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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검찰 견제하는 재정전담부 신설되나...서울고법 22일 판사회의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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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 법원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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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이 오는 22일 고등법원판사회의를 열어 검찰 기소독점권 견제에 힘을 싣는 재정전담부 신설을 결정하기로 했다. 고등법원장 결재까지 통과하면 2월 정기인사 이후 구체적인 사무분담을 거쳐 확정 공고된다.

재정전담부 관련 논의는 지난해 3월 수원고등법원이 설립된 뒤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건 수 감소로 서울고법의 형사·민사·행정부를 6개가량 줄이는 조직 개편이 검토됐고 더불어 한 부를 재정신청사건전담부로 만드는 안이 추진된 것이다. 행정처 근무 때 유명무실한 재정신청제도의 문제점을 느낀 김창보 서울고법원장이 지난해 대법원에 필요성을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檢 기소권 견제하는 재정신청제도, 10년 넘게 유명무실



검찰은 지금까지 ‘기소를 하지 않음’으로써 외려 기소할 수 있는 권리를 독점적으로 유지해왔다. 검찰의 독점기소권에 대한 유일한 견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법원의 재정신청제도는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불복한 고소·고발인이 법원에 공소 제기를 신청하는 제도다. 재정신청이 인용되면 검사는 무조건 공소를 제기해야 한다. 재정신청제도가 검사의 기소독점권에 대한 중대한 예외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잘 운영된다면 검찰의 기소권을 법원이 통제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된다. 하지만 재정신청제도는 2007년 대대적으로 개정된 후에도 인용률은 1% 미만으로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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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외벽에 펄럭이는 태극기와 검찰 깃발이 비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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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8년 전국 고법에 접수된 재정신청은 2만 건이 넘지만 인용 건수는 115건(인용률 0.52%)에 그쳤다. 지난 10년을 봐도 18만2854건 중 공소가 결정된 건 1520건으로 0.83%의 인용률을 보였다.

재정신청제도의 낮은 인용률 문제는 법원이 국민 권리구제에 소홀한 게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매년 국정감사에서 언급됐다. 고법 관계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담부를 만들려는 논의가 본격화됐다”며 “지난해 8월 고법의 대법원장 업무보고에 재정전담부를 검토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檢 견제는 법원의 중요 역할 중 하나”



재정전담부 신설을 찬성하는 판사들은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한다.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재정사건을 꼼꼼히 보는 것은 검찰을 견제하는 법원의 역할 중 하나인데 지금까지 법원이 너무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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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여신 '디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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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재정사건은 서울고법을 비롯한 전국의 고등법원에서 본안 사건 외에 부수적으로 분담해 처리된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재정사건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재정사건을 담당하는 A판사는 “추가 증거 확보 등 실효적 방법이 많지 않은 점”을 인용률이 낮은 또 다른 원인으로 꼽았다. 검사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충분한 자료를 확보했거나 신청인이 입증 자료를 충분히 제시한다면 재정신청이 인용될 가능성은 커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불기소처분 사건은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자료가 부족하다. 다른 B판사는 “재정신청을 받아들여서 기소하라고 해봤자 검찰에서 열의를 안 보이는 경우도 많다”며 “검사가 무죄를 구형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들은 재정전담부가 생기면 이 같은 문제점이 해결될 것으로 전망한다. 재정전담부가 생기면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재정신청을 정리해 남소를 거르게 돼 더 꼼꼼하게 재정사건을 살펴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또 현재 부마다 차이가 있는 재정인용 처리기준 등도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담부 반대 판사들 “전담부 신설은 인력 낭비”



다만 인력 낭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린 사건은 증거나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인용률이 낮은 것”이라며 “전담부가 기록을 아무리 꼼꼼히 보더라도 인용률이 올라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법원이 검찰 수사가 미진해 보완해야 한다며 재정신청을 인용할 수 없기 때문에 전담부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인력 낭비가 될 수도 있단 지적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말 열린 사무분담위원회에서도 재정전담부 신설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위원들은 전담부를 만들려고 기존 합의부가 줄어들면 본안 사건을 담당하는 합의부에서 사건을 더 많이 처리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보였다고 한다.



대법원 “고등법원 재판부 신설, 관여 안 해”



일각에선 법원이 현 정부의 검찰개혁에 힘을 보태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대법원 관계자는 “고등법원의 재판부 신설 관련 논의에 대법원 전혀 관여할 수 없는 상황”이라 말했다.

오히려 대법원은 재정전담부 신설을 돕기 어려운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고법에서 재정전담부 신설과 함께 기존 합의부 유지를 위해서는 최소 3명의 판사가 충원돼야 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서울고법에서 인력 충원 요청이 있었지만 다른 법원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했을 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울고법 관계자도 “전담부 신설과 관련해 대법원과 사전 교감은 없었다”고 했다. 논란이 많아 판사회의를 여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는 “재정전담부 설치는 고법 내규를 고치는 문제여서 판사회의를 거치는 것뿐”이라며 “판사회의는 원래 정기인사 전 1월에 열리는 정례회의”라고 설명했다.

백희연·이수정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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