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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김성회의 ‘3대 소통병법’] ‘나일리지(기성세대 나이 우대)’ ‘밀레유세(밀레니얼 세대 유세)’ 버리면 세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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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 중 일부다.

이는 세대론에도 적용된다. 다른 세대를 이해하려면 자세히 보고 오래 살펴야 한다. 세대 차이를 넘어 전쟁 이야기를 하지만 평화는커녕 조화를 이룰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자세히도, 오래도 볼 겨를을 내지 않는다.

세대 특성은 단지 거대한 사회적 동향을 통해 만들어진 특정한 경향일 뿐이다.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닌 다른 것일 뿐이다.

우리는 세대 간 이질성에 대해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불평한다. 이질성을 호기심으로 바꾸고, 다양성으로 조화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세대 간 대화에서 ‘OK’의 속뜻에 ‘KO’시키고 싶다는 적의가 도사리고 있는 경우도 많다. “됐어”라는 말은 겉의 긍정적 의미와는 달리 “그만해, 듣기 싫어.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의 단절이 본래 의도인 경우도 많다.

세대론은 선순환을 일으키기보다 각 세대 간 좌절과 무시의 벽을 쌓거나 독단의 섬에 가두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자기 방식을 억지로 강요하는 꼰대, 꼰대에 반기를 드는 안티 꼰대, 필요한 조언도 지적질로 몰아붙이는 역(逆)꼰대…. 세대 간 불화를 뜻하는 온갖 파생상품이 하루가 멀다 하고 출현한다.

“네가 알면 뭘 안다고, 시키는 대로 해.”

“그렇게 행동하니까 꼰대지.”

“난 절대로 꼰대 짓은 안 할 거야.”

“하여튼 꼰대는 할 수 없다니까.”


이 칼럼을 쓰기 위해 세대별 다양한 이를 만나 인터뷰하고 속내를 들으며 느낀 점이 있다.

각 세대는 다른 세대가 자신들이 통과해온 시대와 사건을 당연히 알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은 서로 모른다. 아무도 그 차이점의 뿌리를 이해시키거나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이해할 수 있는 시각, 정보, 해결책도 주지 않은 채 공격하고 “오케이 부머”(25세 뉴질랜드 녹색당 의원이 의회 연설 중 자신의 발언을 방해하려는 나이 많은 의원을 향해 심드렁하게 내뱉은 말에서 유래. 베이비부머들의 바보 같은 얘기가 틀렸음을 설명하는 게 어려워, 그냥 무시하고 알겠다고 하는 것) 하면 기성세대는 또 “오케이 베이비” 하며 반목하는 악순환만 반복될 뿐이다. 이질성과 갈등, 비난에만 초점을 맞추면 ‘세대 전쟁과 위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반대로 각 세대 다양성의 조화로 생각하면 전쟁이나 위기가 아닌 ‘세대 평화와 기회론’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다름을 억지로 외면하는 것도, 같음을 억지로 강요하는 것도 좋은 답은 아니다. 세대 불통은 어느 한쪽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논의되는 세대 간 이질성은 양손 들고 환영해야 할 큰 기회다. 베이비붐 세대의 조직 충성심, X세대의 합리적 개인주의, 밀레니얼 세대의 디지털 능력과 글로벌 마인드는 그 어느 시대에도 한 지붕 아래 공존한 적 없었던 뚜렷한 강점이다.

애늙은이로 자기 세대 정체성을 잃는 것이야말로 문제다. ‘요즘 젊은것’의 발랄함을 가져 선배 세대와 다르다고 혀를 차게 하는 게 건강하다. 기성세대는 어울리지 않게 찢어진 청바지를 입으며 청년 흉내를 내기보다 중심 잡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어른답다.

미래가 불안할수록 단단하게 대비시켜야 하는 것도 선배와 어른의 역할이다. 밀레니얼이 디지털에 능하다고 한다. 정작 사이버의 어원은 선박의 키(rudder)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kybernan’에서 나왔다. 배는 물살을 가르는 큰 나무 판자인 키를 회전시켜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진정한 사이버는 키를 잘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 사이버는 어른과 동떨어진 말이 아니라 핵심 역할이다. 사회 변동성이 클수록 키를 잡는 사람, 방향을 잡는 어른의 소리가 절실하다.

그 과정에서 서로 배우고 얻는 것이 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차이를 배격하기보다 다름을 끌어안고 기대치와 눈높이를 서로 조정해보자. 기성세대가 ‘나일리지(나이+마일리지·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대우해주기 바라는 행동)’로 밀어붙여서는 안 되는 것처럼, MZ(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단어)세대 역시 ‘밀레유세(밀레니얼 세대라고 유세 부림)’로 몰아붙여서는 벽만 점점 높아질 것이다.

세대 조화는 동화도 불화도 아닌 담화에서 시작된다. 개인의, 세대의 서사를 알아야 마음이 열린다. 각 세대의 서사를 풀어내 전달해줄 때 신구세대 반응은 한결같았다.

“그 이야기가 그런 뜻이었군요?”

“아, 우리 부장님이 수시로 카톡을 올려 귀찮게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잊어버릴까 봐 불안해서 생각날 때마다 메모 삼아 올리시는 줄은 몰랐어요.”

“나는 나름대로 수십 번 성의를 갖고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실패할까 봐 겁이 나서 그런 것인 줄은 몰랐습니다.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해 괘씸하게만 여겼지요.”

“요즘 친구들이 늘 워라밸, 워라밸 하며 즐기는 것만 하는 줄 알았는데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준비한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최근 세대론이 차고 넘친다. 부상하는 MZ세대 특성을 이야기하고 꼰대를 탈피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밀레니얼 특성을 이야기하지만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경우가 많다. 마케팅 대상으로서의 소비자 밀레니얼과 조직 내에서의 생산자 밀레니얼은 엄연히 다르다.

1990년대생이 오기도 하지만 가기도 한다. 벌써 2000년대생이 오고 있지 않은가. 늘 허겁지겁 신세대는 대세니 일방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라는 것은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다. 무조건 밀레니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입 닫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반면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할 수 없는 계도의 대상으로 설정해 일방 설교하며 기성세대 가치관에 맞추려는 것 역시 옹색한 구체제 옹호 선언으로 보여 거부감이 든다.

결국 세대 이해의 핵심은 서로 간 살아온 세대의 서사를 이해하는 데 있다. 각 세대 간 차이점의 뿌리를 이해하고 살아온 배경을 이야기하는 마당이 마련될 때 세대 이해는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세대 간 이질감을 호기심으로, 불안감을 기대감으로 전환시킬 때 세대 전쟁은 평화협정을 맺게 될 것이다.

“기성세대는 왜 저럴까. 역시 꼰대는 할 수 없어” “요즘 애들은 도대체 알 수 없어”를 다음과 같이 바꿔보면 어떨까.

“저 친구는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참 신기하고 재미있네.”

“우리 부장님도 알고 보면 이런 사정이 있으신 거구나. 한 수 배워보고 싶다.”


베이비붐 세대, 엑스세대, MZ세대를 인터뷰할 때 공통적으로 들은 말이 있다. 자신의 세대가 제일 힘들었고, 트레드밀 세대(열심히 뛰지만 늘 제자리에 멈춰 있다는 허무감을 의미)란 표현이었다. 알고 보면 어느 세대고 흔들리지 않고 젖지 않고 삶을 살아온 경우는 없다. 각 세대 공통적으로 자신들이 겪었던, 겪고 있는 아픔이 한 보따리다. 각 세대 인터뷰를 하며 센 세대, 낀 세대, 신세대 삼 세대의 ‘동상삼몽’ 이야기를 들려주면 마치 비밀코드를 푸는 것같이 신기한 표정을 짓는 걸 볼 수 있었다.

“아, 저 사람도 알고 보니…. 돌도끼 인간이 아니고 인간이었어.”

“아, 저 친구도 알고 보니…. AI가 아니고 사람이었어.”


‘흔들리지 않고 살아온 세대는 없다’.

선배 세대는 평생 자소서 한 통 안 쓰고 취직할 수 있었지만, 정년을 맞이한 사추기 즈음에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느라 밤잠을 못 이룬다. 이제부터 내 길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말이다. 어려서부터 자소서를 넘어 자소설을 매년 수십 통 작성하며 ‘나는 누구인지’ 일찍부터 탐색해온 밀레니얼 세대는 그 반대다. 나는 알겠는데 직장이, 직업이 정말 내게 맞는 것인지 고민하느라 진득하니 다니기 힘들다. 시대의 강점은 세대의 약점이 돼 언제든 성장통을 거치게 한다.

각 세대가 자신의 세대답게 자연스럽게 살고 존중받는 사회, 그것이 세대 간 전쟁에서 평화로 가는 방법이 아닐까. 한 세대 혼자서는 큰일을 이룰 수 없다. 세대 간 평화는 각 세대가 살아온 사건과 조건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우리 세대처럼 살라고 하지도 않고, 너희 세대처럼 살려고 애쓰지도 않고… 각 세대가 세대다운 것을 받아들일 때 세대 간 소통은 절로 이뤄질 것이다. 어느 시대고 한 세대 혼자서는 큰일을 해내지 못했다.

매경이코노미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42호 (2020.1.15~2020.1.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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