부분 이해해서 ‘응급’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극단적인 경우가 종종 있다. 아픈 곳이 전혀 없지만 그냥 온 사람, 3일 전 교통사고 차량 안에 있던 아이가 어떤 불편함도 호소하지 않았지만 지금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보호자, 3개월 전 교통사고가 갑자기 걱정돼서 오는 사람도 있다.

사실 이들은 의사의 양심을 걸고 비응급이다. 적어도 외래로 가야 하는 사람이다. 아픈 곳이 없는 사람이 비응급이 아니라면 누가 비응급이겠는가. 이들을 걸러내고자 제도가 있고 의사가 판단을 한다. 하지만 이들을 ‘비응급’으로 분류하면 진료실로 돌아와서 대단히 크게 화를 낸다. 무료인 치료가 왜 유료가 되었느냐는 것이다.

이들을 납득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현실적으로 모두 ‘응급’으로 바꿔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제도가 유명무실한 셈이다. 원칙을 지키려는 의사만 항의를 듣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사실 교통사고와 관련된 보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에는 이 응급관리료도 있다. 예전부터 인간의 이기심과 맞닿아 있는 문제이기에,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